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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이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남성성’이라는 유령이.「공산당 선언」의 서두를 변주한 이 구호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더라도 인내심을 가져주시기를. 남성성, 그것은 실로 유령처럼 배회한다. 그러나 이 ‘남성성의 유령’은 마르크스가 말한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공산주의 유령이 실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하는 힘이었다면, 남성성의 유령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체가 없는 힘이다. 영광스러운 과거는 이미 지나갔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그들은 -육체는 없고 영혼만 남은-유령이다.
동시에 그들은 존재의 근거였던 영혼-즉, 사회적으로 배분된 권력-은 사라지고 초라한 몸뚱어리만 남았다는 점에서 -영혼은 없고 육체만 남은-좀비이다.
유령과 좀비를 닮아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남성성의 편린들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진주시 한 편의점에서 그가 ‘페미니스트’라 단정 지은 짧은 머리의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성에게서 발견되고, 근육질의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 주인공 복장을 하고 윤석열 탄핵 반대 시위에 참석한 남성에게서도 발견된다.
본고는 ‘청년 극우 남성들의 동성애 혐오’라는 돌출적 사회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동성애 반대운동을 조직해 왔던 보수 개신교와 청년 극우 남성들이 동성애 반대라는 의제 아래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지켜내려는 이성애의 규범성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청년 극우 남성들의 동성애 혐오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위기에 대한 반동적 제스처인 것이다. 우리는 극우 남성들의 이러한 규획을 전치하여, 반복한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저항하는 일, 그것은 동성애자들과 연대함으로써 가능하다.
이 글은 죽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으나 사실상 죽은 자들로서 유령-좀비 남성성을 떠나보내기 위한 느린 템포의 장송곡이며, 동시에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열어젖히고자 투쟁하는 이들을 위한 사랑의 찬가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젠더와 헤게모니적 남성성 현대 젠더 이론에 기초하면, 남성성과 여성성은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구성되고 반복적 수행(performance)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근대 이래 사회는 남성의 몸과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성의 것은 반대인 ‘특수’, ‘예외’, ‘결핍’으로 위치 시켜왔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회에서 남성성은 규범적이고 중심적인 것이었고, 여성성은 타자화되고 주변적인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보편-특수, 중심-주변으로서의 관계는 상보적인 것으로서, 특수한 것이 없다면 보편이 의미를 갖지 못하고 중심이 없다면 주변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즉, ‘남자다움’은 ‘여자’의 존재를 필요로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서만 각자가 완결적일 수 있기에, 두 개념은 서로 간의 차이에 의존적이다. 두 젠더의 차이가 클수록 각 젠더는 더욱 ‘고유한’ 것으로 보존된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은 역사적으로 이성애 가부장제를 지탱해 왔다.
이남희 외 14인,『젠더와 사회』, 동녘, 2015
사회학자 R.W 콘넬(Raewyn Connell)은 ‘남성성’마저 단일한 형태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헤게모니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특정 사회의 맥락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남성상’을 뜻한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여성성 및 다른 형태의 남성성들을 억압하거나 주변화하며 젠더 위계를 구성한다.
래윈 코널,『남성성/들』, 이매진, 2013
한국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근대 한국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크게 ‘경제적 부양자’와 ‘안보적 수호자’라는 두 정체성에 의해 구성되었다. 압축적 산업화와 국제관계에 대한 냉전적 인식 하에서 국가권력은 육체적으로 강인하며 근면·성실하고 나라를 지키는 용맹함을 가진 이들을 필요로 하였다. 먼저 산업화가 국가의 핵심 수행 과제로 부상하면서 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조건들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요소로 구성되었다. 70년대 경제발전의 중핵이었던 조선, 제철, 기계, 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은 고강도 육체노동을 요구했으며, 이에 ‘군 복무를 마친 건장한 남성’이 이상적 노동자상으로 상정되었다.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와 사회적 전환 속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화이트칼라 중산층 남성상, 감수성과 섬세함을 지닌 부드러운 남성상 등으로 조금씩 변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산업화를 배경으로 구성되었던 ‘육체성이 강조된 남성성’은 사회구조의 전환으로 변주를 겪은 다양한 남성성들의 원형으로서 현재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왔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당신들의 신국』, 돌베개, 2017
다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진영 간의 이념적·군사적 대립 구도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냉전 질서가 형성되었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반공주의는 한국 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북한과의 대결 상황 속에서 국가는 징병제를 시행해 남성들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했는데, 이는 국가가 매우 적은 비용으로 군사력을 확보하는 수단이자 시민에 대한 통제와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냉전과 분단 체제 하에서 징병제는 남성 시민성을 구성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20대에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는 ‘산업의 역군’으로 호명되며 남성성은 국가 근대화 서사의 주체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그 서사는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 여성을 향유하고 지배함으로써 완결되었다.
남성성이 완결되는 공간으로서 가정: 이성애 가부장제의 제도화
전통적 가정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남성성이 제도적으로 보증되고 재현되도록 기능하는 핵심 장치였다. 남성은 경제활동, 군복무, 경쟁 등을 통해 사회적 남성성을 입증하지만, 그것이 실질적 권위로 전환되는 장소는 ‘가정’이었다. 경제적 능력을 갖춘 가장이자 사회의 규범과 법질서를 내면화한 아버지로서의 지위는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비로소 실현되었다. 이러한 권위는 아내와 자녀를 보호하고 훈육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가정은 남성에게 위계와 통제 가능성을 보장하는 마지막 질서의 기반으로 존재하였다. 반면, 여성은 사회적 권력 분배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기에 생존을 위해 부양자인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에게 요구된 것은 경제적 독립이 아니라 가사 노동·돌봄·재생산 영역에서의 헌신이었으며, 이는 의무이자 덕목으로 취급되어 교환가치를 가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은 성적 매력을 관리하고 요리와 청소를 비롯한 가사 영역에서 능력을 증명함으로써 남성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해야 했다. 하층계급 여성의 경우 경공업 노동까지 떠안아야 했으나, 이는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중 부담일 뿐 사회적 권위로 이어지지 않았다.
가정 내부의 역할 구분은 명확했다. 공적 공간에서 규범과 법질서를 내면화한 아버지만이 자녀를 훈육할 권위를 갖는 반면, 아내는 돌봄과 위로의 기능을 담당해야 했다. 이는 여성이 사회적 대타자의 담론을 내면화하지 못한 존재로 위치 지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의 권위를 보장하고 성적 만족을 제공하며 가족제도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내의 의무’로 간주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몸은 남성의 성적 향유와 혈통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낭만적 로맨스와 부부 친밀성은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를 은폐하는 장치로 작동하였다. 여성에게 사회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권력과 자원을 보유한 남성과의 결혼이었으며, 여성성은 이에 맞추어 성적 매력과 가사 노동 수행력의 강화라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요컨대 이성애 가부장제는 여성의 사랑과 헌신, 남성의 향유와 소비를 조건으로 작동하는 질서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남성성은 여성성을 통해 비로소 완결되어 왔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위기
견고하게 유지되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거창한 이념적 도전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변화와 탈냉전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균열을 맞이했다. 우선 1990년대 이후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정보 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전환되면서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능력 역시 변화하였다. 육체적 강인함보다 전문 지식, 감정 노동, 유연한 소통 능력이 핵심 자원으로 부상했고,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소련의 붕괴로 상징되는 탈냉전 질서는 남성을 ‘안보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던 상징적 권위를 약화시
켰다. 군 복무는 더 이상 절대적인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지 못했으며 남성성의 전통적 기반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극적으로 심화시켰다. 평생직장을 전제로 유지되던 ‘가장의 신화’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속에서 무너졌다.
김민하 외 5인,『우파의 불만』, 글항아리, 2012
수많은 남성들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으며,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남성은 돈벌이, 여성은 가사’라는 성별 분업의 공식은 힘을 잃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론적으로 조명하면, 헤게모니적 남성성 개념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Connell에 따르면 남성성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구성된다. 따라서 산업 구조 전환과 탈냉전, 외환위기와 같은 거대한 사회경제적 격변은 곧 남성성의 지배적 형태 자체를 흔들어 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여기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라는 사회적 조건이 중첩되면서, 남성성은 더 이상 안정적·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하고 끊임 없는 불확실성과 불안정 속에서 재편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남성성의 위기는 단순한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 근대적 질서가 약속했던 ‘확실한 남성 모델’이 해체되는 구조적 현상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남성성을 지탱하던 사회경제적 기반이 약화되면서 많은 남성들은 정체성의 위기와 지위 상실의 불안, 그리고 모멸감을 경험하였다. 잃어버린 권위에 대한 좌절과 분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전이되었으며, 이러한 심리적 기반 위에서 극우주의가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김엘리. (2020) 20 30대 남성들의 하이브리드 남성성. 한국여성학. 36(1)
천정환. (2016).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 역사비평. 353-381
이성애 가부장 질서에 대한 투쟁적 공간으로서의 동성애
지금까지 산업구조의 변화와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기반을 어떻게 약화시켜왔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위기는 단지 외부적 구조 변화에 의해 촉발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젠더 질서 내부에서 제기되는 급진적 도전, 곧 동성애자들의 인정투쟁을 통해 더욱 가속화된다. 이들의 투쟁은 이성애를 전제로 구축된 가부장적 젠더 질서에 직접적인 균열을 낸다. 왜냐하면 이성애가 그 규범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이성애를 토대로 유지되어온 가부장제의 위기이며, 궁극적으로
는 이성애 가부장제를 통해 완결 되어 온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권위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레즈비언과 게이가 그들의 사랑과 섹슈얼리티를 실천하는 것은 가부장제의 맥락에서 구성된 젠더질서를 해체한다. 먼저 레즈비언(lesbian)은 ‘남성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여성되기’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이들이다. 레즈비언의 사랑은 남성에 의해 통제되고 재생산의 수단으로 이용되던 여성의 몸을 남성의 소유로부터 해방시키며, 그들의 인정투쟁은 여성의 생존을 남성의 사랑과 결혼에 종속시켜온 이성애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급진적 단초가 된다.
에이드리엔 리치 외 3인,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 현실문화, 2019
다음으로, 게이(gay)는 여성을 욕망하고 지배·통제함으로써 유지되는 남성성을 스스로 거부한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이성애 가부장제가 설정한 성별 규율을 벗어나 타자와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젠더 질서를 허문다. 이성애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들은 의리·충성·전우애 등 정서적 유대를 기반으로 남성 간의 결속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재생산해 왔다. 이러한 남성 간 결속(male bonding) 장치로서 ‘형제애’는여성을 향한 욕망과 향유라는 전제를 공유하기에 여성을 매개로 하지만, 여성을 배제한 남성 간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여성의 사회 진출과 권력 획득을 체계적으로 억압해 왔다. 이성애는 형제애를 완성하는 중요한 전제이기에 남성 동성애는 남성 공동체 내부로부터 더욱 강도 높은 거부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게이의 존재와 인정투쟁은 이성애를 전제로 구축된 형제애와 남성 권력 네트워크를 근본에서 흔들며, 이성애 가부장제를 해체하는 힘이 된다.
동성애자의 인정투쟁은 이성애가 규범으로 작동해 온 질서를 해체하기에, 이성애 가부장제와 상호 의존적으로 유지되어 온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위협이 된다. 따라서 청년 극우 남성들의 동성애 혐오는 단순히 동성애에 대한 개인적 입장의 문제를 넘어서 남성으로서의 권력과 지위를 방어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으로 기능한다. 동성애 혐오와 안티 페미니즘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유지하고 보수하고자하는 정동(affect)이라는 점에서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된, 때로는 동일한 뿌리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 혐오는 노골적으로 성별적 특권을 보수하고자 하는 목소리와는 달리, 동성애에 대한 ‘개인적 입장’이라는 외피로 위장하기에 마치 중립적인 의견 대립처럼 보이도록 하여 그 본질의 권력 투쟁적 성격을 은폐한다. 결국 청년 극우 남성의 동성애 혐오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직면한 불안과 동요를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안티 페미니즘과 동성애 혐오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위기에 대한 반동이자, 그 위기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징후라 할 수 있다.
김진호,『권력과 교회』, 창비, 2018
사랑은 저항한다. 레즈비언과 게이는 억압을 가르는 입맞춤으로 자신들의 존재와 욕망을 지우려는 질서에 균열을 낸다. 가부장제가 젠더를 초월해 만인에 대한 억압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성애 가부장제를 로맨스의 두근거림으로, 발랄함으로, 유쾌함으로 전복하려는 이들의 규획은 보편적인 것이 된다. 한편, 사랑과 저항의 관계는 상호 구성적이기에 동시에 그 역도 성립한다. 저항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소외되고 배제된 이 공동체의 가난한 이웃들-곧, 우리 자신-을, 가냘픈 숨결의 호모 사케르들을.... 만국의 사랑꾼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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