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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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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Oct 10. 2018

온천 초보의 생애 첫 료칸 여행

다시 만날 때까지 아주머니도 료칸도 건강하기를

 온천에 재미를 붙인 건 올해 2월의 삿포로였다. 온천은 고사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몸을 담그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나였다. 대중목욕탕도 가지 않으니 하물며 온천은 오죽하랴. 그런데 호텔에 딸린 작은 욕장에서의 찬 바람과 뜨거운 온천수는 내게 강렬했다. 아마 좁은 노천탕 지붕으로 내리던 눈도 한몫 단단히 했으리라.


 두 번째로 경험한 온천은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 나하공항 근처의 호텔 온천이었다. 꽤 값나가 보이는 호텔인데 투숙은 하지 않고 온천만 이용했다. 이곳 노천탕에선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그다음은 공교롭게도 최북단 북해도의 관문 신치토세 공항이었다. 공항 청사에 온천이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가격이나 시설 또한 훌륭했다. 역시나 여기도 노천탕에 가면 비행기가 보였다.


 아무리 비행이 짧아도 공항에 가고 출국과 비행, 입국에 숙소를 찾아 떠나는-수많은 대기를 포함한-여정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 여정에 온천을 끼워 넣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굳이 돈을 들여서라도 공항에서 샤워를 하는 이유는 아마 모두 비슷하리라.


 겨울과 여름의 온천을 겪고 맞이한 가을에 본격적으로 온천욕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일본 남부 규슈의 대표적인 온천마을 유후인. 일종의 온천 여관인 료칸과 다양한 숙박업소가 즐비한 마을이다. 무턱대고 숙소를 정하려 보면 살펴보는데만 한 세월이 걸릴 텐데 다행히 우리에게는 좋은 추천이 있었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 소식을 가끔 들여다보는 블로그 이웃이 있는데 유후인 료칸에서의 경험을 맛깔난 글로 써주신 덕에 그만 거기에 영업당하고 말았다. 추천을 받았다기보다는 그분들의 경험에 끌렸다고 해야 하나. 그리하여 다른 데는 딱히 알아보지도 않고 마을 외곽 산 중턱에 있는 료칸으로 결정했다.


 하카타역 앞에서 예약해둔 렌터카를 인수해서 유후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세 번째 운전이라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다른 운전자들에 관대한 곳이라 초행길도 많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속도로에 올라 잠깐만 달리면 금방 도시를 벗어나 규슈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복사, 붙여 넣기 한 듯 푸른 숲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화창한 하늘과 울창한 숲을 즐기며 달리다 어김없이 휴게소에 들렀다. 여행에선 맛집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지만 렌터카 여행에선 현지인들처럼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해결하는 재미도 있다.(물론 일본 편의점과 휴게소의 식사는 대체로 맛있기도 하다.) 주차를 하고 둘러보면 신기하게 많은 사람들이 차 안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돈코츠 라멘으로 유명한 규슈로의 이번 여행에서 첫 라멘은 휴게소에서 차항과 함께 했다.


 길을 달려 도착한 유후인은 내 생각보다 아담했다. 유후인 역 앞에서 뻗어나간 길을 제외하면 여행객들을 유혹하는 곳은 많지 않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들이 대체로 편도 1차로인걸 보면 역시나 크지 않은 마을. 길을 걷는 사람들도 외지인이 현지인보다 훨씬 많은 분위기인데도 조용하니 느낌이 좋았다. 렌터카의 현지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알려줘 우리가 사진으로 익힌 것과는 사뭇 다른 료칸에 도착해 버렸다. 지도를 들여다보려는 찰나 직원이 무려 세 명이나 나와서 우리를 반긴다. 원래 목적지를 보여주자 차를 돌려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해줬고 결국 구글 지도의 도움으로 좁은 언덕을 오르고 올라 인생 첫 료칸에 도착했다.


유후인 역과 거리의 모습


 료칸 앞에 주차하니 사진으로 보아 마치 구면인듯한 아주머니께서 한달음에 나와 반겨주신다. 캐리어도 우리 대신 챙겨주시는데 료칸 입구에 걸린 숙박객 이름이 우리 밖에 없다. 그랬다, 무려 3개 층인 규모의 료칸에서 우리는 유일한 투숙객이었던 것. 료칸 주인의 영업은 조금 걱정됐지만 머무는 입장에서는 꽤나 반가웠다.


하루 묵었던 유후인의 료칸과 바깥의 모습


 료칸의 꽃은 온천이니 아주머니는 우리를 이끌고 온천 먼저 소개해주셨다. 남탕, 여탕, 가족탕 등 다양한데 머무는 사람이 우리 둘 뿐이니 여탕과 노천탕을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입욕 가능한 때에는 원할 때 아무 때나 마음대로 쓰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방으로 향했다. 우리가 묵은 방은 벚꽃을 뜻하는 사쿠라 방이었다. 호텔 라운지나 식당에서 다다미를 경험해봤지만 본격적인 방은 처음이다. 들어선 사쿠라 방의 느낌은 참 따뜻했다. 생각보다 넓은 방 중앙에는 도톰한 요와 이불이 두 채 깔려있었다. 그 넘어 미닫이 문으로 나뉜 공간은 유후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큰 창을 바라볼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온천욕을 마친 저녁에는 밤늦게까지 한 잔 기울이며 이곳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쿠라방의 모습


 짐을 풀고 잠시 쉬며 공간을 즐겼다. 밖에서 볼 때는 양옥의 모양이었지만 방 안은 영락없이 일본식 공간이다. 방안 작은 욕실에는 쪼그리고 들어갈 수 있는 히노끼탕이 있었다. 텔레비전 이라기에는 많이 작고 요즘은 모니터로 쓰기에도 작아 보이는 게 한편에 있고 오래됐지만 잘 작동하는 에어컨도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불 위에 누우니 폭신하고 깨끗한 침구가 편안하게 감싸준다. 료칸에 들어선 이상 정해진 일정이라곤 온천욕과 식사밖에 없으니 몸과 마음에 여유가 흘렀다.


내 생에 유일한 여탕 이용이 아닐런지

 짝꿍은 창가에서 가져온 책을 읽고 나는 이불 위에서 잠들듯 말 듯 졸다 보니 흐르는 시간이 조금 아까웠다. 그래서 식전에 온천욕을 하려 어색한 유카타로 갈아입고 지하 같은 1층의 탕으로 향했다. 투숙객이 우리밖에 없으니 들어가기 전에 탕의 사진도 남겼다. 료칸의 객실과 마찬가지로 사용감이 있고 새것은 어디에도 없지만 정갈하고 깨끗하다. 족히 열 명은 들어갈 듯한 탕을 마음껏 쓴다니 운이 좋았다.


친절히 우리말도 적혀있는 온천 이용법


 운이 좋은 온천 초보의 온천욕이란 이런 것이다. 벽에 붙어있던 입욕 예절을 꼼꼼하게 숙지하고 탕에 입장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고 꼼꼼하게 샤워를 한다. 온천수에 몸을 담근다. 왠지 몸에 닿는 물의 느낌마저도 좋은 것 같다고 홀로 호들갑을 떤다. 뒤에 기대듯 몸을 늘어뜨리며 '아... 천국이다' 생각이 들 즈음, 그러니까 샤워한 시간과 비슷한 시간을 탕 안에서 보내고 나면 너무 더워 견디지 못하고 일어선다. 원래 몸에 열과 땀이 많은 사람이긴 하나 온천 초보인 나의 온천욕은 아직 이 정도 시간이 한계다. 온천욕이나 동네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모님 손 잡고 목욕탕 처음 가본 미취학 아동 정도의 입욕시간 되겠다.



 그렇다고 료칸 전체를 독점하는 이런 날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다시 유카타를 입고 몇 시간 전 안내받았던 노천탕으로 향했다. 높은 언덕에 위치한 료칸의 진가는 이 노천탕에서 드러났다. 문을 열자 바위들로 둘러싸인 탕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그 너머로는 유후인 한편이 내려다 보였다. 저녁시간 직전 해가 져가는 작은 마을을 바라보는 기분이 참 좋았다. 밥 짓는 김은 아니지만 눈에 들어오는 많은 집들의 온천 굴뚝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그곳들이 모두 크고 작은 료칸들이고 온천의 초보부터 고수까지 몸을 담그고 있겠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유후인 저녁의 공기는 제법 쌀쌀해서 노천탕을 즐기기 더 좋았다. 그러니까 나 같은 초보도 조금 더 오래 즐길 수 있고 안팎의 온도차가 주는 재미도 있는데 경치까지 좋으니 그 탕 하나만으로도 이미 여행이 완성된 기분이었다. 아니 완성이라고 생각해버렸다.


해질녘 언덕 위 료칸 노천탕 에서 내려다보는 유후인의 모습


 료칸을 잡을 때 방만 예약하고 일본식 정찬인 가이세키는 예약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료칸 자체가 비싸다는 선입견이 강했는데 그 생각엔 가이세키가 한몫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많은 주변 여행자들로부터 질이 좋은 건 알겠지만 너무 전통식이라 요즘 우리 입에는 안 맞는단 얘기를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는 저렴했던 이 료칸은 가이세키도 생각보단 저렴해 짝꿍과 의논 끝에 가이세키에 도전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내려가니 오래된 호텔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같은 식당이 우리를 반겼다. 한 쟁반씩 받아 들었는데 보기만 해도 도전하길 잘했다는 답은 나왔고 한 절음씩 들다 보니 이내 이 가이세키로 료칸 여행이 완성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멋진 분위기의 식당과 질 좋고 맛있었단 가이세키


 정말 친절하지만 딱 부담스럽지 않은 아주머니의 환대를 받으며 즐긴 첫 료칸 여행은 정말이지 신선놀음이었다. 식후에도, 그다음 날에도 온천에 몸을 담갔으니 온천 초보의 짧은 입욕이지만 여러 번 반복해 충분히 즐겼다. 평소 아침을 안 먹고 여행 가선 늦잠을 즐기니 조식을 예약하지 않았는데 가이세키의 여운 때문인지 체크아웃할 때 아침을 예약할걸 하는 후회가 조금 남았다.


 언제부턴가 여행지에서 다음을 기약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좋은 경험 때문이 한몫하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여행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라며 막연한 기약을 하며 미리미리 그리움을 만드는 거다. 다음에 유후인에 간다면 꼭 이 료칸이었으면 좋겠고, 모쪼록 눈 내린 유후인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겠고, 아주머니도 료칸도 건강하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료칸의 계단에서 거실의 통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경치와 공간의 느낌이 좋아 꽤나 부러웠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라서 가질 수 있는 부러움이겠지.


겨울에 방문한다면 저 화로에서 차 한잔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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