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럭키(2017) / 스티븐 소더버그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와 같은 걸출한 이야기꾼이 단지 '은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성급했다고 해서 그 책임감을 운운하느라 우리 스스로 그의 또 다른 영화를 볼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블록버스터급 한탕을 치지는 못했더라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필모그래피를 통해 아주 조금씩 자신을 각인시켰던 작품들을 마니아들은 충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나 결말보다도 캐스팅이 훨씬 더 충격적이었던 '오션스 일레븐'을 두고, 스티븐 소더버그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드림팀이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신작 '로건 럭키'에서도 소더버그는 채닝 테이텀, 아담 드라이버,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나름의 최신판 '호화 캐스팅'을 완료했다. 그는 그만큼 관객이나 평단은 물론 배우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감독임에 틀림없기에, 그가 또 다른 '유쾌한 범죄극'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유쾌한 범죄극'이란 영화에서나 가능한 모순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사회적 불합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특별하고 짜릿한 일탈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 일탈을 주는 주인공들이 '오션스 일레븐'에서의 멋진 꽃미남들인지, '로건 럭키'에서 보게 될 얼간이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잘난 이들보다는 못난 이들에 의한 일탈이 더욱 큰 만족감을 선사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순점이 주는 쾌감은 사회에 대한 불합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훈남들보다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이들이 더 큰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부조리한 자본주의 체제에 한 방 먹였다는 쾌감과 또한 범죄자를 단지 '유쾌한 주인공'으로 한정 짓는데 대한 윤리적 혼란, 그러면서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비현실에서 오는 안도감을 복합적으로 경험한다. 그런데 '로건 럭키'와 같은 영화를 보면, 그러한 복잡한 감정의 유발이나 혼란마저도 초래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영화는 우리에게 직선적 쾌감만을 강요하며, 그 원동력은 더할 수 없는 가벼움과 단순함, 단지 그뿐이다. 따라서 코미디라는 요소는 이러한 작품을 감상할 때 혹시 있을지도 모를 관객의 윤리적 판단을 효과적으로 제거해준다. 특히 한국에서 최근 유행했던 시사 풍자를 다루는 작품들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항상 따라다녔던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슬로건이, 이 장르의 영화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보기 어려울 정도로 충실하게 관객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한 '위법'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에서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경찰이나 교도관, 경호원들을 풍자하며 쉽게 법을 위반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위화감이 없다.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막대한 돈을 훔쳐가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로건 형제의 우애나 어린 딸에 대한 부성애 등을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진지함이 결여된 '유쾌한 범죄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무죄 판결을 내린 이 합법적인 범죄자들이 벌이는 인생 역전극을 마음 편히 대리 만족하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건 럭키'가 단점을 찾기 힘든 웰메이드 작품으로 규정하기에는 두 가지 제약이 따른다.
첫째로, 말장난이 섞인 일상적인 대사를 속사포로 쏘아대는 영화의 초반부가 양키 센스를 이해하기 힘든 한국인에게 진입장벽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물의 성격이 묘사되는 초반부 10분 간은 정신없이 넘어가는 자막을 다 읽기도 힘들 정도이며 그마저도 온전한 이해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초반부 미용실에서의 대화나 술집의 격투 장면에서는 영화의 줄거리와 상관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이 담겨있어 집중력을 흩어지게 만든다.
둘째로는 반전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결말이다. 영화가 종반부로 진행되면서 영화의 메시지는 과연 이 유쾌한 범죄극의 성공과 실패가 영화가 남기는 쾌감과 얼마나 연관성을 나타내느냐에 포인트를 두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는 자루에 돈을 쏟아부을 때까지만 해도 '로건 럭키'라는 제목이 문자 그대로 성립되었다고 느끼는 관객의 안도감과, 딸에게 떳떳한 아버지로서 일어서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영화의 반전에서 나타나는 관객의 해방감을 골고루 겪도록 하는데, 이에 대한 배신으로 이러한 모순된 감정이 과연 영화의 실제 결말과 어떻게 대치될 것인지 느끼게 하는 엔딩은 실상 너무나 다급하고 조잡하며 가볍다.(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문장을 너무 복잡하게 썼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