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다. 이제야 아버지 물건을 정리할 용기가 생겼다.
엄마는 "아직 그대로 둬. 손도 대지 마"라고 하셨지만, 1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더 미루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주말에 형제들이 함께 모여 아버지의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방은 그대로였다. 옷장에는 아버지의 옷들이 걸려 있고, 책상에는 안경과 책이 놓여 있었다. 마치 아버지가 잠시 외출하신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나 왔다" 하면 들어오실 것만 같았다.
"형,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동생이 물었다. "옷장부터 하자." 우리는 옷장 문을 열었다. 아버지 특유의 냄새가 났다. 오래된 나무와 장롱 방충제, 그리고 아버지의 체취.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장이 다섯 벌 걸려 있었다. 모두 비슷한 스타일의 검은색과 회색 정장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회사원으로 사셨다. 내가 입사한 그 회사에서 정년퇴직까지 하셨다. 내가 근무를 시작하기 5년 전부터 같은 회사에 다니셨던 것이다.
정장 주머니를 확인하다가 뭔가 만져졌다. 꺼내보니 명함이었다. "김철수 부장, 기획부" 아버지의 마지막 명함이었다. 나도 지금 부장이다. 같은 회사, 같은 직급. 하지만 아버지처럼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까.
"이거 봐." 동생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아버지의 다이어리였다. 1990년부터 2023년까지, 33년 치의 다이어리가 서랍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 일기를 쓰셨던 것이다.
최근 것부터 펼쳐봤다. "2023년 3월 15일. 오늘 병원 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한다. 가족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아야겠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아셨던 것이다.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뿐.
더 전 것을 펼쳤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남기신,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날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다.
"큰아들 영호가 오늘 대학에 입학했다. 등록금이 만만치 않지만, 아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니 기쁘다." 아버지가 적어 내려간 그 글은,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겼던 그날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했다. 나는 그저 당연하게 대학에 갔는데, 아버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페이지를 넘기자,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날을 떠올리며 짧은 감상을 남기셨다. "첫째 영호가 태어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 아버지의 필체가 조금 흔들려 있었다. 그날의 감격과 세월의 흐름에 뭉클하셨던 것 같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읽었다. 아버지의 일생이 그 안에 있었다. 회사 일, 가족 일, 고민, 기쁨, 슬픔.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의 속마음이 거기 있었다.
"영호가 요즘 힘들어 보인다. 회사 일이 고되나 보다.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부담스러울까 봐 참았다." 40대 때의 기록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다. 승진 경쟁에, 육아에, 경제적 압박에. 하지만 아버지에게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를 걱정하고 계셨다는 걸 이제야 안다.
책상 서랍에서 낡은 지갑을 발견했다. 열어보니 가족사진이 들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지갑이 다 낡아서 사진도 색이 바랬는데, 아버지는 평생 그 사진을 가지고 다니셨던 것이다.
그 옆에 상장 하나가 있었다. "근속 30년 공로상" 아버지가 정년퇴직하실 때 받으신 것이다. 돌아보니, 나 역시 30년을 넘게 걸어온 셈이다. 나도 언젠가 저런 상장을 받을 수 있을까.
공구 상자도 있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집에 뭐가 고장 나면 뚝딱뚝딱 고쳐주셨다.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 뭐가 고장 나면 AS센터에 전화하거나 새 걸 산다. 아버지 세대와 내 세대의 차이다.
낡은 공구들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드라이버, 망치, 펜치. 모두 손때가 묻어 있었다. 아버지의 손때. 이 공구들로 우리 집을 수리하셨고, 가구를 만드셨고, 자식들의 장난감을 고쳐주셨다.
"형, 이거 어떻게 할까?" 동생이 물었다. "버릴 수는 없고..." 나도 잠시 생각했다. "내가 가져갈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두고 싶어."
정리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옷은 기부하기로 했고, 책은 동생이 가져갔고, 다이어리와 사진은 나누어 가졌다. 명함과 공구는 내가 가져왔다. 금전적 가치는 없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이다.
집에 와서 아버지의 명함을 내 명함과 나란히 놓아봤다. 같은 회사, 같은 직급. 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다른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평생 한 회사에 다니시며 묵묵히 가족을 부양하셨다. 나는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자신을 위해 살아왔다.
어떤 게 더 나은 삶일까. 정답은 없다. 다만, 아버지의 삶에 감사할 뿐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주셨기에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다.
아버지의 공구 상자를 열어본다. 언젠가 이 공구들을 쓸 일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가지고 있고 싶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이 공구들이 나에게는 아버지 그 자체이니까.
50이 넘어서야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도 한때는 젊었고, 고민도 많으셨고, 힘든 시기도 있으셨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묵묵히 견디셨다. 나도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왜 말씀이 없으셨는지. 왜 항상 뒤에서 지켜만 보셨는지.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