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꿔? 바강서! #1
지난겨울 라오스 북부 봉사활동지에 갔다가 귀국하던 길, 짝꿍과 함께 베트남 호치민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렴한 항공편을 이용하느라 루앙프라방에서 에어아시아를 타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로, 그리고 거기서 호치민으로 향했다. 긴 대기와 환승으로 피곤에 절어 도착한 호치민은 무척이나 더웠고 지연 도착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나는 땀도 터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찌 한국에서 온 짝꿍과 만나 예약한 숙소까진 요령껏 도착했는데 이게 웬걸, 새벽 체크인을 돕겠다던 직원은 보이지 않고 문은 굳게 닫혔다. 백방으로 전화를 해봐도 소용이 없어 결국 큰길로 나서 눈에 띄는 숙소들을 살폈다.
길 건너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보석 이름을 한 호텔은 이름과는 썩 멀어 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새벽 4시 넘어 땀과 피로에 찌든 몸에 짐까지 있으니 달리 살필 여력이 없었다. 자물쇠가 잠긴 유리문을 두들기자 로비에서 자던 직원들이 일어나 우리를 반갑게-마지못해-반겨줬다. 어떻게 생각해도 비싼 값을 치르고 여권을 맡기라는 의심쩍은 제스처에도 순순히 동의하고 길 건너 편의점에 다녀올 시간을 달라니 웃으며 다녀오란다. 별것도 아닌 걸로 거래하고 편의점에 가서 영혼 없는 과자와 밍밍한 맥주 몇 캔 구해 돌아왔다. 2층 구석에 위치한 방에 들어서니 한숨이 나왔다. 너무 꿉꿉하고 불결해 침대에 걸터앉기도 싫고 들여다본 화장실은 변기를 달고 사는 내가 급해도 앉기 싫은 그런 불편한 곳이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고 적응이 빨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캔을 땄다. 딱히 옷을 갈아입거나 짐을 풀지도 않은 채 냄새나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몸에 힘을 빼고 깊숙이 기대거나 힘주어 버티지도 않는 그런 어정쩡한 자세로 머리맡에 기대 맥주캔을 기울이다 어느새 피로에 져버려 심지어 잠도 조금 잤다. 정말이지 짧디 짧은 수면 후 이른 아침 짐을 빼며 여권을 되찾았다. 나름 프론트 서랍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는데 천천히 꺼내 주며 더 투숙하면 왕창 깎아준다는 입 발린 소리를 한다. 웃으며 이 도시를 떠나는 사람처럼 나서곤 새벽에 메시지로 연락이 닿아 체크인할 수 있게 된 기존에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간밤의 불편과 불안, 손해를 다 받아내겠단 마음과 함께. 하지만 이건 또 웬걸 도착해보니 친절한 사람이 거듭 사과를 하고 방은 생각보다 좋고 욕실도 깨끗한데 세상 찝찝한 건 스스로 뿐이니 이내 마음이 녹아내리며 씻고 쉬면 다 해결될 터인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호치민 여행은 시작됐다. 정말이지 수십 번의 여행 중 시작이 꼬인 일은 별로 없었다. 지난밤 장면에서 내 발에 치일 듯이 널려있는 거대한 박휘벌레들은 자체 검열로 없앴으니 그나마였지 하... 잠시 몸을 뉘어 쉬고 씻고 정신을 차리니 언제나 그렇듯 다시 여행자 모드가 발동한다.
베트남 제2의 도시라는 옛 사이공, 지금의 호치민시는 굉장히 큰 도시다. 그 중심가에는 멋들어진 노트르담 성당과 중앙 우체국이 있다. 성당은 보수를 위해 양 옆으로 날개 같은 비계가 잔뜩 세워진 상태였고 우체국은 예스러움을 잔뜩 뽐내는 모습이었다. 우체국 앞 보도블록도 예뻤고 우체국 안 타일 바닥도 참 예뻐 사진으로 담았다. 다만 그 안의 기념품 가게들은 참 마음에 안찼고.
작년 여름 하노이로 여행들 다녀왔을 때 우리를 놀라게 했던 건 닭 쌀국수다. 한국에서 베트남식 쌀국수를 사 먹으면 의례 차돌, 양지로 대표되는 소고기 쌀국수 일색이다. 그런데 하노이에 가보니 소고기 쌀국수보다는 닭고기 쌀국수가 더 흔했다. 우리네 쌀국수집 육수보다 더 담백하고 깨끗한 국물은 마치 곰탕 같기도 하다. 그래서 술 마신 다음날 속 풀기도 좋고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아 돌아와서도 한동안 닭 쌀국수 앓이를 했다. 재밌는 건 우리가 '포'라고 읽는 쌀국수라는 뜻의 'Pho'는 F 발음의 '퍼'에 가깝다. 'F퍼' 내지는 'F훠' 정도랄까.
노트르담 성당과 중앙 우체국을 구경한 우리는 마침 우리가 그리던 닭 쌀국수집이 길 건너에 있어 들어섰다. 사진 메뉴는 없지만 영어 메뉴가 있었던 게 어쩌나 다행이던지. 문제는 목욕탕 의자에 쭈그려 앉아 국수를 먹는 이 집에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점원은 없었다는 것. 어찌어찌 무난해 보이는 쌀국수 둘을 주문하고 받아보니 하노이만 못해도 속이 풀리는 그 맛은 참 좋더라.
한 그릇 뚝딱 하고 식후땡을 해볼까 밖으로 향하는데 입구에 모인 점원들이 축구를 관람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벽에 걸린 반투명 비닐봉지에 축구 중계화면이 나오는 스마트폰을 넣어두고 옹기종기 시청 중이었다. 나도 자석처럼 이끌려 들여다보니 이게 웬걸, 있는지도 몰랐던 베트남 국가대표 경기가 막바지에 돌입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가 베트남에 있으니-상대가 누군지 지금도 모르겠다만-일단 베트남을 잠시나마 응원하며 직원들과 한마음 한 뜻으로 몇 초 보냈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짝꿍과 우체국 앞 광장으로 향하는데 동서양인이 섞인 작은 무리가 구멍가게 앞에 서있다. 이쯤 되면 짐작되겠지만 모두의 시선은 구멍가게 안 작디작은 텔레비전. 베트남 국가대표팀은 승부차기를 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없는 승부차기 장면에 골키퍼는 한 골을 막았고, 키커는 한 골을 더 넣어 베트남이 이겼다. 지켜보던 모두는 서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채 환호하고 손뼉 치고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아래는 그 영상)
이 경기는 월드컵도 올림픽도 아니었다. AFC U-23, 그러니까 23세 이하 아시아 축구 국가대표 경기 4강에서 카타르를 꺾고 결승행을 결정지은 순간이었다. 나와 짝꿍은 그즈음에 국제적인 축구 경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니까 우리 시각에선 큰 경기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베트남인들에겐 국제대회에서 그런 성적을 거둬본 적이 없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가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보니 거기에 박항서 감독이 있었다... 는 나중의 이야기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출한 우버는 오는 길에 연락이 두절됐다. 조금 더 지나 깨달았지만 우리는 통신이 두절되고, 교통이 마비됐으며 차로 10분 거리 숙소에 2시간 넘게 인파를 헤쳐 가 야한 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바강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