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규섭 Oct 26. 2022

담백한 맛의 비밀

양심의 맛


“맵고 칼칼해 온몸에 땀이 나네. 자네도 한 번 먹어보게.”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네. 매운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 때문에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네.”    

 

“자꾸 먹다보면 익숙해지고 중독된다네.” 

    

“100세를 사신 할머니가 생전에 말씀하셨네. 음식이 너무 매우면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나는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네. 그러니 너무 부추기지 말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섯 가지 맛을 안다고 한다.

오미(五味)라고 부르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이다.     

이 중에서 매운맛은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혀에 의한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매운맛을 느끼기 때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예전에는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을 기본 맛으로 여겼다. 

그러던 중 지난 1908년 일본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가 특유의 맛을 발견했는데 이를 감칠맛(우마미, 旨味)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미국 마이애미 대학 연구진이 동물 혀의 특정 미각 돌기가 글루타민산 모노나트륨(MSG)에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제5의 맛으로 인정했다.     


2015년, 미국 퍼튜 대학 연구진은 학술지 케미컬센스(Chemical Senses)를 통해 ‘기름지고 맛있다’는 라틴어 올레오구스투스(oleogustus)가 제 6의 맛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지방 맛이라고 한다.     


지방 맛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다. 

흔히 기름진 맛이며 고소한 맛이다.

우리는 참기름 맛을 통해 이미 알고 있으며, 깨소금 맛이라는 생활용어도 사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맛이다.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듣도 보도 못한 독특한 맛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담백한 맛이다.     

양념이 과하지 않는 맛,

짜고 달고, 쓰거나 매운 자극을 주지 않는 맛, 식재료의 고유한 맛이 잘 드러난 맛...

글이나 말로는 담백한 맛을 좀처럼 표현하기 어렵다.          

[동치미, 북어국, 콩나물국, 냉면 따위의 음식은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즐겨먹는 음식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맑으며, 식재료 고유의 맛이 잘 드러나 담백한 맛이 난다. 

담백한 맛은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나는 맛이기도 하다.]  

   

담백(淡白)의 사전적 풀이는 이렇다.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유의어] 깨끗하다, 단순하다, 산뜻하다

솔직담백하다(率直淡白하다)-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으며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우리 음식을 먹다보면 담백하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데, 정확히 무슨 맛인지 모르겠네.”  

   

“맛은 육체적 욕망을 자극하는 본능일세. 이른바 ‘먹방’처럼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쾌락을 느낄 정도이지. 이에 반해 담백한 맛은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이 아니네.” 

    

“혀로 느낄 수 없는데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욕망의 맛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서 느끼는 이성의 맛이네. 

이를테면, 정갈하게 살아가는 사람, 착하고 순결한 사람한테 느끼는 맛이며, 정의롭고 청렴한 사람에게는 나는 맛이네.”   

  

“저 사람은 참 담백하지 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네. 그런데 사람에게 나는 맛과 음식에서 나는 맛은 다르지 않은가?”


“담백한 맛은 너무 철학적이네. 사람들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혀야 하지.

그래서 음식에 투영한 것이네.”  

    

“담백한 맛은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아닌가? 그런데 이 맛도 참 어렵네. 깔끔한 맛도 주관성이 강하고, 뜨거운 음식인데도 시원하다고 하니 종잡을 수가 없네. 왜 이렇게 복잡해진 것인가?”    

[서직수 초상/김홍도와 이명기/148×73㎝/비단에 채색/조선 후기/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작품에는 담백한 눈 맛이 느껴진다.

담백한 맛은 육체적 본능의 맛이 아니라 이성, 사회적인 양심의 맛이다.]   

  

“담백한 맛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네. 조금 어렵더라도 들어보게. 

우리 선조들이 가장 좋아했던 말은 맑을 청(淸)이었지. 인격의 결정체인 군자를 맑은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지. 훌륭한 공직자를 청백리(淸白吏), 정의로운 언론과 사정기관을 청직(淸職)이라고 했으며, 행실이 고결하고 탐욕이 없는 것을 청렴(淸廉)이라고 하여 최고의 가치로 삼았네.

맑을 청은 철학적 개념으로 손에 잡히거나 보이지 않네. 현실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었지. 맑을 청을 유추해 푸를 청(靑)이 되었다네. 그래서 푸른색은 양심의 색이 되었지.”

     

“맑을 청(淸)이 푸른색이 되었듯이, 맑을 청이 담백한 맛이 되었다는 말인가? 어쩐지, 맑고 시원한 음식을 먹으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 들더라고.” 

    

“정확하네. 담백한 맛은 곧 양심의 맛이네.” 

    

“혀만 가지고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철학적인 맛이군.”  

   

“그렇다네. 외국인은 절대 모르는 맛이지. 담백한 맛은 우리나라 사람만 알 수 있는 맛이고  우리문화의 아름다움이지. 이런 철학의 맛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진정한 한류가 아니겠는가.” (*)                            

작가의 이전글 울트라마린과 양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