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2017) / 그레타 거윅
※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예쁘다'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여배우들이 있다. 분명히 아주 예쁜 얼굴은 아닌데 이 부류의 여배우들이 스크린을 통해 뿜어대는 매력을 보고 있자면 '예쁘지 않다'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진다. 전형적인 미인상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배우, 그래서 연기가 뻔하지 않고 배역의 폭이 더욱 넓은 배우, 이름마저도 개성 넘치는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의 이야기다. 미국인들도 그녀의 이름 'Saoirse'를 도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몰라서 항상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이름을 가르쳐주어야 했다고 한다. 아일랜드 혈통의 신비스러운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으로 지금은 헐리우드의 대체 불가 여배우가 되었으니 이름이 어렵다고 한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거기에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해주는 연기력은 덤이다.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 역은 시얼샤 로넌을 위하여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녀가 가진 특색과 매력에 최적화되어 있다. 크리스틴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더 멋진 삶'을 살고 싶은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로서, 자신보다 예쁘고 잘 나가는 친구에 대한 동경과 다소 못생기고 뚱뚱한 친구와의 갈등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간자 입장의 캐릭터이다. 그래서 반항의 뜻으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거부하고 새처럼 날고 싶다는 중2병스러운 소망을 담아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 자칭한다.
부자(父子) 관계와 모녀(母女) 관계는 언제나 특별하면서도 애틋하다. 이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는 언제나 서로의 입장 차이와 오해가 쌓이고 그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다가 극적인 해소와 화해를 이루게 된다는 평범한 플롯이지만 그 평범한 속에서도 모두가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사연이 있기 때문에, 또 그것이 단순히 간접체험이 아닌 우리 모두가 자식으로서 겪어왔고 부모로서 겪게 될 이야기임을 알기에, 우리는 다시 그 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부자 관계의 이야기가 성년이 되고 가정을 가진 아들과 외로운 노년의 아버지 사이에 전개되는 일이 잦은 반면에 모녀 관계는 10대의 사춘기 소녀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어머니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레이디 버드' 역시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믿는, 그냥 평범한 10대 소녀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크리스틴과 엄마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누워 잠을 자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두 모녀의 이야기가 영화의 메인 주제임을 알려준다. 차를 타고 가던 두 모녀는 사이좋은 듯 잡담을 떨다가 갑자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끊임없는 잔소리를 견딜 수 없었던 크리스틴은 엄마에 대한 반항심이 극도로 고조되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만다. 이후 크리스틴은 그녀의 반항심을 표출하는 듯 오른손에 핑크색 깁스를 두른 채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딘가 정상적인 범위보다 미달하여 있는 가족을 부끄러워하고, 뭔가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친구들을 동경하고 따라하려 한다.
그녀를 그냥 버릇없는 여고생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이제 겨우 17세의 소녀인 '레이디 버드'에게 설정된 환경은 그녀가 사춘기로서의 반항기를 발산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비주류적' 오브젝트로 가득하다. 나이 많은 부모, 가난한 집안과 실직자 아버지, 딸과의 교감에 서투른 엄마, 인종이 다른 입양아 오빠와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오빠의 날라리 여친, 훈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비주류였던 남자 친구 등. 그러나 그녀가 만났던 모든 아이템들은 그녀를 성장시킨 촉진제였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인생을 함께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면 오히려 얻지 못했을 깨달음은 그녀의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주변인들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크리스틴이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결국 지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과 베프에게로 돌아간 것은 결코 솔잎을 먹어야만 하는 송충이의 운명 때문이 아니라,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치료 과정이었다. 사람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할 치료가 바로 그를 괴롭히는 상처들이라는 점은 참 아이러니다.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라고 요구만 하던 사춘기 소녀는 드디어 자신의 본명을 당당히 밝히고, 엄마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꺼냄으로써 자신의 졸업을 증명한다. 사람은 가족을 통해 두 번 성장한다. 자식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그리고 크리스틴도 언젠가는 그녀로 인해서 그녀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딸과의 또 다른 갈등을 통해 다시금 고통을 겪고 두 번째 성장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