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라는 이름의 폭력

수영장의 어머님들

by 스멀스멀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고민 끝에 동네 수영장에 등록했다. 물도, 운동도, 그리고 어쩌면 사람의 무리를 싫어하는 나에겐 큰 결심이다. 구질구질하게 오래 살고 싶지 않고 갈 때 되면 깔끔하게 급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젊다. 좋아하는 여행과 술을 계속 즐기려니 점점 가늘어지지만 동시에 무거워지는 다리를 어떻게든 해야겠다 싶었다. 규모 있는 스포츠센터의 홈페이지를 잘 찾아보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 전화로 문의했다. 전화기 너머의 무뚝뚝한 직원은 자꾸 전화를 끊으려 해서 내가 끊어버릴까 싶었지만 그래도 끝내 등록일을 알아냈다.


등록일 아침에 가보니 아마 전화를 받았을 그 직원은 여전히 대화를 계속 끝내려 했다. 불합리한 불친절에 기분이 상해도 아쉬운 사람이 참는 수밖에. 직원은 재차 남자는 당신 혼자일 텐데 괜찮겠느냐 무성의하게 물었다. 그 이유로 등록하고 나오지 않거나 환불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환불규정 하나는 꼼꼼하게 설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무성의한 데스크 직원은 자기네 프로그램 시간과 담당 강사도 잘 모른다며 '아마도 이 분'일 거라며 전화번호 하나를 건넸다. 강사에게 직접 시간을 알아내란다. 이러면 또 어쩌겠나, 아쉬운 사람이 알아내는 수밖에. 정중히 보낸 문자에 며칠 답이 없어, 그래, 깔끔하게 환불하자 마음먹자마자 전화가 왔다. 굉장히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를 받았는데 역시나 "남자는 혼자인데 열심히 운동만 한다고 생각하고 나오세요." 이 때는 이 말이 운동 외의 사회적 활동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인가 싶었다.


일주일이 흘러 수영장에 나가기 전날이 되니 겁쟁이에 떼쟁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수영복에 수모까지 다 사놓고선 물도, 운동도, 그리고 새로운 무리를 만나는 게 무섭고 싫어진 거다. 괜히 주변에 수영장에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을 묻질 않나, 다가올 내일이 무슨 일생일대의 면접이나 심사도 아닌데 뱃속이 슬슬 불편했다.


무서워하는 물로 제 발로 들어가려는 의지박약아에게 주변에선 응원과 용기를 줬다. 정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된다.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먹이를 주지 말고 운동만 해라. 힘들 테니 밥은 꼭 챙겨 먹고 가라. 한 번 해보자.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벗고(벌써 싫다) 대중탕 같은 샤워실에 들어서니(대중탕도 싫어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해보지 뭐 싶어 씻고 수영장으로 갔다. 자유수영이 한창인 레인들 옆 넓은 공간은 전 시간이 끝나고 정리로 분주했고 안경을 벗어 흐릿한 시야에 멀리 강사가 보였다. 30초 전쯤 그냥 해보지 뭐 싶어 놓고선 수영장 가장 구석에 주저앉아서 한 3분은 고민을 했나 보다. 대단한 의지박약아 납셨다.


머릿속에서 수십 번은 박차고 일어나 샤워실로 도로 향하다가 끝내 강사에게 발걸음을 옮겨 인사하고 무리를 마주했다. 강사가 전화로 어머님들이라 칭한 무리에게서의 어느 정도 관심은 예상했다. 며칠 지나면 그것도 잦아들겠고 그러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겠지 생각하며. 분명 오래 다니신 게 분명한 선배 어머님과 강사가 보조용구 착용법을 알려주며 도와줬다. 그때 물속의 어머님 한 분께서 "젊은 오빠 새로 왔다!" 소리치자 여럿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아, 정말이지 너무나도 싫은 상황이지만 가볍게 목례했다. 안경을 벗어 사람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게 내심 다행이었다.


물에 들어선 나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보조용구 덕분에 바닥에 발이 닿지 않자 물이 무서운 나는 잔뜩 겁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를 수십 개의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십 개의 눈은 눈으로만 나를 뜯지 않았고 수십 개의 입도 동시에 움직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얼평, 피부평, 키평. 젊은 사람이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과 추측. 나이와 사는 곳은 도대체 왜들 궁금하신지. 개중엔 가까이 다가와 요리조리 뜯으며 평가하고 잘생겼네 마네.


수심 1.8미터라는 표지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빠져 죽지 않을까 온 몸에 힘이 들어간 나는 여러모로 소비되다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강사가 모든 시선을 걷어갔을 때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여러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 하며 안도했던 나는 머지않아 나약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몸이 너무 약해져 힘든 게 아니라 나는 프로그램 중간에는 다들 운동에 집중할 줄로만 생각했던 거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풀장의 반대편에서 나를 보겠다고 넘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리저리 이동할 때도 계속 근처에서 쫓으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시간이 끝나고 주섬주섬 정리를 돕고 자리를 떴다. 옆에 있는 그 누구와도 대화할 상대가 없었지만 그게 어찌나 다행인지. 오늘 하루 정도는 아무하고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게 입을 꽉 다문 상태였다. 실제로 입을 너무 세게 다물고 있었는지 턱이 다 아파왔다. 첫 발은 어떻게든 떼었고 오늘 일과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샤워를 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탈의실의 격정적인 대화가 들려왔는데 하도 목소리도 크고 욕도 많이 섞여 싸움이 났나 보다 했다. 다 씻고 들어와 보니 이제는 또 잔뜩 우편향된 아버님들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권 욕에 열을 올리고 계셨다. 나에게도 동조할 것을 여러 번 요구했으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했다. 다시 입을 굳게 다물고 빨리 자리를 뜨려는데 그 와중에 또 내 수술 자국은 왜 궁금하신가. 우리 부모님이나 가족도 묻지 않는데 뭐 이리 초면의 타인에게 관심들이 많으신가.


10분여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내 생각보다 너무 큰 경험이었다. 왜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사람이 더 싫어지는 경험을 해야 하는가. 관심으로 너무 많이 두들겨 맞아 오랜만에 쓴 몸 보다 멘탈이 더 아파졌다. 내일은 또 누가 무엇을 물어보려나. 남자인 내가 이런데 우리나라에서 반대 상황은 상상도 안된다. 여기저기서 오지라퍼의 관심이란 폭력과 살아가는 우리 존재 파이팅.


열심히 운동만 한다고 생각하고 나오라는 강사의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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