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일정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어렴풋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지금 생각나는 기억 하나는 나의 고등학교 추억인데, 그 당시엔 N 아웃도어 브랜드의 재킷이 한창 유행했다.
그때의 나는 집에 차마 사달라고 말은 못 하고, 그렇다고 사춘기 소년의 마음에 괜히 다른 것은 입고 싶지 않아 교복만을 고수했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밤늦게 귀가하는 고등학교 스케줄을 소화하며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살을 에는 추위에 맞서기 위해 나는 내복을 입고 그 위에 목티, 그리고 교복 셔츠, 맨투맨까지 껴입고 나서야 그 위에 교복 재킷을 입었다.
그때는 왜 다른 재킷이 입기 싫었는지, 그리고 그 N 아웃도어 재킷을 입은 애들이 얼마나 따뜻해 보였는지.
시간이 지나 남들이 어떤 외투를 입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된 후에야,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찍은 사진들을 우연히 꺼내 보면, 사진 속엔 정말 나 혼자만 교복을 입고 있는데.
내가 제일 세련되어 보이는 건 그 깨달음이 주는 하나의 덤이랄까.
재킷의 디자인은 매년 변하지만 교복의 디자인은 오리지널 하니까.
그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선명해지는 기쁨.
앞으로도 그 기쁨이 종종 나의 시간 속에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