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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잌쿤 Sep 24. 2017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의 인간사회 도전과 한계

"재산 좀 있는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 진리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성에 대해 결혼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나 보다. 항상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이렇게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일정한 역할을 제시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초혼 연령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 오히려 능력이 되는 남성들은 굳이 결혼할 필요 없이 혼자서 즐기는 삶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시대가 다르면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제 때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에게 사회가 '죄인'으로 찍는 낙인이다.




너는 왜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이냐. 너는 왜 우리와 같지 않느냐. 신나게 두들겨대는 심판질 이면에는 변종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한다. 마치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를 무너뜨릴 것만 같은 두려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치료'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끔 해야만 안심이 된다는 집단의식들이다. 이 역할은 다수의 횡포를 등에 업고 '규칙'에서 '법'으로, '선'으로 점차 진화해간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집단 인식이 팽배하여 이 두려움이 더욱 커서, 정치로 경제로 문화로 그 영역이 끝도 없이 확장된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작은 새가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흐느껴 울며 그 주위에 핀 꽃줄기를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네. 분명 작은 새도 기뻐할 거야." 라고 말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다들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았다.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이든지 우리 사회의 '규칙'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적응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 문제는 인간 사회에 규칙이 필요함이 비록 자명한 일이라도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를 따라가야 할 규칙의 적정한 기준선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같은 사회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이 사회적으로 통용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며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두 번째는 그 규칙이 지속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평균 초혼 연령이 3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의 30대 독신남녀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 부적응자였다.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아직도 나이 지긋한 분들을 대할 때에는 가정이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한 전제로 깔고 대화를 이어간다. 또한 우리나라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응당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라고 물으며 마치 모든 사람이 대졸자이어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부적응자'를 판별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이 부적응자들이,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어떻게 노력을 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응당 다양성을 수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게 도대체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사회에 규칙은 분명히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다양성은 수용할 수 있지만 그 정도를 벗어난 사람들은 최소한의 선 안으로는 들어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왜 편의점이 아니면 안 되는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왜 안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완벽한 매뉴얼이 있어서 '점원'이 될 수는 있어도,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하면 보통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전혀 모르는 채였다.


'편의점 인간'에는 소시오패스적 기질을 가진 후루쿠라라는 여성을 통해 세 가지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은 혼란기와 적응기를 거쳐 다시 혼란기에 접어든 후루쿠라의 삶을,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조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후루쿠라는 성장기를 지나며 첫 번째 문제점을 대면하게 된다.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받을 수도 없었던 그녀는 결국 스스로를 감추고 '보통사람'인 척하며 사는 법을 깨달았다.





그렇게 아무 문제없이 삶을 보낼 수 있다고 믿던 중, 그녀의 나이가 30대를 지나면서 두 번째 문제점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20대에 요구하는 역할과 30대에 요구하는 역할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후루쿠라는 큰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20대에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혼자 살아도 모두가 보통사람으로서 인정해 주었지만, 30대에 그러한 삶을 지속하는 것은 더 이상 보통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 편의점 안에서 겨우 '인간'이 되었다고 안도하였던 후루쿠라는 이러한 역할의 혼란 속에서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누구에게 용납이 안 되어도 나는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인 나에게는 어쩌면 시라하 씨가 있는 게 더 유리하고, 가족도 친구도 안심하고 납득할지 모르죠. 하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인 나한테는 당신이 전혀 필요 없어요."


바로 자신과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었던 시라하를 만난 것. 시라하 역시 사회 속에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여 집단으로부터 배척받는 이단아였으며, 시라하로부터 30대의 적응에 대해 배웠다고 생각한 후루쿠라는 결국 편의점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시라하는 세 번째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 한 절망적 캐릭터였고, 20대의 훌륭한 적응기를 보냈던 후루쿠라와 달리 아무런 노력 없이 사회의 요구로부터 도망만 다니는 인간에 불과했었던 것이다.


후루쿠라가 결국 편의점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은, 결국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그 규칙과 다양성의 기준점을 상징한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내심 배척했었던 우리 사회 속의 부적응자 중 한 사람으로서, 후루쿠라를 통해 작가는 '편의점인간'이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회와 타협하는 접점을 찾았으며 이제는 반대편에 있는 '보통사람들'이 그 기준점으로 한 발 다가와주기 기다리는 마음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동일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후루쿠라가 편의점 안에서 비로소 인간일 수 있었듯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인간일 수 있는 장치가 하나씩은 필요한 부적응자일지 모른다.



네이버 책 정보 : 편의점 인간

평점  ★★★☆

reviewed by lk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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