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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잌쿤 Sep 25. 2017

마약과도 같은 페미니즘의 유혹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페미니즘'의 광풍이 거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만 널리 퍼지는 현상인줄 알았는데 세계적으로도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당당히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그 세력을 확장하더니 이제는 일부 남성들도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인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클수록 반대편에서는 페미니즘을 불합리한 여성우월주의라며 남성에 대한 역차별적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대세적인 패러다임이 새롭게 떠오를 때마다 이를 인기몰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이번에는 페미니즘을 등에 업고 지지층을 끌어모으려 노력하고 있다. 대마초 흡연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나는 페미니스트'와 같은 발언을 통해 자신을 향한 비난의 시선을 중화시키려는 노력이 간간히 보이는 이유이다. 페미니즘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짜 페미니스트의 교란 작전에 속지 말고 진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를 진단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는 평등이며, 평등은 인권의 문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를 인권이라 하며, 다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가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곧 평등이라고 한다.


인간이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촌락을 구성하고 살아갈 때에도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좁은 의미의 인권은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고조선의 8조법이 있었듯이 법의 제정을 통해 사회의 규칙을 잡으려는 시도는 모든 사회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사회 규칙을 위반한 자를 처벌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사회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는데에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다만 법이 적용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그 기준이 달랐다. 천한 신분이라서, 재산이 없어서, 외국인이라서 가해지는 불평등의 모습은 국가와 시대의 변천에 따라 형태를 달리 했다. 그러나 유독 여성에 대한 차별만큼은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 최근까지 보편적으로 존재했었다. 

아주 근래의 과거까지 남자와 여자는 신분적 상하관계에 있었다. 남녀 차별에 대한 인식은 신분제나 노예제보다도 더욱 견고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참정권 부여는 흑인에 대한 그것이나 노예제도 폐지보다도 늦게 이루어졌을 정도이다. 어째서 여성의 인권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는데는 다른 차별에 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사진출처:황금가지)


근대 이전의 남녀 차별이 후천적으로 형성된 신분보다 선천적인 능력차이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해보자. 여기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신분'이란 전쟁 등의 이유로 인해 타국의 노예로 전락한 경우를 말한다. 인류 역사에 모든 불평등은 자본 축적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 수렵과 채집을 하던 원시시대에는 더 뛰어난 사냥 실력을 가진 자가 우위를 차지했다. 식량의 보관 개념이 약했던 시대에는 매일 그날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행을 떠나야 했고, 사냥 능력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의 수확물에 생계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수컷'과 '암컷'의 신체적 능력 차이는 자연스럽게 부족 내의 신분제도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농경사회에 이르러서 아주 약간 여성의 위상이 올라가기는 했다. 농업 집단은 노동력의 절대치가 많은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생산하는 여성의 가치가 수렵사회보다는 높이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농사를 짓는 주체인 남성 중심의 체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으며, 오히려 많은 토지를 소유한 남성이 다수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형태가 보편화되었다.


1만 년 가까운 농업사회가 종식되고 산업사회에 접어든 후 지속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은 육체적 힘의 중요성을 점차 하락시켰고 드디어 인간 사회에 힘의 우열이 기능을 잃어감에 따라 여성은 비로소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기계가 발전하면서 많은 노동력이 절약될 수 있었고, 지적 활동 등에서 여성도 남성과 비슷한 수준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차별제도의 철폐는 역사 발전에 따른 보편적 인식의 발전과 자본주의 발달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인식의 발전은 역효과를 초래했다. 평등을 주장하던 여성 인권 운동가들 일부는 내적으로 지난 오랜 역사 속의 여성 억압에 대한 보상심리를 갖기 시작했고 이들의 사상은 곧 남성과 동등한 위치를 넘어서 남성을 지배하고 남성보다 우위에 서려는 극단주의로 변질되었으며, '페미나치'로 불리는 삐뚤어진 여성 우월주의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온라인 상에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여혐/남혐 코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평등'과 '동등'을 혼용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대부분의 경우에 남성과 여성은 평등한 존재이지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육체적인 힘의 중요성이 비록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는 존재한다. 따라서 육체적인 노동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동등해질 수 없다. 벽돌을 나르고 삽질을 하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노동 능력을 보이는 것은 사회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연적인 구별이지 차별이 아니다.



(사진출처:황금가지)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참 많은 서론을 거쳐야 했지만, 그런 점에서 '이갈리아의 딸들'이 추구하는 미러링은 틀렸다. 이갈리아 세계의 인간들은 현대의 인간사회와 완전히 뒤바뀐 성 역할을 수행하는데, 결국 그 세계가 묘사하는 방식은 여성이 '남성적인' 일을 하고, 남성이 '여성적인'일을 하는데 그칠 뿐이다. 남성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페호를 착용한다거나 여성이 가진 신체적 특성을 우월적 요소로 재해석하는 신선함은 다소 보이고 있으나, 결국 이는 '여성성'이 부족한 남성들로 이 작품을 보고 여성의 고충을 이해하도록 하는 단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며 피해의식을 가진 여성들이 작품 속에서나마 남성의 우위에 서보도록 희열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다시말하면, 오늘날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똑같이 남성에 대입해본다고 해서 근본적인 남녀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남녀가 동등한 존재로 발전하는 지표를 설정하는 효과는 없다는 말이다. 진정 여성우월적 사회를 그리는 방법으로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다면, 힘의 논리로 우월관계를 형성하는 전근대적 사회에 단순히 남녀를 바꿔넣는 방법을 사용하기보다는, 오늘날처럼 물리적 힘이 중요하지 않은 사회가 더욱 진보했을 때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갖는 우등한 요소들을 기반으로 남녀의 계급이 역전되는 사회를 그렸어야 했다.


여성이 성범죄 사건의 처우나 복지 정책에 대해 남성에 비해 우대를 받는 것은 여성이 상대적인 약자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이 불공평한 군복부 의무를 지는 것도 같은 이유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결과이며 이것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더라도 양보와 혜택으로 동일한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곧 평등 의식이다. 어떤 여성들은 스스로 사회적 약자임을 부정하며 남성과 온전히 동일한 의무와 혜택을 주장하는데, 이는 동등 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변질된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마땅한 차이를 적용하는데 사안에 따라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발 방식에서 어떠한 성차별적 개입이 없음에도 할당제를 주장하여 여성의 절대수를 늘리거나, 스펙을 쌓기 위한 장교/부사관에 남성보다 낮은 진입장벽을 적용받으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시한다면 이는 또다른 형태의 후진적인 차별 의식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아직 페미니즘이 주는 달콤한 우월감에 젖어 현실 문제에 대한 올바른 솔루션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평등이냐, 동등이냐. 페미니스트들은 이제 이 '마약같은 페미니즘'의 유혹을 넘어 하나의 방향성을 선택해야 할 때이다.



네이버 책 정보 : 이갈리아의 딸들

평점 ★★

reviewed by lk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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