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경, 경계 디자인 경계
지난 2024년, 숙명여자대학교는 총학생회의 부재로 인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로 학생 자치가 이루어졌다. 비대위는 교내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어 자리가 비는 경우, 이를 대신하여 중앙자치위
원회에서 대표자를 선출하여 학생 자치를 도맡는 기관이다. 주로 교육자치국, 문화기획국, 연대복지국, 재정사무국으로 구성되며, 교내 행사 기획, 복지 사업, 제휴 관리, 선거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다. 이렇게만 두고 보면 사실 총학생회와 다른 건 이름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종종 교내 커뮤니티를 보면 ‘총학생회가 없어서 그래.’, ‘비대위니까 어쩔 수 없어.’ 같은 반응을 볼 수 있다. 간혹 비대위 체제임에 불만을 갖는 경우도 있다. 사실 비대위 구성원들을 조금만 살펴보더라도, 그들을 탓하기는 힘들다.
비대위는 총학생회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각 단과대학생회, 과학생회에서 모여 꾸려가기에, 그들의 업무 부담 강도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총학생회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숙명여대를 만들어 나갔다. 총학과 비대위. 분명 두 이름 사이의 간극은 존재했을지라도, 그 속에서 학생 자치를 이루어가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한결같았다. 지난 1년간 묵묵히 비대위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익명 1의 인터뷰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숙명여자대학교 제5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설원’의 연대복지국장을 맡았던 익명입니다. 연대복지국은 숙명인을 비롯한 여성의 연대와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교내외 복지 사업을 담당하는 국서로 저를 포함해 총 4명의 인원이 함께하였습니다.
Q2. 24년도 비대위 ‘설원’에 나서게 된 이유는?
A. ‘설원’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 24년도 1월부터 4월까지 제56대 비대위 문화기획국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약 4개월 동안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해오름제를 즐기는 학우들의 모습을 볼 때나, 다이어리 배부 시 ‘제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계속해서 학생자치를 통하여 학우들의 더 나은 학교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Q3. 비대위를 하며 어려웠던 점은?
A. 비대위 사업에서 학우들의 참여가 저조할 때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의 사업을 시작하기 전, 국서 내에서 굉장히 많은 예시를 찾아본 뒤 사업 진행 전반적인 구성에 애정을 담아 오랜 시간 논의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사업이지만 학우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을 때가 많아 ‘어떻게 하면 참여도를 높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항상 했던 것 같습니다.
Q5. 비대위를 하면서 뿌듯했던 점은?
A. 학우분들께서 비대위 사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실 때 가장 뿌듯합니다. 학생 자치를 하다보면 과연 이 사업이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학교 생활에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주었을까? 등의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떠한 사업이 정말 좋았다, 진행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게되면, 사업을 진행하던 순간의 힘듦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뿌듯합니다.
Q6. 학우들에게 보내는 한마디
A. 제5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설원’에 관심 가져주신 모든 학우분들께 감사드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연대복지국의 행사에 참여해주신 모든 학우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다양한 학생자치 활동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익명 2의 인터뷰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전진숙명 제5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상반기 재정사무국원으로 활동했던 ‘경계’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설원’이 출마하기 이전, 24년도 1월부터 4월 보궐선거 전까지 비대위 재정사무국원으로 활동했습니다.
Q2. 24년도 비대위에 나서게 된 이유
A. 저의 대학생활 가장 큰 로망이 학생회 활동이었기 때문에 1학년때 과학생회 집행국원 활동을 시작으로 총학생회까지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와 학우를 위해 일하는 학생회의 모습이 정말 멋있게 보였거든요. 막연하게 총학생회에 들어가면 나도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Q3. 비대위를 하며 어려웠던 점
A. 현실이 정말 너무너무 달랐습니다. 나름 과학생회 경험으로 패기는 있었으나 재정사무국이라는 국서의 특성상 처음으로 숫자가 적힌 엑셀 파일을 보고, 회의의 속기록도 처음 작성해보고, 비대위가 주최하는 여러가지 행사의 스태프로 뛰며 여러모로 우당탕탕 얼레벌레 구멍을 메꾸던 제가 기억납니다. 자잘하게 문제도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 학점과 비대위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Q5. 비대위를 하면서 뿌듯했던 점
A. 항상 비대위 내의 사람들을 보면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나도 덩달아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뿌듯한 느낌도 들고요. 그리고 비대위의 여러 행사들에 현장 스태프로 일하면서 행사를 구성하고 만들어가는 과정도 물론 뿌듯함을 느끼지만, 행사 중에 마주하는 학우분들의 웃는 얼굴과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했을 때 정말정말 뿌듯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파란 11호: 시행착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족한 인력, 지원임에도 불구하고 비대위를 운영하는 이들은 최선을 다해 학생 자치를 이루어나갔다. 늘 학우들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녔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한 번쯤 봤을 법한 행사들, 당연하게 받았던 복지혜택들. 우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었던 사실들 속에는 비대위 구성원들의 시간과 노력이 담겨있다. 그들의 노고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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