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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Nov 09. 2022

[영원한 꿈-수복(壽福)]

수복으로 수복한다.

 

[수복도/심규섭/디지털화. 수복도는 문자와 그림이 결합한 것이다. 이를 문자도라고 한다. 수복이란 글자가 먼저이고 나중에 그림이 결합했다. 수복은 우리 선조들이 가장 좋아한 글자였다. 식기, 침구, 문방구, 장신구 따위에 새겨 넣어 생활했다.]

          

수복(壽福)은 한국, 중국, 일본이 포함된 동아시아, 유학권 나라의 사상과 정치, 문화 따위가 복합적으로 녹아있는 철학 개념이다.     


일단 수(壽)와 복(福)이라는 단어의 철학적 뜻을 살펴보자.


수(壽)는 우리말로 ‘목숨’이라는 뜻이다. 목숨은 살아있는 존재를 뜻하며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사람의 생존 기간을 수(壽)라고 하지만,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무인도에서 혼자 천 년을 살면 뭐하겠나. 아무 의미가 없다. 목숨이든 생존 기간이든 모두 사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수(壽)의 철학적 의미는 ‘사회적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적 존재’라는 말도 철학적 개념이다.

우리 철학에서 사회적 존재는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인 공공심, 양심’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양심이 없는 사람은 ‘짐승과 같은 놈’이라며 차별했다.      


복(福)을 파자해보면, ‘示 + 一 + 口 + 田’이 된다. 부수자인 ‘示(시)’는 ‘神(신)’으로도 보며, ‘제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一口田을 합하면 ‘가득 찰 복(畐)’이 된다. 샘구멍 한가운데 이 가득 차는 것이 곧 福(복)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밭을 정직하게 가꾸어 음식과 술을 잘 차려 제사를 지내면, 하늘(示)에서 복을 준다는 말이다.      


기름진 음식과 술을 차려 제사를 지낸다고 하늘에서 금덩어리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금덩이든 물건이든 모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도깨비가 방망이를 두드려 금은보화를 만들어내고, 제비가 박씨를 물어와 쌀과 집을 터트려주는 것을 진짜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 사람이 밭을 정직하게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밭을 가꾼다는 말은 사회활동을 의미한다.

복(福)은 사회활동을 통해 만들어내는 정신, 물질적 재부인 것이다.      

따라서 수복의 인문학적 의미는 이렇게 정리된다.      

‘양심을 가진 사회적 인간이 사회활동을 통해 만들어내는 정신 가치와 물질 재부’     


수복으로 수복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다’라고 해석한다.


혹시 의문이 들지 않는가?

홍익인간이라는 말에는 주어가 없다.

누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단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하느님인가, 귀신인가, 절대자인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 할 수 있을까.

최소한 사기꾼, 살인자, 전쟁광, 이기적인 사람, 무능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홍익인간은 주어를 숨기고 있다.

어쩌면 홍익인간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수복(壽福)을 ‘오래 살고 복을 받고 누리는 일’이라고 알고 있다.

이 말도 홍익인간처럼 주어와 목적어를 따져 봐야 한다.

누가 수복을 만들며, 만드는 최종 목적이 뭔지 말이다.   

  

‘장수와 풍요’를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지만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조절하고 힘든 운동을 해야 한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힘들게 일을 해도 될까 말까이다.    

 

위생상태가 나쁘면 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빨리 병들고 죽는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돈은 벌리지 않는다.

장수와 풍요는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선 사회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장수와 풍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사회와 백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탁월한 능력과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했다. 군자는 양심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정치는 수복을 통해 수복을 만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지극한 양심과 능력을 가진 군자가 정치나 사회활동을 통해 정신, 물질 재부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신, 물질 재부가 백성들의 장수와 풍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복에서 주어는 수이다.

즉, 양심을 가진 사회적 인간인 군자를 말한다.

복은 목적어이다.

군자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교육과 같은 사회활동을 통해 정신 가치와 물질 재부를 만들어낸다.      

정치인은 수복을 만드는 사람이고, 백성들은 수복의 수혜자이다.

정치의 목적이 백성들이 건강하고 풍요한 삶을 이루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수복(壽福)이라는 글자는 수와 복으로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한 몸처럼 되어야 한다.

또한 글자의 순서도 바뀌면 안 된다.

만약 복수(福壽)라는 말이 생겨난다면 그 사회는 나쁜 놈들이 지배하는 지옥일 가능성이 높다.

수복을 만들어야 할 사람이 수혜자로 자처한다면,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이기적 욕망을 채우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궁궐을 장식한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백수백복도 8폭 그림/박현주/디지털그림. 백수백복도는 궁궐을 장식했던 궁중회화이다. 수많은 모양이 있지만 모두 수복이라는 글자를 변형한 것이다. 그림 자체는 복잡하지 않지만 한 글자도 똑같지 않게 수백 개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글씨를 잘 쓴 서예가가 그렸는지, 아니면 그림을 잘 그린 화원이 그렸는지 궁금하다.]    

 

수복도(壽福圖)는 궁궐을 장식했던 궁중회화이다.

조선 시대 궁궐은 지금의 대통령궁인 청와대와 같다.

청와대는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군사 따위의 핵심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힘을 가진 곳이다.      

[수복도]는 궁궐에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궁궐은 수복을 만들 수 있는 왕과 관료들이 모여 정치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완성된 수복도’라는 뜻이 담긴 그림이다.

백(百)은 100개라는 개념이 아니라 ‘아주 많음, 완성됨’이라는 뜻인 상징적인 수이다.

수복글자는 예서체나 전서체를 바탕으로 변형하거나 인물, 꽃과 새, 풍경, 신령한 동물 따위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심지어 집, 배, 승려를 그려 넣기도 한다.

한마디로 삶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그림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왜 이렇게 많고 다양한 모양의 수복글자를 그린 것일까?

모든 답은 수복이라는 글자에 있다.

수(壽)는 양심을 가진 군자를 뜻하니, 군자들이 아주 많아지기를 기원한다는 말이다.

또한, 복(福)은 정신, 물질 재부이니, 풍요가 넘치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양심을 가진 군자들의 올바른 정치를 통해 백성들이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태평성대’라고 불렀다.

      

가끔 궁궐에 걸린 [백수백복도]를 보고 ‘왕과 왕족의 장수와 풍요를 기원하고 그림’이라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나쁜 정치인도 대놓고 ‘나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치할 것입니다.’라고 떠들지 않는다.

하물며 예와 효, 명분, 염치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조선의 임금이 ‘나는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영달만을 위해 통치 하겠다.’며 그런 뜻이 담긴 그림을 장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조선은 놀랍게도 520여 년을 유지한 최장수 국가였다.

‘수복’이 있어 발전했고, ‘수복’이 사라져 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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