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뜨겁다. 일부 과격주의자들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며 반발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지만, 여성의 권리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의 여성으로서 삶이란 권리의 주장 이전에 생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우선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전 세계를 테러의 위협으로 몰아넣었던 IS도 최후가 머지않은 상황이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의 인권 문제는 여전히 변방에 자리한다.
이 책은 아프다. 분명 텍스트를 읽고 있을 뿐인데 마치 물리적인 통증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 같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잠시 책을 덮고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비록 이것이 소설이지만 소설 속에서 고발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삶에 대한 묘사는 지독하리만큼 독자의 심장을 조이고 또 그것이 지금도, 실제로 지구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자꾸만 망설이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오늘날을 살고 있는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의 잔혹함 앞에서 온전히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까.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저 하나의 역겨우리만치 기발한 작가의 천재적 상상력일 뿐일거야...라고 수 번을 참아가며 힘겹게 완독에 도달했지만, 아프간 인들의 인권을 위해 호소하는 작가의 마지막 후기는 나의 치졸한 희망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결국 이 이야기는 실제로 지금도 아프간 어디선가에서는 충분히 일어나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기에, 이제는 단지 소설의 주인공에 그치지만은 않은 마리암의 슬픈 인생이 책을 덮는 손을 떨려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마리암, 그게 우리 팔자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그런 거다. 참는 거지.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알겠느냐?"
인간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모든 자유와 권리를 빼앗겼던 식민지 시절에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노예생활에서도 그 시스템이 수십~수백 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한계를 벗어난 인내심으로 그 상황을 참고 넘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에 변화가 찾아왔다.
언제나 혁명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앞선 세대의 숭고한 희생이 필요하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대한민국의 오늘날 '찬란한 태양'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한 이전 세대의 흥건한 피를 머금고 나서야 비로소 빛을 드러내게 되었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각각 이전 세대와 새로운 세대를 상징한다. 똑같은 남성에게 억압받고, 똑같은 남성 집단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으나 두 사람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마리암이 근본적으로 의지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었던, 가장 가까운 남성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배신을 당했던 반면, 라일라는 가장 가까운 남성인 아버지와 타리크로부터는 '아프간 여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랑받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모두 도피처로서 결혼을 선택했지만, 그 목적은 달랐다. 마리암이 충격적인 아버지의 실체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모든 삶의 희망이 사라져 버린 채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죽여버리고 체념의 심정으로 라시드를 따라갔던 반면에, 라일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작은 희망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현실의 고난을 견디는 쪽을 선택했다.
마리암은 삽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녀는 삽이 등의 잘록한 부분에 닿을 정도로 최대한 높이 들었다. 마리암은 날카로운 삽날이 직각을 이루게 세웠다. 그녀는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행로를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마리암은 삽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걸 거기에 쏟아부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충고를 듣지 않았던 대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마리암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길을 희생과 고통 속에서 돌아와야만 했다. 마리암은 억울해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누리게 될 라일라에게 질투를 할 수도 있었다. 억울한 희생을 택하지 않고 자신이 겪어왔던 지옥과도 같은 과거의 잔재에 라일라의 발목을 붙들어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존엄한 희생을 택했고, 과감히 현실의 벽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내리치는 용기를 보였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서, 라일라에게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열어주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결국 라일라는 마리암의 희생을 통해 해방되었다. 이제까지 아프간 여성들은 벽에 갇혀 살아왔었다. 마리암의 용기로, 라일라의 인생에는 그 벽에 아주 작은 흠집이 생겨난 셈이다. 인터넷에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등을 검색하면 차마 보기 힘든 잔혹한 장면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쪽에서는 여성이 재벌의 총수가 되고,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현재 시점에 또 다른 한쪽에서는 완전히 여성의 신체는 남편에 속해 있어 죽음마저도 남편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 극단주의자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점이 놀랍다. 또한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지루할 만큼 평화로운 내 삶에서 조금이나마 중동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이 시대를 만들어준 이전 세대들에 대한 경외와, 아직도 새 시대를 위해 희생을 선택해야만 하는 또 다른 세상 누군가에 대한 조그마한 속죄의 표현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불편함을 견디어내고, 이 책은 끝까지 읽어내야만 했던 시간이 그 첫 번째 단계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평점 ★★★★☆
reviewed by lk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