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클리셰 '자식 같아서 그래'

자식한테도 그러시면 안 됩니다

by 스멀스멀

살면서 듣게 되는 수많은 상투적인 표현 들 중 요즘 나를 유독 괴롭히는 게 있는다. 아니 사실 오랫동안 괴로운 표현이였다.


'자식 같아서 그래.'

이 표현은 '딸 같아서 그래'와 '아들 같아서 그래', '예전의 나' 혹은 '나 젊을 때 같아서' 등으로 다양하게 발화될 텐데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다.


11월 초 처음 수영장에 재활차 나가 군상들의 온갖 희롱과 관심을 버텨냈다. 기왕 한 달이나 버틴 거 계속해보자 싶어 12월에도 용기 내어 등록하고 나가는 중이다. 월말과 월초가 되자 부쩍 '회원들과 함께 밥 먹자'는 제안이 운동 중에도 계속 들어온다. 내가 불편해할게 뻔해 보이는지 꼭 붙이는 말은 '자식 같아서 그래'라는 클리셰. 정말 모든 맥락을 제거하고 회원들끼리 식사 한 번 하는 친목의 자리라도 불편한 나인데 지난 한 달간 당해온 희롱과 관심을 생각하면 달가울 수가 없다. 사실은 이 또한 나에겐 하나의 희롱인 게 보통 위의 발화가 있을 땐 여럿이 나의 반응을 살피며 추임새를 넣고 깔깔대며 웃고 즐기곤 한다. 이제는 깔깔 내지는 깍깍에 가까운 웃음소리에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이다.


자식 같아서 그런다는 말은 보통 불합리한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쓰인다. 나이나 지위가 월등히 높은 쪽에서만 가능한 발화이니 요즘 표현으로 꼰대 짓이나 갑질에 자주 동원된다. 많은 경우 법적, 도의적으로 잘못된 상황에서 피해자를 내리누르고 납득시켜 상황을 모면하는 폭력적인 표현이다. 물론 실제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선의를 베풀 때 쓰이기도 하나 안 좋은 일이 상처로 더 박혀서 그런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폭력일 때가 더 많았다. 막말로 정말 자식 같다면 용돈이나 쥐어주든 뭐라도 물려주겠다고 하면 폭력을 감내하고 말동무 삼아볼 용의가 조금이라도 생길지도 모르겠다.


대학에서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며칠간의 프로젝트를 했을 때의 일이다. 팀원들 간 관계는 원만했고 팀원 대 교수의 관계도 아주 좋았다. 문제는 조교의 언행에서 여러 번 터졌다. 이동하는 차량에서 옆자리 여학생에게 "남자 볼 때 키가 몇 넘어야 마음에 들어?" 등을 묻더니 "남자는 키지만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가슴이 커야..." 따위의 성희롱을 대놓고 했다. 사진 찍을 땐 몸에 접촉하기 일쑤였고 상담을 빌미로 학생들을 깎아내리고 비난했다. 결국 팀원 간 협심해 프로젝트는 진행하되 조교를 어느 정도 격리하고 대놓고 면박을 주며 행동을 제지하기에 이르렀다. 돌이켜 생각하면 현장을 목격하고 그 정도 행동에 그친 내가 부끄럽지만 당시엔 꽤나 진지하게 교수와 상의해서 행동했던 일이다.


가족 구성원에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다는 이 중년의 조교는 위의 모든 상황을 '자식 같아서 그래' 하나로 퉁치고 넘어갔다. 한 번은 앉아있는 여학생의 어깨와 팔을 주무르며 안마를 하기에 제지하자 마치 장전된 말을 쏘아내듯 예의 클리셰를 발사했다. 화가 난 나머지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집에 가서 딸한테나 하세요" 하고 던졌다. 중년 조교의 권위에 대놓고 들이받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역겹기 그지없었지만 매번 당황하여 그 이상의 언행은 하지 못했다. 자식 같은 학생들을 괴롭히던 그는 상담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metoo-2859980_1920.jpg 희롱과 추행, 폭력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비인격적 대우는 자식에게도 하면 안됩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빙자해 당사자가 원하지도 않는 상담 세션을 여는 경우에도 위의 말은 자주 쓰인다. 보통 이럴 땐 내담자가 고민을 꺼내지 않았거나, 상담할 의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부모 같고 싶은 이의 자발적인 의사로 시작된 일방적 조언으로 자식 같은 사람을 내리누른다. 이때에도 '자식 같아서 그래'는 굉장히 좋은 면죄부다. 최근에는 꼰대, 아재, 갑질 등의 키워드가 관심을 받으며 아주 조금 분위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면죄부는 죄지은 쪽만 발 뻗고 편해지고 피해자는 그대로 고통받게 둔다.


'자식 같아서 그래'라는 갑의 말은 을에게 여지를 주지 않고 불합리를 합리화 하기에 비겁하고 폭력적이다. 아직도 부모 자식, 사제지간, 위아래, 선후배, 나이의 높고 낮음이 중요하고 절대적인 사회에서 위와 같은 표현은 갑이 스스로 부여하는 방패이고 그 방패를 두드리면 이단이 되는 을은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 불편한 몸을 고쳐보고자 나간 수영장에서 수백 번의 저항과 욕지거리를 참아내는 동안 '뱉으면 다시는 여기에 나올 수 없고 결국 내 손해다'라는 생각만이 나를 붙잡았다. 몸은 조금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멘탈은 정말 많이 맞았다.


희롱과 관심을 참아내며 열심히 운동하던 어느 날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이 있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쯤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네에 있는 쇼핑몰 1층 매장을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 셋 중 한 명이 내 손을 덥석 잡고 어루만지며 쓰다듬었다.


"어머~ 얘 손이 왜 이렇게 하얗고 예뻐! 이 손 좀 봐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손을 빼는 나의 손을 놓지 않고 돌려 만지며 "아들 같아서 그래.", "부럽다." 등등을 연발하던 어머니들. 그때 그들이 나를 자식 같다 얘기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정말 자식이라고 해도 의사에 반해 한 개인의 몸과 마음을 괴롭혀선 안된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살던 서울 변두리의 한 아파트에선 만날 때마다 잠지를 만져보겠다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손자 같아서 그런다고 생각했겠지만 나에겐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시대가 변해 요즘은 이런 상황이 적어지지 않았겠냐만은 손자 같다 하여 함부로 잠지를 탐하면 안 된다. 당연히 실제 손주도 안된다.


매의 눈을 가진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재활 프로그램을 열심히 수강 중이다. 지난 여행에서 이번 스마트폰을 구매한 이후 가장 많은 걸음을 기록했는데도 다른 때보다 덜 아픈 거 보니 운동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내심 기쁘다. 아무리 매의 눈을 가진 전문가라고 해도 회원님들의 시선을 피해 가장 구석에 박혀있는 나를 보고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걸 보면 신기하다. 물속에서 운동하는 나를 보며 엉덩이가 뒤로 빠졌다, 다리 움짐임이 잘못됐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호흡 신경 써라 등등.


수영장이나 헬스장 같이 운동하는데서 자주 트는 부류의 음악이 있다. 원곡의 장르는 상관없이 귀에 익은 옛날 음악이 많고 도대체 누가 리믹스했나 싶은, 운동욕을 끌어올리는 곡들이다. 12월 둘째 주 어느 날 시작할 땐 댄싱퀸, 맘마미아, 워털루의 리믹스로 연결되는 아바 메들리가 나왔다. 마칠 때는 만남의 광장 버전의 캐럴이 울려 퍼지며 기온은 떨어졌지만 이웃에 대한 관심과 정이 차고 넘치는 이 즈음에 딱 맞는 노래가 나왔다. 50분 동안 열심히 따라는 하는데 박자도 못 맞추고 동작이 무너져 허우적대다 보면 자기혐오가 들 정도지만 자식같이 예뻐해 주시는 회원님들의 관심이 더 큰 스트레스라 이를 견뎌내며 자기애를 키우고 있다.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얼평, 키평, 피부평이 난무하는 수영장에 가서 내 피부를 만져보고 싶다, 말라서 힘이 없을 거 같은데 역시 젊은 게 좋다 얘기하시는 분들과 내일도 운동을 해내야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밥 먹자는 콜이 밀려 들어와 황송하나 내 멘탈의 안위를 생각해서 그것만은 피해야겠다. 모두 바쁜 세상이라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자식들과 깔깔대며 드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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