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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Oct 30. 2022

철학의 옷

한복 이야기

한복은 우리의 고유한 옷이다.

우리 땅에 적응하여 살아온 삶의 흔적이 오롯이 녹아있다.


어떤 사람은 한복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한복의 시작점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한복의 기원을 고구려에 놓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 사람들도 옷을 입고 살았지만,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고구려 의복은 지금의 한복과는 다르다.

겉옷은 길고 여자들도 바지를 입었다. 둥근 모양의 무늬가 있는 옷에는 한복의 고름이 없고, 끈으로 허리춤을 묶은 모습이다.  

   

조선 시대에는 풍속화, 초상화와 같은 그림과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한복은 곧 조선 시대의 옷이라고 여겨도 큰 문제는 없다.      

[작자 미상/평생도 중 돌잔치/비단에 채색/53.9cm×35.2cm/18세기 말~19세기 초/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늙은이와 젊은이, 여성과 남성, 아이와 어른이 모두 등장하는데,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한복의 전형을 보여준다. 중산층 집안이고 계절은 봄으로 4월쯤으로 추정된다.]  

 

철학을 담은 한복  

   

1636년(인조14)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36년 만에 또다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병자호란은 남한산성에서 항거하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함으로써 끝났다.

조선은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는 치욕을 겪었고,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은 인질로 끌려갔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를 등에 업는 일부 세력들이 변발을 하고 만주복을 입고 다녔다.

그러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청나라 의복을 강요했다.

하지만 조선은 끝내 청나라 의복을 수용하지 않았다.          

[신윤복(申潤福, 1758?~1813 이후)/비단에 채색/114×45.5㎝/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 여성 의복과 머리 모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머리는 양 갈래로 빗고, 가체와 연결하여 머리에 올렸다. 저고리는 짧고 소매는 좁다. 한복의 특징인 동정이 보이고 고름은 짧고 좁다. 저고리의 소매는 좁고 덧댄 장식이 있다. 치마는 주름을 넣어 풍성하게 만들었다. 치마 상단은 넓게 만들어 가슴과 허리를 감싸도록 했다. 기생이 입고 있는 옷은 생활용이 아니라 멋을 부린 외출용이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한복과 관련한 짧은 기록이 있다.

기록 시기는 1780년, 정조 재임기이다.     


노인은 중국 등주 사람으로 성씨는 축이었다.

조선 부인들의 복장과 머리 꾸미는 제도를 묻기에 나는,

“모두 중국의 상고 시대의 것을 본받았답니다.”라고 하니 축씨 노인은 "하오, 하오(好,好)"라고 한다. (열하일기/연암 박지원)  

   

이 기록에 따르면, 연암 박지원은 조선 여인들의 복장과 머리 모양이 고대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면 큰 오해가 생긴다.     

 

위 문장을 분석해 보면 이렇다.     

축씨 성을 가진 노인은 한족이다.

명나라의 주축을 이루었던 한족은 만주족인 청나라에게 멸망하면서 의복과 변발을 수용했다.

조선이 청나라 의복과 변발을 거부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노인이 박지원에게 조선의 의복과 머리 모양을 물어본 것은, 한족이 바꾼 것처럼 다른 나라도 바꾸었을 것으로 예단했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은 노인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노인 한 분이 안경을 쓰고 책을 베끼고 있었다. (중략) 베끼는 글씨는 비록 서툰 필법이지만 시화는 더러 묘한 말들이 있다. 노인의 자태도 우아하여 아름다워 기뻐할 만하며, 가지고 있는 기물도 정밀하고 깨끗했다.’     


그러니까 수준은  높지 않아도 기품 있는 선비로 본 것이다. 유학을 하는 선비라면 당연히 유학의 뿌리와 역사를 알고 있다.


중국의 상고 시대는 하나라(기원전 2070년~기원전 1600년), 상나라(기원전 1600년~기원전 1046년), 주나라(기원전 1046년~기원전 256년)를 뜻한다.     

연암 박지원이 언급한 옛 중국은 세 나라 중에서 주(周)나라를 지칭한 것이다.


이렇게 주나라의 의복과 머리 모양을 본받았다고 말한 이유는 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은 유학과 성리학을 중심으로 건국하고 발전시킨 나라였다.

따라서 유학의 중심인물인 공자를 높이 모시고 칭송했다.         

[작자미상/고신도(高臣圖) 2책 1권 중 ‘문왕(文王)’/26×20㎝/국립중앙도서관.

유학하는 선비들은 주나라를 이상세계, 태평성대의 나라로 여겼으며 문왕을 존경했다.

문왕은 어진 정치를 베풀고,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아끼고, 유능한 선비를 예의로 대우했다. 그는 자기 집안부터 시작하여 위로는 부모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는 등 효성을 다했으며, 아래로는 처자형제에게도 이를 엄격하게 따를 것을 요구하면서 전 가족의 모범이 되었다. 자신의 대가족을 핵심으로 삼아 강력한 응집력을 형성해가면서 부족을 단결시키고 내부를 튼튼하게 다져갔다.

그는 백성의 생활을 몸소 관찰하고 체험하여 일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홀로 사는 사람들,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갖은 방법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썼다.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2005. 10. 20, 차이위치우, 김영수)]    

 

공자(BC551-BC479)는 주나라가 망해가는 시기에 활동했다.

왕의 권위가 약해지자 12개의 봉건 제후국들이 서로 패권 다툼을 하면서 전쟁을 하고 반란을 일으킨 혼란기였다.    

  

공자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기 위해 공부했는데, 그 내용을 하은주(夏殷周)의 문물과 제도에서 찾았다.

그러나 하나라와 은(상)나라는 약 1000년 전의 국가였기에 기록이 없었다.

결국 가까운 주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참조한다.


특히 주나라의 문물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바탕을 만든 문왕(文王)을 존경했다.

공자는 유학을 통해 주나라 문왕의 사상을 이으려 하였고, 유학자들은 주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여겼다.      


조선 후기, 청나라로부터 요지연도(瑤池宴圖)를 수용한다.

요지연도는 신선 세계, 태평성대를 구현하기 위해 민본정치를 하는 주나라 목왕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요지연도/비단에 채색/5.04m*2.21m/조선 후기/국립고궁박물관.

미국에 있던  작품을 귀환했다. 조선왕실의 그림으로 도화서에서 창작한 것이다.

조선 후기 궁중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요지연도는 중국 고대 전설 속 서왕모가 곤륜산의 연못인 요지(瑤池)에 주나라 5대 왕인 목왕을 초대해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요지연도 부분. 신선 세계의 우두머리 격인 서왕모와 인간세계의 왕인 목왕이 만나 연회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나라가 신선 세계, 이상세계, 태평성대를 구현한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서왕모가 앉아있는 배경 그림에는 오봉도와 비슷한 도상이 그려져 있다.]     


주나라 왕인 목왕이 곤륜산의 신선인 서왕모를 만나 연회를 베푸는 장면에는 목왕과 서왕모를 비롯해 무희, 악사, 시중드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등장 인물들이 입은 옷과 머리 모양, 장신구는 전형적인 중국풍이다.

조선의 한복과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연암 박지원은 주나라 의복과 머리 모양을 본받았다고 한 것일까?     

연암 박지원은 실제 복장과 머리 모양을 똑같이 따라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나라의 가치를 본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노인은 풍속을 질문했는데, 연암은 철학에 따른 문화 관점으로 대답한  것이다.


유학자였던 노인은 연암의 대답을 단번에 이해했다.

보통은 '그렇군요.'라고 대꾸하는데, ‘하오, 하오(좋아요)’라며 감탄한다.

[선비 정좌/심규섭/디지털그림/2020. 한복은 몸이 아니라 인격을 드러내는 예의 옷이다.]


한복은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치스럽거나 천박하지 않다.

한복은 몸과 마음을 가지런하게  하며, 사람에 대한 예의를  담고있다.

이 때문에 기품과 단아함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옷과 장식은 환경에 적응하고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저마다  아름답다.

옷이나 머리  모양으로  다른 나라와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은 쓸데없다.


옷에는 몸과 마음이 드러난다.

나쁜 놈은 허영과 폭력의 옷을 입고, 양심  있는 사람은  단정하고 정갈한 옷을 입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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