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가락

by 자치언론 파란

지구 디자인 노불


이모티콘까지 있을 정도로 일상적인 제스처였던 집게손가락이 어느 날 ‘남성 혐오’의 상징이 되었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이 주장은 민원으로 이어졌고, 놀랍게도 다수의 기업이 이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며 본격적인 ‘집게손가락 검열’이 시작됐다.


2021년, 편의점 GS25는 홍보 포스터 속 소시지를 집는 손가락이 남성 혐오를 뜻한다는 민원이 들어오자 포스터를 내리고 해당 디자이너를 징계했다. 이후 2023년,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 애니메이션 캡처 화면

에 집게손가락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넥슨과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는 사과문을 올리고 영상을 수정했다. 이 외에도 이마트24, 빙그레, 국가기관 등 다양한 조직에서 집게손가락과 관련된 수정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민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최근에는 르노코리아의 유튜브 인터뷰 영상 속 여성 직원이 집게손가락 제스처를 했다는 이유로 사과문을 작성했으며 직무 수행 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 과정에서 사실 검증과 직원 보호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기업들은 근거 없는 주장을 수용해 부당한 징계와 사과를 반복했고,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이 같은 조치가 과연 적절한가?











소비자는 오직 남성뿐?

집게손가락 논란의 시작은 GS리테일에서 비롯되었다. GS리테일은 소수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남성 혐오’라는 주장을 즉각 수용해, 홍보 포스터를 내리고 사과하며 담당 직원과 담당자를 징계했다. 기업이 실체 없는 민원을 수용함으로써 집게손가락을 ‘부적절한 표시’로 공식 인정한 셈이다. 그 후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GS리테일의 과거 홍보물들을 가져와 집게손가락 모양을 찾아내며 논란을 키웠다. 그 결과, GS리테일은 잘못된 선례만 남긴 채 남성 혐오 논란을 떨쳐내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집게손가락 논란은 일부 커뮤니티의 소수 의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2021년 GS리테일 사태 이후 발표된 기사들에는 “작은 음식을 손으로 집는 것은 일상적인 행동인데, 남성 비하로 연결시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기업과 언론은 왜곡된 남성 혐오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만 했다. 마치 본인들의 소비자는 남성밖에 없다는 듯한 태도이다.


박수지. 2021. “GS25 손가락 모양이 남성 비하? 그럼 집게로 음식 집나”.한겨레.



집게손가락 논란으로 피해를 본 여성들

이 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여성이다. 기업들이 집게손가락 논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제작물임에도 공격의 대상은 항상 여성 직원으로 특정되었다. 사과문이 나오기도 전에 여성 제작자의 신상이 유포되고, 온라인에서 인신공격을 당하는 모습은 정당한 비판과는 거리가 멀다. 메이플스토리 사태에서 집게손가락을 그린 사람은 여성 직원이 아닌 남성 직원이었지만, 비난은 여성 직원에게 집중되었다. 르노코리아 사태에서는 여성 직원이 두 차례나 사과했음에도 2차 가해가 끊이지 않았다.



남성 혐오를 빙자한 여성 혐오

결국, 이 논란의 핵심은 여성을 향한 공격이다.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캡처하거나 일상적인 손동작을 확대해석하며 집게손가락 제스처를 찾아내는 행태는 그야말로 억지에 가깝다. 모든 사람에게서 흔히 보일 수 있는 행동을 가지고 특정 여성을 타깃 삼아 공격하는 태도는 남성 혐오 근절이라는 주장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고 기업은 이와 같은 억지 논란에 여성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그들의 권력 유지에 기여한다. 이들은 남성 혐오를 주장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여성 혐오적 행위를 일삼으며, 그 과정에서 권력의 쾌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남성 혐오 논란을 명분 삼아 여성 노동자를 괴롭

히고 검열하는 것을 즐기는 집단이 생겼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유아차/유모차’, ‘저출산/저출생’단어 사용에 관한 논란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이들은 단순히 단어 사용을 트집 잡고, 자신들과 관련 없는 이슈에서조차 여성의 권리를 지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부당한 검열과 민원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들어주는 만큼 여성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공격받는다. 실체 없는 남성 혐오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부당한 여성 노동자 탄압을 중단해야만 한다.


이진민. 2024. “왜 여자가 ‘집게 손’만 하면 잘리고 사과해야 할까”. 오마이뉴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성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기존 단어 ‘유모차’, ‘저출산’ 대신 제시된 ‘유아차’, ‘저출생’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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