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문학적 재정의

by 자치언론 파란

재주 디자인 별밤


여러분은 ‘실패’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실패의 여러 정의는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하고 그르친 상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실패가 특정한 ‘상태’만으로 의미를 다한다면, 실패에서 겪는 부정적 감정과 재도약하려는 무수한 노력도 없을 거예요. 때론 부정적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삶의 조건까지 뒤흔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실패는 무조건 피하는 게 좋을까요?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실패해 버린 현실에 놓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삶에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실패라는 단어가 가진 힘, 나아가 언어가 미치는 파급력에 바로 매몰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언어가 현실을 규정하는 데 미치는 효과와 언어의 한계를 먼저 살펴보아

요.











자기실현적 예언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언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서 예언이 실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비슷한 예시로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가 있습니다.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과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이 교실에서 교사의 기대와 평가가 학생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등장한 개념으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효과를 설명하는 연구 중 하나입니다. 생각을 구성하거나 무언가를 믿고 행동할 때 언어는 주된 역할을 합니다. 언어 없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현실을 완전히 규정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언어가 현실에 미치는 다분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나 판단을 내렸을 때,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패했다는 사실에 곧장 따라오는 부정적인 감정과 판단에도 허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니체가 언어의 한계에 대해 비판한 이유를 따라가 보면, 실패와 부정적 감정을 일체로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로 믿는 관성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Rosenthal, Robert, and Lenore Jacobson. (1968). “Pygmalion in the

classroom.” The Urban Review 3 (1): 16–20.


언어 없이는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니체가 지적한 대로 언어가 모든 것을 포착할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언어를 통해 포착하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결국 언어에 쉽게 매몰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관점에서 보지 못했던 특성을 포착해야만 합니다.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가 표상하는 여러 상황과 특성을 이제부터 소개할 3권의 책을 통해 새롭게 포착해 보고자 합니다.


♦ 시,

임지은 시인 시집『때때로 캥거루』중 ‘러시아 형’

실수로 지하철의 다른 호선을 타면 새로운 지점에 이르고, 원하던 목표로부터 좌절됐을 때 우리는 다시 목표를 탐색합니다. 해당 시는 형식적인 관점에서 실패란 ‘삶을 반복하지 않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정해진 모습에 계속 부합해야 하는 ‘실패 없는 삶’의 반복은 우리의 존재 방식을 경직시킬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실수하고 실패할 때 그곳에 신비가 있다고 말합니다. 실패가 마냥 나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삶을 반복하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 산문서,

『시지프 신화』알베르 카뮈

(중략) 그러나 바로 여기서 카뮈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멸시와 반항이라는 에너지로 운명에 응수하는 시지프의 열정적인 자세입니다. ‘실패’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전제로, 나쁘다는 ‘질적 판단’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카뮈가 말하듯 시지프가 돌을 굴려 올리는 것, 즉 삶을 살아 나가는 행위 자체는 ‘양적 판단’에 집중하는 자세입니다. 양적 판단에 기반했을 때 모든 것은 가치의 우위를 상실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얻는 것 또한 바로 이 순간입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반항하는 자세로 단지 최대한 많은 삶을 사는 것.


♦ 소설,

양귀자 『모순』

안진진은 인생을 있는 힘껏 살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행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불행, 결핍, 실패, 고통. 모순적이게도 불행이야말로, 삶의 굴곡이야말로 인생을 남김없이 살고 모두 소진해 버리게 한다고 말합니다. 완벽한 성공도 완전한 실패도 없단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자명함은 어떤 부피 있는 삶의 모습을 통해야만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모순』을 통해 불행을 피하려 애쓰는 우리의 당연한 본능에 불편한 감각을 일으켜보면 어떨까요.


*전문은 <파란 11호: 시행착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타인이 세계를 바라볼 때 쓰는 새로운 언어 체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독서는 특정 단어의 보편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대상이나 상황을 최대한 다각도에서 포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실패를 새롭게 생각해 보며 그것이 완전히 인생을 규정짓는 무언가가 아님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에서 조금 멀어지는 기분도 듭니다. 때로 삶을 살아가며 이것 아니면 저것을 두고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에서 실패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모 아니면 도,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앞서 살펴본 책들을 통해 우리는 제3의 사유가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이분법적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이어지는 삶에서 또 다른 선택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비밀을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숨겨진 비밀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몹시 불행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삶의 굴곡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재정의하는 작업은 마냥 부정적이라고 느껴졌던 삶의 모습을 재인식하고 다시 행동할

에너지를 얻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모순』.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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