나에게는 500명이 넘는 민원인이 있다. 부서를 좀 바꿔달라는 A, 인사팀에서 정한 기준 따윈 분명 꼼수가 있을 거라며 비꼬는 B, 학력 인정은 당연하지만 군 경력을 인정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C와 D, 군 경력 인정은 당연하지만 학력 인정은 불합리하다는 E, 이들은 서로 뜻을 같이하며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릴레이로, 흥분과 짜증 섞인 불만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쏟아낸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못 참게 하는 건 블라인드 앱에서 마음대로 손가락 연주를 하는 그 녀석이다.
블라인드 앱이 생기고 나는 하루 아침에 감정노동자가 되었다. 그 녀석은 연예인의 일상을 파헤치는 스토커처럼 우리 팀원의 일상을 감시했고, 휴식시간에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정시퇴근을 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지적했다.(우리 회사는 주52시간 제도가 빠르게 정착되며 90프로 가까이가 정시퇴근을 한다.) 그 녀석의 의견에 동조하는 충성스러운 댓글이 연이어 등록되면 그 녀석의 생각은 전 직원의 생각으로 둔갑되어 여기 저기 생중계도 모자라 두고 두고 재방송까지 된다. 연예인은 소속사에서 입장 발표도 해주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서 악성 댓글러들 고소도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오늘도 녹색창에 '블라인드 고소/고발'만 괜히 검색해본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지금 나의 시간을 연결해본다. 그리고 정말 참아낼 수 없는 나의 민원인들이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 민원인들의 민원을 듣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하는 건 당연했다. 이런 내가 인사담당자여도 정말 괜찮은걸까?라는 고민이 머리속을 계속 맴도는 요즘이다. 시험 문제지를 받아들고 뭐라도 끼적여보려고 애써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제지만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이제는 내 능력 밖의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속상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나는, 그 녀석의 글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슴이 답답해져 숨쉬는 것마저 불편해진다. 괜히 마스크 탓을 해보지만 사람에 대한 불안함이 엄습하며 초조해지는 것을 감당해보려고 자꾸만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된다. 정말, 이런 내가 인사담당자여도 괜찮은걸까? 나는 왜 하필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가장 오래한 담당자가 된 걸까. 책임감 없이 그만두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없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책을 읽는 내내 친애하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작가의 모습에 다시 한번 나의 모습을 반추해본다. 검사의 캐비닛에 가득 쌓인 미결과제들은 내 노트북 뒤 파티션에 덕지 덕지 붙여둔 포스트잇 업무 메모를 보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있다.그리고 그 안에 밤새 내린 큰 비에 길을 잃은 새끼 오리처럼 헤엄쳐 나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퇴사가 절박했던 요즘, 민원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굉장히 지치고, 그들과 마주하는 것조차 몹시 불편했다. 책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꾸역 꾸역 해내기 위해 나의 민원인에게 마음을 열어야 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겁하게 민원인들의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나는 여전히 A, B, C, D, E 다양해진 민원인들의 요구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다.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적힌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어내 파쇄기에 넣어 버릴 수 있도록 조금 더 힘을 내 보고 싶어졌다.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아직까지도 잘 버티고 있는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세상이 설정한 표준 사이즈가 무엇이든, 중심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굽 높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들 하는 대로 맞추다 보면 내가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