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얼굴에 서늘한 한기가 스치며 날이 제법 추워졌음을 느낄 때면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더위를 피할 곳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며 밤을 나던 한여름에도 아침의 기상이란 단지 괴로움일 뿐일진대, 하물며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와 잠이 덜 깬 상태로 겨울 날씨를 맞이하는 일은 너무나 가혹한 것 같다. 나는 겨울에도 보일러를 켜지 않고 전기장판으로 바닥만을 뜨겁게 데워둔 채 두터운 이불속으로 들어가 얼굴만 빼꼼 내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몸은 따뜻하면서 얼굴로는 차가운 겨울의 냉기를 느끼는 불균형이 한없이 기분 좋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여름날 정자에 앉아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더위에 찌든 몸을 달래듯, 냉기 속에서의 따뜻한 이불속을 만들어 쉬는 행위는 고의적으로 안도감이라는 이름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침이 되고 그 불균형을 깨뜨려야 할 때면(그 방향도 하필이면 따뜻한 이불속이 아니라 괴로운 냉기 속으로 깨뜨려야 하니까!) 지난밤에 느꼈던 행복의 크기만큼이나 좌절감이 닥친다.
더구나 겨울에는 해가 짧기 때문에 기상해야만 하는 시간에는 아직 어두컴컴하기 마련인데, 잠에서 깨고 하루의 처음 시간에 눈에 들어온 것이 아직 어둠이 짙은 세상이라면 더욱 몸이 움츠러든다. 우리의 몸은 밤에 활동하기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여름이었다면 새벽녘과도 같은 어두움 속에서 매일의 일상을 시작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는 셈이다. 이렇게 겨울은 어두움과 추위 속에서 매일 아침을 괴롭힌다. 아침마다 투덜거리며 씻을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언제쯤 아침에 일어날 걱정이 없이 살게 될까 하는 망상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적어도 내가 일을 지속하는 중에는 그 속박에서 벗어날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생각해보면 언제까지였던가 나는 겨울이 가장 좋았다. 정말 그럴 때도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따뜻한 이불속에서의 안도감을 지금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그때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무렵까지는 아침에 눈을 뜨고도 그대로 누워서, 완전히 몸이 활동할 준비가 될 때까지 이불 밖의 냉기와 이불속의 열기를 한껏 즐겼었다. 이불속이 덥다고 느껴지면 이불을 들추고 온몸으로 냉기를 한껏 흡수하였다가 다시 이불을 덮고 냉기를 죽이는, 그런 별것 아닌 짓도 참 좋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충분치 않은 휴일 이외에는 아침마다의 즐거움을 주던 것이 오히려 나를 괴롭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으니 겨울을 싫어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매일 아침마다 느끼는, 일어나기 싫다는 사소한 감정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까지 번질 때면, 머릿속에서는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예전의 기억들이 강제로 하나씩 소환되면서 아련함에 빠진다.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씩은 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그리움이 보통 사람들과 같은 수준인지 과도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놀이터의 꼬마 아이들을 보면서 한없는 부러움을 느끼는 것은, 흘러간 시간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이 분명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뜻일 게다.
난 수염 난 피터팬 With my 팅커벨 음악 숲에 숨어 모험을 하는 내 삶이 네버랜드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세월이란 독약을 마신 후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바뀌어 내 Look도 바뀌어 욕심도 살쪄
음악 앱을 켜고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을 들어본다. 신나는 비트의 힙합 곡이지만 그 가사를 곱씹으면 마냥 신나는 노래는 아니다. 흘러가버린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스물세 살 때 발표된 곡으로 군 복무 중에 처음 접했으니 벌써 열두 간지가 지났다. 이 노래의 첫 가사는 "이건 슬픈 자기소개서"로 시작하는데, 가사를 생각하며 노래를 들을 줄 몰랐던 나는 첫 가사조차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우생이었다. 그리고 이 노래 가사가 왜 '슬픈 자기소개서'인지, 그때의 나와 띠동갑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느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수염 난 피터팬'이라는 표현이다. 불로(不老)의 상징인 피터팬과 어른이 되었음을 뜻하는 수염이 결합되어 매우 의미심장한 모순을 만들어낸다. 수염이라는 것은 붙이기에 따라 멋진 신사의 이미지도 강하기 때문에 피터팬에게 수염이 났다는 것은 얼핏 멋진 중년의 남성을 연상시킬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던 눈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만 바라보는 소위 '속물'이 되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