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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잌쿤 Sep 25. 2017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세상의 변화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더 잦은 논의를 갖는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지식이 상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순간의 실수들, 그로 인해 사라진 가치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모든 것이 영속할 수 없도록 설계된 세상이 낳은 안타까운 부작용들이다.


영원(永遠)은 낭만적이다. 영원은 시간을 초월하여 세상의 법칙으로부터 이탈된다. 거기에 아름다운 가치를 덧붙이면, 영원은 그것을 '가치 불변의 아름다움'이라는 낭만으로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그래서 종교든 예술이든 인류가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행위에는 언제나 영원이라는 요소가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숭고함과 유한성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신을 믿느냐는 말과 사랑을 믿느냐는 말은 그 속성이 유사하다. 전자는 영원불멸한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을 인정하느냐는 뜻이고, 후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감정이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모두 영원을 논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정한 차원을 넘어선 초월적 가치를 논할 때 그 '초월'의 기준을 시간으로 삼아왔다. 신도, 사랑도, 그래서 영원해야만 했다. 그래서 영원을 인정하지 않고 법칙에 종속된 현실주의자들은 신도 사랑도 믿지 않으니 그 속에는 낭만이 없다. 반대로 아무리 과학과 지성이 발달하더라도 사랑과 종교에 대한 논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낭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또 다른 본능 때문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시(詩)를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기에 시(詩) 또한 영원의 가치로서 논해질 자격은 충분하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짧은 소설이지만 시(詩)와 사랑과 낭만과 영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후반부의 갑작스러운 정변이 있기까지 네루다와 마리오의 온갖 메타포로 치장하는 소설 전반부의 묘사는 칠레 산티아고의 낭만에 '영원'해야만 할 숭고한 가치를 꾸준히 부여한다.


쿠데타를 통해 칠레가 잃었던 것은 비단 민주주의만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체제의 상실은 작은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시대는 변하고 정치는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자 싶었던 상실감의 대상은 네루다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시(詩), 즉 영원했어야 할 가치를 지닌 칠레의 낭만 자체였다. 네루다는 죽었고, 민주화가 이루어져도 칠레의 민중들이 잃어버린 1973년의 낭만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작품을 영화화한 "일포스티노"의 한장면(네이버영화)


마리오가 과묵한 아버지 밑에서 '우표를 붙이는 데'에나 사용하던 혀로 메타포를 말하고 사랑을 알게 된 것은, 미성숙한 젊은이가 시(詩)로 인하여 낭만의 일부로 온전히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마리오는 우편배달부에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성장했고,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영원의 가치를 알려준 선구자이자 스승이었다. 마리오는 이를 사용해서 베아트리스를 낭만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반대파 의원 앞에서도 '네루다를 대통령으로 뽑겠다'며 당당하게 외치는 후세의 선구자로 거듭난다.


"번드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 없어. 촌구석 술집 년을 베네치아 공주처럼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나중에 진실의 순간이 오면, 즉 현실로 되돌아오면 말이란 부도수표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네 미소가 나비보다 더 높이 난다는 말보다 술주정꾼이 주점에서 네 엉덩짝을 치근덕거리는 게 천만번 낫지."


소설의 전반부가 보여주는 마리오의 성장기는 느긋하고 여유롭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스, 네루다가 나누는 아름다운 장면은 물론 장모와의 갈등과 말다툼에서도 온갖 메타포가 동원되어 소설은 시종일관 기분 좋게 읽힌다. 특히 말이란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온갖 메타포를 사용해서 늘어놓는 장모의 모순은 작품이 주는 해학이다. 그러나 이 기분 좋은 느낌이 크면 클수록 작품의 후반부는 더 큰 상실감으로 되돌아와 읽는 이의 심장을 찌른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걸작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비극적 결말이 더욱 처절하고 불편한 것은, 전반부에 묘사된 주인공들의 행복에 겨운 일상이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으로 관객의 기억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상실감이다. 그래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결말은 처절하고 불편하다. 당시 칠레에 실존했던 참혹한 장면에 대한 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했어야 할 가치를 잃어버린 독자의 상실감이 주는 불편함은 어떠한 잔인한 묘사에 못지않다.


그러고는 본론으로 들어가 자신의 시 전집에 대해서 논하려 했다. 정선된 시들뿐이라는 것을 강조할 것이었다. 하원 의원 랍베가 준 앨범에 말끔한 필체로 이미 시를 가득 채워놓았고, 산안토니오 시청에서 주최하는 시 공모전 공고도 오려서 끼워두었다.


그러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주는 상실감은 단지 좌파적 가치관에 한정되지 않는다. 보수적 입장을 취하던 마리오의 장모 역시도 쉴 새 없이 네루다를 인용하며 메타포를 늘어놓았던, 잃어버린 낭만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갈망했던 칠레의 회복은 단순히 군부 쿠데타 세력과 좌파 세력의 이분화된 적대관계의 청산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마리오의 시가 완성된 곳은 반대파 세력인 랍베가 선물한 앨범 속이었으며, 마리오는 시청 공모전이라는 국가기관의 인정을 통해 시인으로 태어나려 했다.


베아트리스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순간 '영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쿠데타를 통해 칠레가 진정 잃어버린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다. 평화로운 일상과 낭만을 암울한 정변과 대비시켜 본래 칠레가 가졌어야 할 모습을 '영원의 가치'로 승화시키면서도, 그 가치에는 좌우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관용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네이버 책 정보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네이버 영화 정보 : 일포스티노

평점 ★★★★

reviewed by lk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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