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스러운 척수 반사식 대화에 대하여
일주일 중 3일은 수영장에 가는 날이다.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꽤 꾸준히 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꾸준히 수영장에 나가기 위해 견뎌야 하는 게 많았지만 가장 큰 장애물 두 가지가 있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부터 관심이란 이름으로 질문과 희롱 세례를 날리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을 우선 견뎌야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엔 마무리 운동 중 손뼉을 치는 게 있었는데 강사의 입에서 나온 청일점이란 말에 반응한 그들은 좀비 떼처럼 몰려와선 손을 잡고 깔깔대며 놓아주지 않았다. 이때도 아들 같아서 그런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제발 아들 손을 잡으시길 바란다. 이 시간을 견뎌내고 샤워실에 들어가면 두 번째 장애물들을 만난다. 샤워실과 탈의실 전체가 울리는 큰 소리로 떠드는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이다.
처음 수영장에 갔던 날부터 나를 괴롭혔던 이 사람들은 서로를 사장님이라 부른다. 바깥에서도 아는 사이인가 싶었는데 드나들 땐 혼자인 거 보면 여기서만 만나는 것 같다. 십 수명이 동시에 이용 중에도 모두 조용히 기민하게 씻고, 말리고, 입고 나가는데 서너 명의 같은 무리만이 항상 시끄럽고 더디다. 떠들기 집중해 행동이 느려지니 결국 고통받는 시간도 길어진다. 그중 목소리가 가장 큰 사장님이 쉬지 않고 대화를 주도하면 몇몇이 거드는게 보통이다.
이 목소리가 가장 큰 사장님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써먹는 레퍼토리가 있다. 현 정권이나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며 '쪽팔린 줄도 모르고' 북한에게 갖다 주고 쇼 한다는 것이다. 이 레퍼토리로 미루어 짐작컨데 아마 잔뜩 우편향되어 계시거나 어딘지 본인도 잘 모르시는데 가있는 것 같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쪽팔린 줄 모르고'라는 관용구는 20분 안에 씻고 환복 하는 사이 족히 50번은 듣는 것 같다. 이어지는 말로는 주적을 다 까부수고 죽여버려야 한다 따위의 내용인걸 보면 잔뜩 우편향된 전쟁광이 아닌가 생각한다. 원하지 않지만 들을 수밖에 없는 내 입속엔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건 '쪽팔리지 않느냐'는 물음이 계속 맴돈다. 유익한 대화를 나누기 힘든 상대로 보이니 두 달이나 뱉지 않고 참은 내가 여러모로 대견하다.
그런데 내가 입안의 것을 참지 못하고 뱉어낸 대화가 있었다. 어김없이 그들은 모여서 예의 대화를 하며 쳐들어가서 다 죽여버리자, 젊은것들이 안 하면 나라도 한다 운운하고 있었다. 대화의 주변에서 추임새만 넣던 한 명이 혹시 4시 타임에 오는 아저씨 둘을 아느냐 목소리 큰 사장님에게 물었다. 모른다는 대답에 '아주 희한한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인 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안된다고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목소리 큰 사장이 '그 사람들 전라도 출신이죠?' 묻자 주변인이 '아뇨, 경상도래요' 다시 목소리 큰 사장이 '거봐 거기도 다 빨갱이라니까' 이 순간 거울을 보고 있던 나는 참지 못하고 정말 빵 터져서 웃고 말았다. 대화의 내용이나 사고의 수준 같은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말이지 입안의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려 그만 대화를 끊는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이때가 그들의 대화로 1초라도 웃었던 유일한 순간이다. 위의 대화로 미루어보면 목소리 큰 사장님은 잔뜩 우편향된 전쟁광에 지역갈등을 조장하며 피아식별도 힘든 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이 이런 뻔한 정치 얘기(라고 부를수 있나 싶지만서도)를 시끄럽게 하는 건 물론 듣고 있기 어렵지만 가끔 하는 음담패설만큼 괴롭지는 않다. 아름답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지면이 더러워지는 수준이니 굳이 내용과 워딩을 옮기지는 않겠지만 음담패설과 지저분한 웃음들이 섞일 때면 정말이지 욕지거리가 입술 끝에 걸린다. 오래 들었다간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기껏 한 운동이 값을 하지 못하니 이럴 땐 빠르게 탈출하는 게 답이다. 그런데 하루는 샤워의 시작 부분부터 떠들기 시작하니 어쩔 수 없이 듣는 수밖에 없었는데 내용이 가관이다.
실없는 음담패설이 갈 데까지 가니 급기야 그들이 키우는 개들에 대한 음담패설을 하기 시작했다. 목소리 큰 사장이 키우는 개는 제 기분 내킬 때마다 다리를 벌려댄단다. 그러자 주변인이 동물권을 논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 개의 성생활 만족을 위한 수캐가 필요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동물권이 등장하는 음담패설이라니 참으로 지적이고 고급스럽기 그지없다. 오늘에야말로 조용히 하자 한마디 해야 하나 생각할 즈음 목소리 큰 아저씨가 한 술 더 떴다. 아예 비아그라까지 먹여서 하루에 몇 번이고 하게 해 줘야 돼.
졌다. 나는 잔뜩 우편향된 전쟁광에 지역갈등을 조장하며 피아식별도 힘든 동물권 옹호론자가 정말로 피아식별을 못하는 걸 확인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도대체 사장님의 정체는 무엇인가. 딱 하나 확실한 건 쪽팔린 게 무엇인지는 정말로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그거 하나.
아, 내 안에 숨어있는 분노와 폭력성도 새삼스레 발견했다. 굳이 발견 안 해도 괜찮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