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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Oct 30. 2022

공부하는 백자(白磁)

우리그림 속의 백자

            

백자는 백토(白土)로 만든 형태 위에 투명한 유약을 입혀 1,300℃∼1,350℃ 정도에서 구워낸 자기의 일종으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이다.

당시 백자는 세계 최첨단 물건이었고, 조선은 백자를 제작할 수 있는 최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백자 제작 기술은 국가에서 철저히 관리했다.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국가 간의 무역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자를 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는 없었고 대부분은 국내에서 소비되었다.

    

조선의 백자 제작 기술이 처음으로 유출된 시기는 임진왜란 때였다.

일본은 전쟁 중에 수많은 도자기 장인들을 끌고 가 자국의 도자기 기술을 발전시켰고 세계로 수출했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백자는 생활용 도자기이다. 식기, 제사, 행사 따위에 다양하게 사용했다. 백자의 원료인 백토는 엄밀하게 화강암  돌가루이다.]

    

조선 백자는 생활용으로 대부분 국가가 운영하는 관요(官窯)에서 제작했다.

작은 사발은 음식을 담는 용도이고, 목이 긴 백자는 물이나 술을 담았다. 주둥이가 큰 항아리는 쌀과 같은 곡식을 담았다.

이가 빠진 항아리는 요강, 사발은 개밥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자에는 어떤 상징이 붙어있을까?

      

어떤 사람은 백자가 조선 선비의 마음을 닮았다고 한다.

순박하고 하얀빛의 색깔이 선비들이 추구했던 양심과 비슷했다는 말이다.

과연 당시 선비들은 백자를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여겨, 사랑방에 두고 감상했을까?     


백자가 감상품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예술작품인가, 아니면 생활용품인가를 구분하는 일이다.


예술작품은 장식의 역할을 하지만 일상에서 생활용품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백자는 보관해 두고 감상만 하는 장식용이 아니라 사용하다 버리는 생활용품이었다.      


조선 후기, 중국에서 수용하여 재창작한 [책가도]에는 향로나 술잔 같은 다양한 고동기(古銅器)와 도자기가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오래된 물건들은 당시 유행하던 청나라의 고증학과 연관이 있으며, 조선의 사대부들은 철학적 내용이 투영된 사물을 좋아하는 완상(玩賞)용으로, 부자들은 허영의 상징으로 수용했다.         

[책가도 10폭 병풍/이택균/19세기/서울공예박물관

책가도에는 다양한 골동품과 도자기가 그려져 있다. 이런 사물들은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조선백자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백자는 [책가도], [책거리그림], [백물도], [기명절지도] 따위에 들어가 있지 않다.

만약 백자가 감상용이라면 미술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자를 소재로 그린 우리 전통그림은 없다.     


둘째, 철학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이 아니더라도 철학적 내용을 투영하면 가치가 높아진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사용하던 모자는 아주 비싸게 팔린다.

금은보석으로 꾸민 것도, 특별한 기술이 적용된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물건이 수십억 원으로 거래된다.

유럽을 통일하고자 했던 나폴레옹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명언을 남긴다. 그러니까 모자에는 나폴레옹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다.

     

상징은 철학적 가치나 원초적 욕망이 투영되면서 만들어진다.

백자는 생활용품으로 인문학적인 상징이 붙을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고, 인간의 욕망을 담을 만큼 대단한 보물도 아니었다.      


혹시 백자가 너무 볼품없기 때문이 아닐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왕실에서 사용했던 고급스런 청화백자가 있다.

청색을 내는 광물인 코발트를 사용해 도자기 표면에 그림이나 문양을 그린 도자기이다.

회청(回靑)이라고 불렀던 이란산 코발트를 수입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코발트를 물감처럼 사용해 모란, 매화, 화조, 학, 용과 같은 다양한 그림을 그려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백자 청화 용무늬 항아리/높이 41cm, 입지름 15.3cm, 바닥지름 15.7cm/조선/국립중앙박물관. 청색이 나는 코발트로 용을 그린 청화백자이다.]


의례용 청화백자 

    

생활용이 아닌 의례용 백자가 있다.

의례는 주로 왕실에서 행한 결혼식, 책봉식, 생일잔치 따위를 말한다.

이런 가례(嘉禮)를 장식하는 용도에 백자를 사용했다.      


대표적인 것에는 준화(樽花)가 있다.

준화는 용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청화백자에 가짜 나무를 만들어 세우고 비단이나 종이로 만든 꽃과 새로 꾸민 장식물이다.      

[의궤에 기록된 준화이다. 실물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심규섭/태평화준도/디지털그림.

의궤에 그려진 준화(樽花)를 고증하여 창작한 그림이다.

청화백자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용은 치수(治水), 올바른 정치의 상징이다.

또한 가목(假木)은 복숭아나무인데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올바른 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효현왕후가례도감 의궤 중.

청화백자에 비단으로 만든 복사꽃 가지를 꽂았다.]         

[심규섭/동백화준/디지털그림.

대호백자나 목이 긴 백자에 조화(造花)를 꽂아 장식한 모습이 기록화로 남아 있다.

백자는 백성들의 격조 있는 생활을 뜻하고 동백은 양심을 상징한다. 이 둘을 결합하여 양심적인 백성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 준화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는 ‘용문청화백자’이고, 위는 복숭아나무이다.

이 둘이 결합하여 ‘민본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라는 내용을 완성 시킨다.  

   

‘용문청화백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의 핵심은 청화백자가 아니라 용그림이다.

용(龍)은 치수(治水)의 상징이기에 ‘올바른 정치’, 즉 ‘민본정치’를 뜻한다.

백자는 용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는 격조 있는 배경일 뿐이다.     


비싼 달항아리  

   

대호백자(大壺白磁), 주둥이가 넓은 백자를 일명 '달항아리'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 활동한 김환기라는 화가가 백자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면서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얗고 둥근 모양이 달을 닮았기 때문이란다.

이 용어가 유행하면서 심지어는 외국에서도 문자(moonja,磁)라고 부를 정도이다.   

  

백자를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으며 자칫 백자를 비하하는 위험이 있다.

달(月)은 인류문화에서 나쁨, 악, 고통 따위처럼 부정의 상징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큰항아리’를 ‘달항아리’로 부르면서 값이 치솟았다.

온전한 모양을 하고 빛깔이 좋은 것은 수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생활용 도자기였던 백자는 졸지에 감상용 도자기로 용도가 바뀌었다.                         

[모양이 삐뚤삐뚤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도자기가 너무 커서 상판과 하판을 따로 만들어 붙였다. 물레를 돌리면 좌우대칭이 되지만 굽는 과정에서 삐뚤어진 것이다. 모양이 완벽하지 않아도 수용한 것은 감상용이 아니라 생활용이기 때문이다.]     


제작 당시 가격이 몇만 원 정도였던 생활용 도자기가 이렇게 비싼 가격이 거래되는 이유는 뭘까?

      

오래되었거나 희귀한 옛 물품을 골동품(骨董品)이라고 한다.

여기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귀금속으로 만든 물건이다.

금은보석으로 만든 왕관, 금화, 장신구 따위를 말한다.

이런 물건은 역사적 가치나 제작 연대와 관계없이 비싼 값에 거래된다.

귀금속은 예나 지금이나 귀하고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흔히 해적선과 보물찾기에 나오는 황금상자 속의 보물을 생각하면 쉽다.   

  

둘은 서적, 예술작품이다.

이런 물건들은 그 자체로는 큰 가치가 없다.

책을 만들고 미술작품을 창작하는데 들어가는 종이나 천, 물감값은 그리 비싸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내용 때문에 보석으로 만든 골동품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거래된다.      


철학은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

현재의 삶을 긍정하고 미래를 꿈꾸게 한다.

과거의 모든 철학을 높은 가치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당대의 지배세력이 가진 생각과 맞아야 한다.

    

14세기 유럽의 돈 많은 상인들에 의해 르네상스가 일어난다.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이라고 하는데, 흔히 휴머니즘(humanism, 인본주의) 철학의 바탕이 된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을 수용하고 부흥시키면서 각종 서적이나 예술품 따위를 수집하여 저택을 장식했다.

르네상스가 발전할수록 폐허가 되어 쓰레기처럼 나뒹굴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은 귀중한 골동품이 되어 비싸게 거래되었다.  

    

청나라 초기부터 발전한 고증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고증학은 고전을 연구하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나라, 당나라, 주나라처럼 중국의 오래된 나라의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다.

이 때문에 오래된 고동기나 서적, 예술품 따위를 수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다.

오래된 고동기를 취급하는 상점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위조품이나 짝퉁이 판을 치기도 했다.      


백자가 값비싼 예술품이 되기 위해서는 조선 시대의 철학과 생활을 긍정하고 따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일제강점기에 강요된 식민사관 때문이지만, 여전히 조선을 낡고 부패한 봉건왕조국가로 비난한다.      

과연 사람들은 조선 시대의 철학과 문화를 수용하기 위해 다투어 골동품을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일본 교토의 대덕사에는 일본 국보급 보물로 지정된 조선의 다완이 있다.]     


백자 열풍을 일으킨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조선에서 만든 다완(茶碗)을 보물로 정해놓고 극찬을 한다.

일본 도자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선의 도자기를 높여야 했다.

일본 도자기의 뿌리가 조선에 있기 때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일본인들은 조선총독부의 도움을 받아 도자기 박물관을 만들고, 백자를 헐값에 싸그리 걷어갔다. 물론 일본에서 비싸게 팔아먹었다.

그래서인지 조선백자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

아직도 백자는 일제식민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외국 평론가는 '대호백자'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백자를 보고 있으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평론가가 말한 '공부'는 인문학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목적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 백성들의 삶에 기여 하는 것이다.


백자의 진정한 가치는 세계 최고의 기술과 최적의 디자인으로 만든 생활용 그릇이며, 특정 계층에서 독점하지 않고 백성들이 함께 사용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도자기는 귀족의 삶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곧바로 중국 도자기는 허영과 사치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 도자기와 차(茶)의 수입으로 유럽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이 때문에 '아편전쟁'이 벌어져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다.

도자기에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는 순간 전쟁과 살육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 오래된 도자기는 허영과 사치, 투기와 같은 돈놀이의 대상이 되었다.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백자는 정작 백성과 아무 관련이 없는 물건이 되었다.  

    

백자의 본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

그 과정이 곧 진정한 ‘공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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