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주 Jul 14. 2021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 '이 구역의 미친 X'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머리에 꽃을 달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당신 앞에 있다.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까? 혹은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난데없이 눈을 부라리고 당신 앞에서 주먹을 들었다 놨다 한다면 당신 마음이 어떻겠는가? 길에서 이런 사람들을 갑자기 만난다면 당황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만 해도 난감한 이 여자와 불안한 그 남자가 비 오는 날 서로 우연찮게 만난다면, 이후에도 계속 사건으로 엮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의 두 주인공 모습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두 남녀가 인연이 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고 치유의 순간을 맞이하는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강박과 망상 때문에 미칠 지경인 여자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선글라스와 머리의 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어막이다. 순간순간 주먹과 욕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지는 남자는 분노조절장애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경찰이라는데 저렇게 화가 많아도 되는 걸까. 경찰 내부에서조차도 미친 X로 통한다.     

 

커리어와 미모를 다 갖춘 여자는 한 남자와 교제했는데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 관계를 정리하려는데 남자가 놓아주질 않는다. 몰카로 협박하고 무섭게 매달린다. 네가 감히 나에게 이별을 통보해? 거리 한복판에서 마구잡이 폭행이 시작된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게 집요한 폭행과 집착을 당한 여자는 인터넷에 청담동 데이트 폭행녀로 돌아다닌다. 그녀의 폭행피해 영상이 사람들의 눈요기와 안주거리가 된다. 여자는 살기 위해 선글라스와 꽃을 선택한다. 그래 나 미친년이니까 다가오지 마. 아무도. 

남자는 의협심 넘치는 열혈 경찰이다. 마약상을 쫓다 동료 경찰을 다치게 만들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어 파면되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파혼까지 당했다. 그 이후로 세상에,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었다.     


두 남녀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되면 머리의 꽃이 안쓰럽고, 주먹을 올렸다 내렸다 해도 무섭지 않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술을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사람, 수년간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가 온갖 쓰레기를 껴안고 사는 사람. 결과만 놓고 보면 왜 저렇게 살까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같이 손가락질할 수 없다. 어떠한 사연이 이분을 이렇게 몰고 가는지를 찾는다. 찬찬히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 차례 사기당했던 분노가, 어릴 때 학대당했던 트라우마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던 배신이 보인다. 그래서 술에 의지하고,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에서 평안을 누리는 그분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순간 희망이 움튼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순간 속에서 그래도 죽지 않고 견뎌온 그가 대단해 보인다. 옆에서 그를 응원하고 싶어 진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서로 앙숙이었지만 상처를 알게 되고 이해하는 순간 상대방을 응원하는 유일한 내 편이 된다. 내 편이 있을 때,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호루라기를 선물한다. 무슨 일이 있을 때 힘껏 불면 언제든 나타나겠노라고 약속한다. 정말 여자에게 위급한 상황이 닥쳐 호루라기를 불면 거짓말처럼 남자가 나타난다. 힘들어하는 그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기 전 우리에게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사실 나 죽고 싶지 않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나를 미친 X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우리가 미처 그 호루라기 소리를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이미 미친 X로 낙인찍었기에.     

도와달라고 겁을 내며 호루라기를 불던 여자는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가 왔다고 신나게 호루라기를 분다. 이제 꽃과 선글라스는 필요 없다. 세상에 당당히 자신을 드러낼 정도로 용감해졌다. 남자도 화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 화는 이제 정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유일한 내 편인 그녀가, 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프지만 괜찮은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미친 X가 보인다면 그는 당신에게 호루라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려고 한 번만 애써보자. 꽃을 달고, 선글라스를 끼고, 주먹을 폈다 쥐는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중한 조랑말이 망가진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