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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Jun 09. 2021

소중한 조랑말이 망가진 당신에게

그림책 '조랑말과 나'

조랑말과 함께 자라온 귀여운 아이. 조랑말이 좋아하는 당근을 챙겨주고, 재미있는 책도 같이 본다. 산책할 때도, 잠을 잘 때도 곁에는 항상 조랑말이 있다. 그런 조랑말과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신나는 여행, 그러나 우리의 삶이 늘 그렇듯 이들의 여행에도 맑은 하늘과 산새의 지저귐, 꽃들의 향기만 있지 않다.   

   

사진 출처 : 유튜브 '이야기꽃' 출판사

갑자기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조랑말에게 빵! 하고 총을 쏜다. 조랑말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나 놀란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조랑말을 꿰맨다. 힘겹게 일어선 조랑말을 보며 아이는 환호하고 다시 여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상한 녀석’이 또 나타난다. 우리의 걱정대로 조랑말을 망가뜨린다. 그림책에는 총 4번에 걸쳐 그 조랑말을 끔찍하게 망가뜨리는 ‘이상한 녀석들’인 총잡이, 우주선을 탄 외계인, 바닷속 악어, 묘지의 해골 유령이 나타난다. 그러나 아이는 용감하게도, 그때마다 다시 조랑말을 일으키고 여행은 계속된다.


사진 출처 : 유튜브 '이야기꽃' 출판사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딱이다. 많은 그림, 다양한 색감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준다. 단순하고 쉬운 글은 자연스럽게 글을 깨치기 좋다. 책이 재밌다는 경험은 자라서도 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그림책이 아이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다. 그림책 곳곳에 숨겨진 위로와 지지, 격려의 메시지를 찾아내면 어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물 찾기가 된다. 바로 ‘조랑말과 나’ 이 책이 내게 보물이 되었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귀여운 조랑말이 ‘이상한 녀석’에게 공격당했을 때, 아이는 처음에 매우 크게 놀란다. 그러나 ‘이상한 녀석’의 공격이 계속 이어질수록 아이가 놀라는 표정은 처음보다 강도가 약하게 그려진다. 반복되는 공격에 견디는 힘이 생긴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용기가 생긴다. 결코 주눅 들거나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꿰맨 조랑말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며 아이는 처음에 만세를 부르며 크게 웃고 기뻐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공격에도 다시 꿰매고 보듬어 조랑말이 일어설 때 아이는 이제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는다. 만세를 불렀던 양팔이 허리에 다부지게 자리하며 ‘이상한 녀석들 올 테면 와보라고’ 한다.        


공격이 계속될수록, 반복적으로 꿰맬수록 이제 조랑말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누더기가 되었다.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갑작스럽게 나의 조랑말을 산산조각 낼 때 아이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부서진 조랑말을 꿰맬 때 아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너덜너덜한 조랑말을 그럼에도 일으켜 함께 가는 아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순간 내가 ‘이상한 녀석’에게 공격을 당한 것 같다. 누더기가 된 조랑말을 눈물 삼키고 같이 가는 아이가 나 같았다.    

  

사진 출처 : 유튜브 '이야기꽃' 출판사

네 번의 공격을 모두 견뎌낸 조랑말은 이제 네 발로 기지 않고 두 발로 걷게 된다. 그리고 아이보다 앞서 아이를 이끌고 간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했다. 조랑말이 내 손도 잡고 간다.     



사진 출처 : 유튜브 '이야기꽃' 출판사


조랑말은 어떤 의미일까. 자존심, 자존감, 자아, 꿈, 이상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의 이유일 수 있겠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살다 보면 ‘이상한 녀석’들의 공격처럼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자초한 고통 일수도, 나의 의지를 벗어난 고난 일수도 있다. 그 ‘이상한 녀석’들이 내 속의 조랑말을 함부로 짓밟는다. 산산조각 난 조랑말을 그대로 두지 않고 꿰매는 힘,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힘, 다시 일어서서 누더기 같은 조랑말을 끌고 가는 힘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내가 꿰맬 힘이 없을 때, 두렵다고 말할 때, 다시 일어설 힘이 없을 때 그 조랑말이 다시 나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나에게는 조랑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얼룩말이, 거북이가, 기린이 될 수 있는 그 힘이 당신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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