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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Mar 04. 2019

동포를 외면하고 싶어 지는 순간들

아닌 척 해도 한국인 티가 나지만서도

 "외국에서 웃으며 접근하는 한국인을 가장 조심해야 된다." 10대 후반 유학을 떠나는 나에게 아버지께서 해주신 조언이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홀로 타지로 향하던 나는 처음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빠르게 적응하고 말도 늘리고자 한인이라곤 선배 한 명 있는 공립학교로 갔다. 홈스테이 가족도 현지인에 새로 전학 온 유학생들도 죄다 외국인이라 외로움이 느는 만큼 말도 빨리 늘었다. 고작 4개월쯤 지났을까 향수병이 터져 처음으로 한인사회에 발을 들였다. 한인 가정이 200가구 정도 되고 인구가 80만 정도인 작은 도시라 한인 식료품점도 달랑 하나, 음식점도 차이나타운 근처에 서너 개가 전부인 작은 사회였다. 문 닫는 시간 차이나타운 푸드코트의 접시 뷔페에서 떨이로 식사하거나 마트 세일 방송에 뜀박질하던 때라 한식은 사치였다. 향수병이 치고 올라올 때면 큰맘 먹고 식료품점을 찾아 고르고 골라 4달러가 넘는 한, 두 끼 먹을 반찬 하나를 사들고 며칠이고 나눠 먹곤 했다. 이럴 때마다 무심한 듯, 혹은 때론 친절한 듯 건네 오는 우리말 인사와 질문이 참 반가웠다.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아직도 영업 중인 듯해 반갑다. / 구글 지도 거리뷰 캡처


 한국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이민길에 올랐을 우리네 이민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남 잘되는 꼴을 잘 못 본다. 음식점이나 미용실 같이 작은 매장을 힘겹게 차리고는 타게팅은 같은 한인 사회라 작은 파이를 나눠먹느라 서로 지친다. 식료품점은 하나밖에 안 되는 이민사회에 교회는 셋이나 되었는데 놀랍게도 이 신앙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배척했다. 자녀들에게 다른 교회 사람들이 운영하는 업장은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소문은 주로 나쁜 쪽으로 각색되어 빠르게 돌았고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신기하게도 한인교회도 다니지 않고 아는 친구도 없이 가끔 슈퍼마켓이나 푸드코트를 기웃거리던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함께 공부하던 동양계 친구들을 따라 DVD 대여점을 갔는데 마침 주인이 한인이었다. 교복에 적힌 학교 이름을 살피던 그녀는 내 얘기를 들었다며 나름 화제라고 했다. 홀몸으로 유학 온 어린애가 한인사회에 인사도 없고 교회도 안 다니며 외국물만 먹고 다닌다... 는 뉘앙스에 덧붙여 그런 식으로 있으면 절대 여기에 정착 못한다는 따뜻한 조언이 이어졌다. 일단 나를 어떻게 아는지 신기해 물어보니 벽에 있는 한인사회 홍보용 게시판을 가리켰는데 거기엔 나를 홍보자료로 사용한 한인 유학원의 광고가 있었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이 운영하는 처음 보는 유학원이었다.


 어이가 없어 자초지종을 따져 물으려 유학원을 찾았다. 사장에게 인사하고 나를 소개하자 꽤나 반갑게 맞아줬다. 만나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됐고, 일면식도 없는 나를 허락도 없이 홍보에 쓴 상황에 대해 묻자 오히려 고마워하란다. 자기가 돈 들여 만든 홍보물에 PR을 해줬다는 거다. 이때의 나는 나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어른들에게 바득바득 대들던 때라 결국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갈수록 어이없어하던 그는 급기야 네 부모는 뭐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배워먹었냐느니 전화 연결을 시켜주면 자랑스러워할 거란 궤변을 늘어놨다. 끝내 말이 통하지 않아 한국에 계신 아버지와 통화를 했고 아버지께선 당장 사과하고 모든 게시물을 수거하라 하셨다. 끝까지 잘못을 납득하지 못했던 그는 마지못해 사과하고 게시물들을 떼고선 나에 대해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조언이 와 닿았다. 웃으며 다가와 뒤통수를 치려는 동포들도 있지만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한인사회에 녹아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난 인연들도 있고 좋아서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통해 종종 나에 대한 소문을 듣곤 했다. 시내 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여러 학교의 학생들과 섞여 들은 학기가 있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한인교회로 이끌었다. 주일에 나와서 공이나 차자, 공짜로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는데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교회 사람들이 정말 좋은데 꼭 소개하고 싶다 등등. 단 한 번도 동행하지 않았기에 나는 점점 더 이상한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몇 년째 현지에 살면서 현지나 다른 문화권 식당에선 주문을 힘들어하고 현지인 친구가 없으며 하교 후엔 한인 PC방과 노래방으로 향하는 그들이 더 이상했다. 물론 본인들이 다니는 교회 사람 것만 골라 이용하면서.


에일리언들끼리 좀 친하게 잘 지냅시다. 둥글게 둥글게.


 이민사회는 작은 한국과 비슷하니 국내에서의 모습들을 그대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행하는 동포들을 마주치다 보면 더 싫은 장면들도 있다. 흔히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보이는 모습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벼락부자 행세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모처럼의 여행이니 외식이나 쇼핑을 일삼으며 마주치는 현지인들을 깔보고 하대하는 행태다. 돈 쓴 만큼 대접받는다는 논리를 댈 수도 있겠지만 대접은 돈만 쓴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선 갑질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 된 지 오래인데 정작 밖에만 나서면 현지인에게 갑질 하는 사람들을 흔히 마주칠 수 있다.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예의 없는 반말이나 이놈이니 이 새끼 들이니 욕설을 일삼기도 하는데 그런 건 말을 몰라도 느껴진다. 어디서든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고 동포가 아닌 척하고 싶어 진다. 이런 부류의 단골 멘트 중 하나는 본인들이 여기 다 먹여 살렸다는 건데 제발 진짜 먹여 살린 다음에 얘기했으면 좋겠다. 벼락부자 행세만 할 줄 알지 씀씀이는 짠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


이 정도로 쓰면서 먹여 살린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다른 부류는 여행지에서 일탈을 하다 보니 공중도덕까지 탈선한 경우다. 청춘들의 천국처럼 불리는 곳에서부터 업무상의 출장지까지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양하게 목격된다. 에메랄드빛 물로 연신 뛰어드는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이 넘치는 마을엔 술과 다른 것들에 취해 고성방가를 일삼다 여기저기 쓰러지는 청춘들도 넘친다. 분위기 좋은 강가에 늘어져서 시간을 흘려보내며 쉬는 낙원 같은 술집에선 "위하여!"를 앞세운 술 게임이 대판 벌어진다. 주변의 시선이나 분위기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어쩌다 식당이나 술집의 옆자리에 이런 사람들이 앉으면 나는 더욱 굳게 입을 다물고 상만 바라보며 앉아있다 조용히 자리를 뜨곤 한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네이버에 많이 나오는 맛집 등을 점점 더 믿고 거르게 되는 이유다. 최근에 머물렀던 예쁘고 편안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체크아웃하는 날부터 한국의 대학생 자원봉사자 팀이 전세내고 숙박을 한다기에 내심 '전세'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부디 학생들이 일 내는 것 없이 잘 쓰고 가기를 바란다 우려를 전했는데 웬걸 몇 주 후 인사차 들렀더니 난리도 아니었단다. 건물 안 부서진 게 다행이라고.


아늑하고 예뻤던 게스트하우스


 위 두 부류를 합해서 숙성시키면 나오는 부류가 있다. 바게트가 참 맛있는 나라에 몇 번 여행을 갔다. 검색창에 이 나라의 이름을 넣으면 추천 검색어에 여자나 밤문화가 따라붙어 나오곤 한다. 그러니 여자를 만나거나 밤문화를 즐기러 가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다. 현지에 가보면 심심찮게 현지 여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는데 딱 봐도 부부나 연인은 아닌 다국적 커플이 많다. 배 나온 서양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은 보통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 한인들은 유독 다른 한인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 신경 쓰인다는 건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말이다. 어느 날 호텔방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데 옆방에 3대 3으로 들어온 한인과 현지인들이 시끄럽게 해도 너무 시끄럽게 했다. 말도 안 통하고 영어도 못하면서 굳이 한국식 술 게임을 가르치려 몇십 분째 소리를 지르기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벽을 세게 두드려봐도 몇 초 조용하다가 다시 시작. 결국 프런트에 내려가서 얘기하니 직원이 당신도 한국인이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가 조용하라 얘기해도 소용없을 거 잘 알지 않느냐 말한다. 그래도 일단 전화하는 걸 보고 올라왔는데 복도에 쩌렁쩌렁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벨을 누르고 전화받지 않았느냐, 목소리 좀 낮추라 얘기하니 아예 욕을 하며 모두 나가버렸다.


 예전 직장에서 높으신 분을 모시고 출장 갔을 때도 그렇고 여행 다니는 구석구석에서 한국 아저씨들의 아가씨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어찌나 마사지와 아가씨 타령들인지 최근 들려온 모 지방의원의 해외 순방 중의 행태는 안 봐도 뻔하다. 주변에 비해 관광객이 적어 그나마 때가 덜 탔다고 느껴지는 라오스도 몇 년 전과 달라졌다. 툭툭 기사들이나 야시장 상인들의 한국어 실력이 느는 만큼 나의 민망함도 늘었다. 길을 걷는 한국인 남자들에게 언니?, 라오스 언니?, 예쁜 언니?, 레이디?, 레이디 붐붐? 등의 말을 던진다. 마주친 현지인이 안녕하세요 인사해 반갑게 받아줬는데 돌아오는 말이 언니? 이럴 때면 힘이 빠지다 못해 동포들에 대한 분노와 창피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귀국길에 오르려 공항 카운터에 줄을 섰는데 골프가방 잔뜩 든 일행이 가이드를 혼내고 있었다. 한 항공사에서 내놓은 승무원 등신대상을 가리키며 "최소한 저런 애들을 준비해야 했을 거 아냐!" 하고 손님이 소리치자 가이드는 연신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부턴 미스코리아 급으로 준비하겠습니다." 하더라. 왜 기분은 저들이 내고 부끄러움과 분노는 나의 몫인지 모르겠다.


 유학 갔다 돌아오는 길 환승하러 들렀던 공항 출국장 게이트에서 단체 관광 온 할아버지들이 활주로를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는 걸 봤다. 다른 일행들은 바닥에 앉아 화투판과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동행한 가이드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빨리 꺼달라 사정사정하는데도 불통이다. 결국 공안들이 왔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져 거의 울고 있는 가이드와 근엄한 공안들에게 더욱 근엄하게 "어디 어린놈들이 어르신한테"를 시전 하다 단체로 끌려갔다.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게 아닌 척 멀리 다른 쪽에 앉아있다 고개를 숙이고 탑승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이렇게 강력한 분들은 많이 없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고 이웃나라나 저 멀리 서양 사람들도 여행지에서 추태를 보인다. 그렇다고 남들도 그러니 우리라고 어떠냐 하지 말고 바꿔나가자.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기간이 비교적 짧으리 바람직한 여행 문화가 자리잡기 힘들었던 건 알고 있다. 최근 시민의식의 변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니 우리네 여행 문화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어떤 여행 문화가 옳다고 단정 할 순 없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기본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다른데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얼른 밖에서 마주치는 동포들이 그저 반갑기만 할 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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