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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잌쿤 Mar 19. 2018

우린 잘 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 / 이장훈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글은 'elric13'이 대신 작성하였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 우린 잘 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예고편에서 보여준 묘하게 단정적인 손예진의 한마디는 당시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 온 나에겐 의문투성이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서로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는 말이어야 할 것이다. 예고편도 보지 않고 영화관에 갔던 나는 말 그대로 ‘그렇게 정해져 있어’를 ‘그렇게 정해져 있어’라고 연기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자리에 앉았다.




명작이라 불리는 원작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리메이크 작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가 ‘망치진 않았네’ 혹은 ‘나름 잘 살렸네’ 정도로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하 지만갑)는 나름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지만갑은 원작의 감정선을 살리면서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을 차용했고, 일반적으로 신파라고 불리는(억지 감동, 눈물 쥐어짜기 등) 요소가 다소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접근은 효과적이고 영화의 재미를 한층 높여 주기는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찍지나 말지’라는 최악의 평을 벗어나기 위한 소극적 태도로 받아들여져(손예진과 소지섭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소위 안전빵을 노린 이 영화는 어쩌면 안전빵을 위한 욕심을 부렸는지도 모르겠다. 초반부의 과한 코믹 씬, 과한 카메오는 몇몇 성공한 우리나라 영화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영화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결과 이 영화가 가져야 할 마땅한 잔잔함에 조금은 소란한 물결이 일었고 관객의 마음을 다른 의미로 ‘흔들었을지도’. 아쉬운 부분을 먼저 그리고 짧게 작성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호의 순수한 마음, 우진의 따듯한 손, 수아의 진심을 가득 담은 눈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내내 각 등장인물은 각자가 맡은 역할을 너무나 충실하게 수행하였고, 그 결과 빈 공간 없이 영화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는 배우들이 얼마나 캐릭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촬영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수아가 지호에게 계란후라이 하는 법, 머리 감는 법, 빨래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는 장면에서는 수아가 느끼는 초조함이 그대로 비쳐 보인다. 엄마랑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서 신난 지호에게 ‘장난치지 말고.’라고 하는 그 순간의 장면에서 수아가 느끼고 있는 많은 것들이 스크린 너머로 건너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안전빵을 노린 욕심은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관람했을 수아와 우진의 학창 시절 이야기에서 빛을 발했다. 로맨틱 코미디 관습의 핵심인 조력자(홍구)는 우진을 더욱 풋풋하고 순수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로 어쩌면 너무나 관습적인 표현이라 오히려 현실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우진의 매몰찬(동시에 오글거리는) 이별 대사들이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


원작과 다르지만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장소의 통일이다. 물론 원작의 해바라기가 가득한 장면도 아름다웠고, 몇몇 한줄평에서 해바라기를 찾는 사람도 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전빵 전략을 택하면서 이루어진 가장 과감한 선택이 해바라기를 없애고 장소를 통일한 설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결과 심포리역은 과거의 우진과 수아, 그리고 현재의 지호까지 모두를 이어주는 장치가 되었고,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기차역이 갖는 일차원적인 속성까지 더해지면서 장소에서 보이는 메시지가 더욱 강력해진다.


“아무 걱정하지 마. 우린 잘 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수아의 단호한 이 말은 영화의 마지막 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분명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일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이 선택을 하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잘’ 해야만 하는 그 이유.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에 담긴 작은 의미들이 모여 수아라는 캐릭터를 더욱 강하고 매력적이게 만들었고 관객은 영화 마지막에 ‘역시 손예진’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이별은 고요하다. 이 부분도 원작과 다르지만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 중에 하나이다.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며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우진은 외 마디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앞서 지호에게 이 상황을 이해시키고 마음을 전하기 위해 했던 것과 같은 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마지막 순간에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표정, 슬픔보다는 안도의 표정을 남기고 화이트 아웃된다.


이렇듯 리메이크된 지만갑은 우리나라의 정서와 색을 많은 부분에 반영한 것은 의미가 있으나, 원작이 가지고 있는 힘과 손예진, 소지섭 두 배우에게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중간에 욕심인지 도전인지, 나름의 현지화인 것인지 모를 조금은 과한 요소가 있었으나 결국엔 옳은 방향으로 흘러갔고 개인적으로 마지막 이별만큼은 원작보다도 큰 여운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너무 메말라서 그렇다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말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라는 말에 담긴 수아의 의지가, 또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온전히 지고 가는 그 모습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녹이는 한 마디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금 만나러 갑니다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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