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강사는 을도 아니라 병이나 정이다
작은 조직의 실무자로 1박 2일에 걸친 워크숍을 담당한 적이 있다. 약 반년 간의 해외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대학생 단원들을 위한 자리였다. 전임 실무자와 눈치 없는 상사 C가 진행하던 계획이 막 엎어지고 나한테 급히 넘어온 터라 재빨리 쥐어짜서 행사를 치러야 했다. 당일치기도 아니라 1박이 들어가는 행사는 장소를 구하는 게 큰 일이지만 다가오는 사업 종료를 위해 막말로 예산을 털어야 했어서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문제는 강사 섭외에 있었다. 촉박한 일정에 좋은 분들을 주제에 맞게 모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예산을 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사료는 원청 기관인 정부기관의 빡빡한 기준표를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강사료 기준표에 맞춰 가능한 좋은 강사를 시간에 맞게 섭외하는 것도 실무자의 능력이겠지만 애당초 기준표 자체가 세상 물정과 맞지 않았다. 1급부터 3급까지 나뉜 표에서 1급에 들기 위해선 1급 이상의 공무원, 정부기관 사장, 언론사 편집국장 이상, 실무 십수 년 이상의 특정 직급 등등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지만 그래 봤자 강사료는 턱없이 적었다.
행사 계획안에 1안, 2안으로 각 주제별 강사 섭외 안을 올려 C에게 결재를 받았다. 이런데 계신 분들을 네가 어떻게 모시냐고 코웃음 치는 C를 뒤로하고 나와-아니 그러면 결재는 왜 하나?-보기 좋게 1, 2안에 해당하는 분들로 모두 섭외를 마쳤다. 연락처를 구할 길이 없는 분은 다짜고짜 장문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연락하니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분들은 그들대로, 프리랜서는 또 그들대로 일정을 만들어 강의를 나가는데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주어진 주제와 청중에 맞춰 강의안을 구성하기 위해선 자료조사와 작성, 연습이 필요하다. 더불어 해당 시간에 본연의 자리를 벗어나 강단에 서는 건 시공간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는 강의 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문 강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존 일정과의 조정이 필요하고 많은 공력이 드는 일이다.
성공적으로 강사들을 섭외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무개념 보스 G가 강사료를 가지고 쥐 잡듯이 잡기 시작한 것이다. 꽤 유명한 교육회사의 대표인 분을 두고 본인이 그 회사를 모른단 이유로 '대표'라고 다 같은 대표냐 이 강사료는 절대 안 된다며 딴지 걸었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하급의 강사료를 책정할까 물으면 그저 화만 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CSR 분야에서 날리시는 팀장님은 '일개 팀장 따위', 사회적 기업 업계에서 유명한 곳의 연구원은 '듣도 보도 못한 데서 지들끼리만 부르는 연구원' 등으로 깎아내려졌다. 다른 이유는 없이 돈이 아깝다는 게 G가 부르짖던 이유였는데 그 사업은 예산이 너무 많이 남아 수억을 급히 탕진하는 상황인지라 나는 복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애당초 좋은 강사를 섭외하기 위한 건 사업의 주체인 귀국 봉사단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고 그를 위해선 강사들에게 최소한의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이런 논리 따위 먹히지 않았다.
1급에 해당하는 기준은 아래와 같았다.
○ 1급 상당 이상의 공무원
○ 전현직 대학 총장, 전현직 정부기관 사장 및 원장
○ 언론기관의 편집국장급 이상
○ 해당분야 경력 20년 이상(석박사 소지자...)
... (후략)
그리고 이들의 1시간당 강사료는 20만 원이 채 되지 않으니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강의료를 가지고 딴지 걸던 날이 워크숍 전날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G는 일단 되는대로 일을 치루라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합당하게 책정한 강사료에 규정에 맞는 원고료까지 합산해서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정작 워크숍에 참석한 G는 개회사는 치워두고 자신의 옛날 얘기로 개소리를 늘어놓느라 첫 시간 강사를 기다리게 하고선 강사님께 알랑방귀는 다 뀌었다.(눈치 없는 상사 C도-당연히-빠지지 않았다.) 그저 입 다물고 약속된 시간을 강사에게 내어주면 되었을 일을 괜한 언행으로 실무자들을 창피하게 만들고 강사는 불쾌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1박 2일간의 워크숍은 잘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집중해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강사들은 시간이 부족한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강사료 영수증에 사인을 받을 땐 (원고료를 기준만 안내했던 관계로)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연신 이것밖에 못 드려 죄송하다 했다. 강사료 기준표만 보면 실로 죄송할 수밖에 없는 액수였다.
나는 봉사활동을 주제로 대학생 때부터 종종 단발성 강의를 해왔다. 제일 처음 돈을 받고 강단에 섰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많이 겪어본 분야지만 공부한 전공이 아니기에 떨렸고, 2시간이란 긴 시간이 떨렸으며,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여중이라 떨렸다. 이때 나를 섭외했던 실무자도 나에게 이것밖에 못 드려 죄송하다고 얘기했다. 나는 처음에 2시간 강의에 일당을 넘는 금액이라 대단히 기뻤지만 준비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2시간 강의를 위해 요령 없는 초보 강사가 며칠을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질 좋은 강의를 위해서는 매 강의 준비시간이 꽤 들어간다. 아무리 같거나 비슷한 주제를 반복한다 한들 청중이 바뀌고 시간이 달라지면 그만큼 준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하루 한 시간의 강의를 위해서 그 날은 다른 스케줄을 포기해야 하기 일쑤며 교통비와 식대 등 생각 이상의 부대비용이 든다. 차로 왕복 예닐곱 시간 걸리는 곳의 강의도 보통 '교통비와 식비를 포함하여' 비슷하게 책정되니 배고픈 강사들은 가끔 말도 안 되는 수익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 지방에 있는 유명한 국립대에 간 적이 있다. 교사를 양성하는 이름 있는 학교였다. 미래에 선생님이 될 훌륭한 인재들이 해외 봉사활동을 앞두고 교육받는 자리에 갔다. 차가 없으면 너무 힘든 위치라 새벽부터 운전해서 식사를 하고 차에서 쉬다 강의장에 갔다. 도착해보니 강의장으로 바로 오라던 실무자도 보이지 않고 문은 잠겨있었다. 뒤늦게 온 실무자는 명함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인사도 없이 본인 일로 정신이 없어 장비를 준비하고 진행과 인사를 도맡아 한 후 강의를 마치고 나왔다. 실무자 사무실에 찾아가도 보이지 않기에 문자로 인사를 하고 나왔으나 답장 조차 오지 않았다. 어떤 대학은 연말에 한 강의의 강의료를 이듬해 첫 분기 말에 넣어주기도 했다. 대학 행정이 답답하고 실무자들이 얼마나 바쁜지 알기에 그냥 잊고 기다리다 받았다. 나 같은 사람이야 1년에 몇 번 강단에 설 때나 강사라 불리는 사람이니 따져도 그만이지만 전업 강사들은 따질 수도 없다. 갑을병정의 서열에서 병이나 정쯤 되는 비정규 강사들은 언젠가 또 불러줄지 모를 곳에 감히 따질 수 없다.
강사와 섭외한 실무자의 사이가 아니더라도 업무 할 때 당사자끼리 접촉하고 일하는 게 기본이다. 강사를 섭외해서 교육을 진행한다면 응당 담당자가 맞이하고 제반 업무를 해야 한다. 충분하지 못한 강의료, 실비에 대한 지원 등은 실무자 혼자의 재량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은걸 안다. 관행, 관례, 시스템 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이 크니 그런 부분을 실무자들이 모두 해결해주길 바라기엔 무리가 있다. 최소한의 예의를 다해 밝게 맞아주고 물 한 잔이라도 단상에 준비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 싶다. 몇 주 전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에 갔는데 그가 물을 제공받지 못했다는 걸 강연 끝에서야 눈치챘다. 나라도 재빨리 준비했으면 좋았을걸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후회했다. 그 강연을 마련한 쪽은 물 한잔 말고도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 진행으로 한 명의 강사를 잃었다.
처음 얘기한 경우처럼 강사는 섭외한 쪽에서도 을이 아니라 병이나 정이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에는 마치 하청의 하청 같은 우리네 조직구조가 단단히 버티고 있다. 서비스를 이용하고 제값을 지불하는데 우리 사회는 너무 인색하다. 강사가 더 외로운 건 많은 경우에 청중에게도 을이라는 것이고 물리적으로 몸 한번 편이 앉거나 기댈 곳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나와 가까운 한 시간강사는 강단에 15년 넘게 섰는데 3학점 강의에 월 30만 원 초반을 받는다. 한 달 12시간에 30만 원이라고 생각할게 아닌 게 그 날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며 강의 준비를 생각하면 턱없이 적은 대우다. 1학년 때 필수 교양을 가르치던 한 시간강사는 3학점 강의 3개를 하루에 연달아서 했다. 9시에 시작해 6시에 끝났는데 중간중간 15분 쉬는 시간에 빈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는 게 휴식의 전부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강단에 서본 이후 어느 날 그의 지친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다닌 캠퍼스에 시간강사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달랑 대기실 두 개가 전부였던 걸 보면 그들은 몸 기댈 곳도 없어 더 힘들다. 학교에서 강제하는 학생 면담을 할 연구실도 없고 학생식당에서 정수기 물 떠놓고 마주하기도 어려운 일이니 여러모로 힘든 삶이다.
강사들과 그 주변에 대해 짧게 적었지만 이런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고객센터, 음식점, 백화점 등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이런 장면이 즐비하다. 가끔 도를 많이 넘어서 미디어를 통해 공분을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디어에 나오지 않아도 하루 종일 어딘가에서 강약만 다를 뿐 발에 차일 만큼 널린 일이다. 서비스나 제화를 제공받고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데 서로서로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만 잘 챙겨도 서로 조금 더 행복해지고 나아가 사회도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