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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Mar 05. 2023

[독서일기]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나종호

퇴사하겠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


대퇴사의 시대, 직원들은 퇴사 소식을 간단하게 회사에 통보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회사 생활이 힘들면 인사담당자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시절이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퇴근하고 면담을 요청한 직원을 만나 고충을 들어주고, 많이 힘들었겠네라고 공감의 말을 건낸다. 그 시절엔 나쁘게 구는 상사를 만나도 결국 우리가 더 오래 근무할테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말로도 버텨냈었다. 함께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을 운운하며, 그래 어느 조직을 가도 또라이는 꼭 있더라는 이야기로 맞장구치면서. 인사담당자인 나도, 면담을 요청한 직원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겪는 불편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근육이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믿던 그런 시절이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일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해요.
정말 잘 하셨어요. 용기 내 줘서 고맙습니다.


요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상사와의 갈등 관계로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감내한 직원들도 많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우울증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공황장애라는 것으로 나타났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우리는 그것이 우울증인지도, 공황장애인지도 알아채지 못했을 뿐. 알아챘더라도 선뜻 이야기할 수 없었을 뿐. 내가 그들을 만나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지만, 그때 용기를 내어 찾아 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숨통을 틀 수 있지 않았을까. 인사부서에 내 상사가, 내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를 얘기한다는 것. 어쩌면 어릴 적 아이들이 나를 못살게 구는 친구를 선생님이 혼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신입사원으로 채용하는 과정을 거치고, 한달동안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하고, 부서에 배치하고 입사 100일, 6개월, 1년이 되는 날이면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떠올리며 일을 처음 배우면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시 일어나는 그들에게 응원의 메일을 보냈고, 신입사원의 생일날이면 책을 한 권 사서 선물했었다. 힘들어 애쓰고 있는 신입사원들에게는 마음의 위안을 전해주고 싶었고, 힘든 내색하지 않고 씩씩한 척 하는 신입사원들에게는 잘 하고 있다고 등 두드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함께 고민을 나누던 신입사원들은 어느새 라떼는.. 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선배가 되었고,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모습을 마주할때면 새삼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아보고 싶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늘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는 나에게 와서 힘들다고 얘기했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눈이 아프면 안과를, 치아가 아프면 치과를 가듯이,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음에도 선뜻 정신의학과를 찾아가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아픈 건 어른이 되어가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줄 알았다.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정신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과연 나의 발걸음이 향할까라는 물음에는 '글쎄'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종호 교수가 만난 정말 다양한 환자와의 이야기는 어떠한 낙인과 편견을 가지지 않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설명한다. 나는 인사담당자로 만났던 직원들을 떠올렸고, 내가 가진 편견이 잘 알지 못하는 그들을 재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차'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교수가 좋아한다는 격언,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는 말이 그렇게 나에게도 와 닿았다.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자신의 일에 대한 진심이 잔뜩 묻어나서 좋았다. 오랜시간 어쩌면 쳇바퀴처럼 정해진 일을 해내고 있는 나에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를 받은 것 같다. 오늘도 내 마음의 파도를 즐기면서 탈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나는 반 고흐의 작품 <신발>을 좋아한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Walk a mile in one's shoes)'는 격언을 떠올리게 해서다. 물론 누구도 (모든)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볼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구는 나에게 타인의 경험과 관점,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자경문과 같다. 105p


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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