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최근 한 인기 유튜버의 '민폐 논란'이 화제가 되었다. 이 유튜버는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서 주유소를 찾아 직원에게 '10원어치 주유'라는 황당한 주문을 하게 되는데, 곤란해하며 거절하는 직원에게 오히려 조롱과 면박을 주는 장면이 공중파를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유튜버는 시청자들이 시키는 각종 황당한 요구를 실행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콘셉트의 방송을 하고 있는데, 이 방송은 평소에 망상으로나 가능했던 일들을 타인에게 대신 수행하게 하고 이를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하여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의 쾌감이라는 것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면역이 생기게 마련이기에, 자극을 주는 방송 콘셉트도 회차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유튜버의 경우도 이런 점이 문제가 되어 결국에는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 정도가 심각한 경우도 적잖게 있었다. 이번의 경우는 너그럽게 보자면, 단순히 가게의 영업을 사소하게 방해한 경우라고 당사자가 이해를 한다면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이제까지 이 유튜버는 방송의 자극을 위해 자해에 가까운 행위 내지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법행위도 빈번하게 일으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테면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지르거나 낯선 이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는 행위 또는 타인의 재산에 손괴를 입히는 행위가 다반사며, 최근 또 다른 논란이 된 지하철에 휘발성 물질을 가지고 들어가 라면을 끓이는 행위는 범법행위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그런데 현재 비난의 화살은 이 유튜버를 향하고 있으나, 사실 이 사안에서 더 큰 문제가 되는 본질은 그 배후에 있다. 바로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 이렇게 무리한 행위를 요구하며 쾌락을 즐기는 네티즌들, 그들이야말로 비난의 중심에 서야 할 장본인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직접적인 폐해를 입힌 것은 유튜브 방송의 진행자이나, 이 일들을 지시한 네티즌들은 훨씬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다수'이기 때문이며 특히 이러한 논란에 대해 어떠한 양심의 가책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훨씬 심각하다. 나아가 만약 그들이 자신들에게 이러한 범법행위의 원인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신분이 공개된 유튜버 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 채로 자신들은 익명성의 그늘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에 안도함을 넘어 이를 또 다른 쾌감으로까지 느끼고 있다면 그 심각성은 배로 늘어난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이 논란에서 이렇게 '익명성의 보장'과 그로 인하여 얻게 되는 '처벌로부터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은 논란의 답을 내리는 데에 좋은 힌트가 될 것이다.
이미 130년 전에 출간된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상태에 대해 인간의 양면성을 주제로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평판이 자자한 지킬 박사와 모든 이들을 분노와 공포로 떨게 했던 하이드가 사실은 동일한 인물이었다는 신선한 반전은 누구나 악한 본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더하여 이 소설은 그러한 악이 '안전한 상태로' 발현되었을 때 인간이 보이는 태도와, 점점 더 높은 자극을 추구하는 인간의 또 다른 본성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상황은 상식적인 규칙에서 벗어나 있었으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양심의 구속력은 느슨해졌다.
죄 지은 자는 결국 하이드, 오직 하이드뿐이기 때문이다. 지킬은 조금도 타락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선한 본성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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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서 그의 양심은 점점 무디어졌다.
이 소설이 진정 무서운 것은 하이드라는 악한 본성의 존재보다, 하이드의 존재가 그로 인하여 안심하고 있는 본래의 모습 역시 그 양심이 점점 무디어져 악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나의 악행을 알 수 없고, 어떠한 처벌도 가해지지 않아 나의 평판에 전혀 손해가 없다면, 인간은 과연 얼마나 스스로 악을 통제할 수 있을까. 흔히 지킬과 하이드는 인간의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이 이원화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악한 욕망이 발현된 것일 뿐 여전히 남아있는 악한 본성은 지킬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지킬은 점점 더 하이드로 변하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하이드로 변하기 위해 계속 약물의 자극을 늘려야만 했다.
그 이후 나는 가끔씩 투약량을 두 배로 늘렸으며, 죽을 각오로 세 배로 늘린 적도 한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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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의 사고에 비추어 보면, 처음에는 지킬의 육신을 벗어던지는 것이 어려웠으나 이제는 점점, 그리고 확실하게 반대로 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모든 점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서서히 본성이자 선한 쪽의 자아를 잃고 두 번째이나 사악한 쪽의 자아로 변해 가고 있었다.
악행은 항상 처음이 어렵다고 한다. 두 번째 악행을 쉽게 만드는 것은 악행으로 인한 손해를 보지 않았을 때, 인간은 스스로 특별하다는 착각에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되고 손쉽게 반복을 하게 되며 지속적인 반복은 결국 양심의 가책마저 무디어지게 만든다. 대리인을 내세워 악행을 일삼아놓고 익명의 그늘에 숨어 자기가 하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에 취한 네티즌들은 지킬 박사와 같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라면, 결코 무디어져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평점 ★★★★
reviewed by lk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