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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18. 2021

“지금 내가요, 시 한편 쓰는 것이 목표예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영화 ‘시’의 첫 장면은 섬뜩하게 아름답다. 평화롭게 보이는 얕은 강가로 시체 한 구가 떠내려 온다. 몸이 뒤집혀 있어 얼굴은 알 수 없지만 어린 여학생임을 짐작할 수 있다. 평화가 깨지는 비참한 순간 아름답게도 ‘시’ 란 제목이 나타난다. 이처럼 영화는 시궁창 같은 삶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가 양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 예고한다. 


주인공 미자는 곱다. 살랑거리는 꽃무늬의 옷,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 같은 구두, 우아함을 자연스럽게 완성하는 모자까지 예쁜 할머니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그녀에게 호시탐탐 욕망의 눈빛을 보내는 강노인이 있다.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갈 때 가장 예쁜 손주는 성폭행 가해자이다. 50년 만에 시를 쓰고 싶어졌는데 손이 저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모든 상황은 아름다운 미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나의 자존심을 짓밟는 강노인에게는 침을 뱉을 것이며, 배신감을 느끼는 손주에게는 욕을 퍼부을 것이다. 이제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났는데 아픔을 준 신에게 원망을 쏟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미자의 방법은 다르다. 시를 선택했다. 


기범이 아빠를 비롯한 학부모들을 만난 자리에서 손주와 친구들이 동급생을 성폭행했고, 피해학생이 자살한 사실을 알게 된다. 미자는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식당 마당으로 나와 맨드라미를 바라보며 ‘피 같이 붉은 꽃’이라 말한다. 미자의 마음에도 피가 흘렀을 것이다. 맨드라미의 꽃말이 방패이듯, 미자의 마음에 흐르는 피를 막아줄 방패가 필요했고 그것은 시상이 되었다. 


미자의 발걸음은 피해자의 흔적을 쫓아 학교로 향한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그에 반해 아무도 모르게 과학실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그 아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자의 마음은 무엇을 노래하는지 모르는 새가 위로해 준다. 피해자가 투신한 다리에도 간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강물에 쓰디쓴 눈물을 쏟았을 피해자를 위로하듯, 미자의 복잡한 마음을 알아채듯 흠뻑 비가 내린다. 


떠밀리듯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합의 요청하러 가는 길, 땅에 떨어진 살구를 맛보며 그 달콤함과 아름다움에 자신이 왜 왔는지 목적을 잊는다. 다만 스스로 땅에 몸을 던져 깨여지고 밟혀 다음 생을 준비하는 살구를 만난다. 모든 것이 시상이 되고 시가 되어 아름다운 미자를 위로한다. 


마지막으로 손자 종욱을 불러 피자를 먹인다. 몸을 단정히 하자고 말하며 발톱을 정리해준다. 나긋나긋한 잔소리로 손자를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리고 손자를 경찰에게 넘긴다. 

영화 막바지, 미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미자가 남긴 시는 자신을 돌보고, 피해자를 어루만진다. 둘은 하나가 되어 축복하고, 용서한다. 그렇게 미자는 시가 되었다. 


영화는 내내 삶의 양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름다움과 처절함이 함께 묻어나는 삶,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아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에게 시궁창 같은 하루가 펼쳐질 것이다. 그럼에도 미자가 말한 것처럼 ‘시 한편 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래서 맨드라미가 보이고, 새의 지저귐이 들리고 살구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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