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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삶의 자유와 그림자
서울 용산 한복판의 남영동 골목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익숙한 학교 담장이 나타난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숙대생이 된 지도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지만 이제는 이 동네
가 어느정도 나에게 친근한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지대 높은 원룸가는 밤이 되면 금세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집에 돌아가는 길일 때면 어두운 골목 앞에서 나는 때때로 한 번 걸음을 늦추게 된다. 이어폰을 빼고, 뒤에서 나는 발걸음이 내 그림자일 뿐임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속도를 낸다. 다만 안전의 걱정 이외에도 홀로 서기까지 1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우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개인주의적 양상으로 개개인의 단절감을 강화시키는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은 보편적인 문제로 자리잡았다.
나는 이 글에서 1인 가구로써 경험한 혼삶의 풍경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개인의 적응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나누고자 한다.
자취하는 학생의 하루는 대부분이 개인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을 만날때도 있지만, 단지 외로움을 누군가에게 기대어서 해결하는데엔 한계가 존재한다. 때문에 나는 홀로일때 남는 에너지를 온전히
나를 채우는 힘으로 바꿔보고자 했다.
학기 중엔 숙대 캠퍼스 곳곳이 나만의 시간으로 가득 찬 공간이 된다. 점심시간, 1캠퍼스 작은 정원 속 벤치에서 음악을 듣거나 중앙도서관에서 내가 고른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사람 많은 식당보단, 조금 걸어도 조용한 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여유 있게 먹는 게 오히려 나를 위로해준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나 역시 누구를 맞춰야 하지 않기에 가능한 시간들이다.
방학이 되면 나의 혼삶은 더욱 짙어진다. 숙대 근처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더 먼 곳을 찾아간다.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영화를 보거나 광화문 교보문고의 광활한 서가를 거닐며 책을 읽는 것은 휴일의 즐거움이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이런 명랑한 산책들이 홀로일때의 나를 지탱해준다.
그러나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마저 개인의 성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긴급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관계망이 없으면 위험은 지연되거나 은폐되기 마련이고, 그만큼 1인 가구는 안전 분야에서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슈는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는 783만 가구로 전체의 35.5%에 이른다. 2022년 대비 4.4% 늘어난 수치로, 1인 가구의 증가는 추세 자체가 구조적임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 1인 가구의 경우 위험은 성별화되어 나타난다. 같은 밤길이라도 더 많은 주의를 들여야 하며, 안전한 집을 구하려면 추가적인 비용이나 관리비를 감수해야 한다. 외부 동선의 사각지대, 무인 택배함 관리 취약, 낡은 건물 구조 같은 요소들이 결합되면 위험은 누적된다. 이는 개인이 조심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닌, 환경 설계와 구조 자체의 문제가 된다. 전문가들이 범죄예방 환경설계의 생활권 표준화를 권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 1인가구 추이 (2023, 통계청)
KWDI 「여성 1인가구의 안전 현황과 정책 대응 방안(I)」, 2022; 「(II)」, 2023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주거 안전의 최저선은 법과 제도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범죄예방 환경 설계를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또한 야간 이동의 안전 인프라도 생활권 단위로 확장되어야 한다. 보강 설비가 없는 어두운 보행로는 귀갓길의 위험으로 닥쳐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별 안전 지표와 주거 보안 사양 같은 정보를 이용해 안전한 집을 구하기 위해선 시민 누구나 접근하기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실천은 최선이 아닌 제도의 빈 곳을 메우는 보조선으로 작동해야한다. 나는 여전히 밤길에 이어폰을 빼고, 귀가 시간을 지키며, 빌라 조도의 사각을 피해다닌다. 그러나 나의 잘 사는 법이 생존만을
위한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혼자 사는 여성의 일상이 더 이상 방어 기술 목록으로만 채워지지 않도록, 공공은 더 촘촘히, 시장은 더 공정하게, 지역은 더 가깝게 다가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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