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주 Sep 28. 2021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누구나 죽음은 처음입니다'를 읽고...

그 어르신은 아침마다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 왜 안 죽어?

창백한 얼굴, 힘이 없는 다리, 들리지 않는 귀, 가끔 아들과 며느리를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는 그 어르신. 

내가 빨리 죽는 것이 자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목숨이 질긴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으로 

날 가슴 아프게 하는 분. 그러던 어느 날, “아우, 나 오늘 여기 차 타려고 나오다가 미끄러질 뻔했잖아. 넘어져서 죽는 줄 알았지 뭐야” 말씀하신다. 나는 그 어르신을 꼭 안아 드렸다. 


 '누구나 죽음은 처음입니다'  (저자 강원남) 

연로한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며 남은 생,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다 가시도록 하는 게 나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나 죽음은 처음입니다’ 이 책을 읽고 그것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내일도 살아 있으리라 어떤 근거로 단정할 수 있는가. 내일까지도 아니다. 오늘 저녁 나는 과연 살아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왜 재수 없게 죽는 얘기 하냐고, 부정 탄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길. 우리가 얼마나 수시로 죽음을 이야기하는지. 


우리는 매일 죽고 싶다. 배가 고파서, 미운 사람이 있어서, 짜증이 나서. 하루에 내가 몇 번이나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지 세어보면 이렇게 간절히 죽음을 바랐었나 놀랄 것이다. 죽음을 논하면 재수 없는 소리 한다고 손사래 치지만 정작 우리는 주문을 외듯 죽음을 부르고 있다. 습관처럼 내뱉는 죽음을 넘어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삶의 괴로운 순간, 우리는 다시 ‘죽고 싶어’ 한다. 


죽음을 바라지만 사실 우리는 살고 싶다. 배불리 먹고 나면 언제 죽고 싶었냐는 듯 트림이 난다. 반복되는 실패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가도 마지막 힘을 써본다. 혼자라고 느껴지는 고통의 시간,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단 한 사람으로 견딜 수 있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 주인공 만지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전 언니와 엄마에게 살려달라는 사인을 보낸다.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에도 살고 싶은 마음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고 싶다는 건 살고 싶다는 반증이겠다. 나 왜 안 죽느냐고 매일 묻는 그 어르신처럼. 


저자는 사회복지사로 재직하다 두렵기만 한 죽음을,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며 ‘웰다잉 플래너’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현장,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가슴 아픈 사연 등 많은 죽음 앞에서 과연 죽음이 무엇인지 탐문한다. 그 답은 다시 ‘삶’이라고 한다. 죽음은 삶을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람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 소박하고 겸손하게 삶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끝까지 손에 쥔 욕심을 털어버리지 못해 당사자는 물론 남은 가족까지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사람의 얼굴 생김 다름 만큼이나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하면 덜 두렵고,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지 따뜻하게 풀어낸다. 


매일 죽고 싶다를 입에 달고 있지만 정작 죽음 앞에 서면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처음 겪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낯설고 떨린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하게 되는 거라면 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선택은 다시 어떻게 살까로 이어진다. 


이 책의 영향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 자꾸 죽음과 연관된 책과 영화를 보게 된다. 어쩌면 지금 너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알 수 없는 힘의 이끌림 같다. 책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와 ‘죽은 자의 집 청소’,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그러했다. 이 책을 포함하여 모두 죽음과 관계된 내용인데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 


죽음은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것. 내일 당장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늘 그렇게 부여잡은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실천하는데 망설이지 않게 된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고개 뻣뻣하지 않고 저 들녘 황금물결처럼 바람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항상 내 옆에 죽음이 있으니 오늘을 어떻게 살지 결정하게 된다. 늘 후회 많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지금 나의 모습은 그 순간 나의 최선으로 선택한 결과이므로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처럼 이해하고 삶을 수용하는 선택이 있다. 나에 대한 수용으로 다른 이를 존중하는 시야의 확장도 선택할 수 있다. '죽은 자의 집 청소'와 '무브 투 헤븐'처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겸허해지고 따뜻해지듯이. 내 생에 가장 소중한 기억은 매일이었음을, 내가 누군가의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있었음을, 그래서 내 삶은 원더풀 라이프라고 고백하는 삶도 선택 가능하다.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의하며, 다시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처음 맞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그 힌트를 오늘 어르신 한 분이 주셨다. 예배 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그분은 “숨 쉬고 있다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건 살아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 하신다. 아, 살아있음에 먼저 감사해야겠다. 감사가 또 다른 감사를 낳도록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죽음 앞에서도 감사를 고백할 수 있도록. 


*저는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치매, 파킨슨 등 노인성질환을 가진 어르신들과 지내며

그 분들께 매일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