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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Nov 12. 2022

고양이의 영특함을 닮은 화가

고양이 그림의 대가 변상벽의 독창성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은 조선 후기, 숙종과 영조 때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이다.

영조의 어진을 그렸고, 평생 100여 점에 달하는 당대 명현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국수(國手)라는 칭호를 들을 만큼 초상화에 뛰어났으며 어진을 그린 공로로 현감 벼슬을 지냈다.      

사람들은 변상벽을 ‘변고양이(卞猫,卞古羊)’또는 ‘변닭(卞鷄)’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정극순(鄭克淳)은 변씨화기(卞氏畵記)라는 변상벽의 전기를 남겼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중인계층 화원인 변상벽은 이미 20대에 고양이 그림을 완성하여 명성을 떨쳤다.

변상벽 화실에는 그림을 주문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돈과 명성을 얻은 변상벽은 아무에게나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다.

권세 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부탁해도 거절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아주 흥미로운 기록일세. 한 마디로, 고양이 그림으로 명성과 부귀를 얻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네. 변상벽이 독창적인 작품으로 돈과 명성을 얻은 비결이 뭔지 아는가?”

    

“오, 이런 이야기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들을 수 있네.”    

 

“변상벽은 그림 실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탁월했지.

조선 후기는 백성들의 욕망이 분출하던 시기일세.

율곡 이이 선생은 ‘원초적 욕망을 드러내더라도 양심에 맞으면 옳다.’라는 철학을 주장하였고,

청나라에서는 욕망을 자극하는 숱한 물건과 상징들이 유입되고 있었지.

변상벽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빠르게 감지했네.

양심, 지조와 절개라는 일반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작품을 창작한 것이지.”    

 

“숙종 연간이면, 겸재 정선이 활동하던 시기가 아닌가? 당시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위세가 대단해서 모든 화원이 따라 그렸다고 하는데, 변상벽이 이런 유혹을 떨치고 고양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뭔가?”   

  

“선택과 집중일세.

변상벽은 자신이 고양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네.”    

 

넓으면서도 조잡한 재주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에 집중하여 완성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오.

나 또한 진경산수화를 배웠지요. 하지만 천재적 화가를 압도하여 그 위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이 그리지 않는 고양이나 닭을 골라서 연습을 하였지요.”    

[변상벽/묘작도(猫雀圖)-고양이 참새그림/비단에 수묵담채/94×43cm/국립중앙박물관소장.

고개를 들어 위로 보는 고양이의 표현은 탁월하다. 고양이의 생태를 정확히 알고 그렸다는 의미이다. 이런 과감한 표현은 변상벽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후대 화원인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 그림 속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표현되어 있다. 아래 고양이가 위를 보면서 얼굴이 가려졌다. 이를 통해 시선은 자연스레 위쪽의 참새까지 이르게 된다.

고양이 그림은 늙으신 부모님이 장수하기를 기원하며 드리는데 뜬금없는 참새가 등장한다. 참새는 내면의 즐거움을 뜻한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하는 효행이 즐겁다는 것이다. 하나의 그림 속에 부모와 자녀의 마음을 동시에 표현한 독창적인 그림이다. ]    

 

“변상벽이 활동했던 시기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유행했고 너도 나도 산수화를 그렸네.  

변상벽은 천재적 능력을 가진 수많은 화원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지.”  

   

“변상벽이 쟁쟁한 실력자가 포진한 진경산수화를 포기한 것은 이해가 되네. 그런데 하필 고양이를 그린 이유는 뭔가?”  

   

“새로운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를 알아야 하지.

변상벽은 임금의 초상화를 그릴만큼 꼼꼼한 관찰력과 세밀한 묘사능력을 가지고 있었네.

고양이와 같은 동물화는 이런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었지.

변상벽이 그린 고양이의 눈동자나 털의 표현은 감탄할 만큼 정교하고, 고양이의 자태는 단원 김홍도에게 영향을 줄만큼 정확했다네.”  

     

“변상벽은 도화서 화원이지 않는가. 당시 도화서에서도 고양이나 닭 그림을 그렸는가?”  

   

“고양이와 닭 그림은 변상벽이 개인적으로 완성한 것이네.

변상벽은 도화서를 출근하여 업무에 관련된 초상화나 십장생도 따위를 그렸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신만의 고양이 그림에 매진했다네. 밤낮으로 그렸고 코피를 쏟을 만큼 노력했지.

그리하여 20대에 독창적인 고양이 그림을 완성했다네.”

     

“요즘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지. 고양이 그림도 엄청나게 많고 인기가 높다고 알고 있네. 숙종 때에도 선비나 양반들이 고양이를 좋아했는가?”  

    

“임금이 고양이를 좋아하여 곁에 두고 키웠다는 기록이 있다네.

하지만 특별한 사례일 뿐일세. 요즘처럼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문화는 없었네. 당시 고양이는 개나 소, 닭과 같은 가축  반열에도 들지 못했지. 그냥 방치했네.

쥐를 잡아주는 유익한 동물, 닭을 잡아먹거나 물고기를 훔쳐 먹는 약탈동물이라는 상반된 견해가 공존했다네.”  

    

“변상벽이 시대의 흐름을 잘 알았기 때문에 고양이를 선택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고양이를 그려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

     

“고양이라는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고양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호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네. 만약 산 속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을 것인가? 다를 공포에 사로잡혀 경악을 하고 도망갈 것일세.”     


“그건, 그렇지.”    

 

“호랑이 그림은 영화나 책 속 호랑이와 같네. 고양이 그림도 마찬가지 일세.”  

   

“그렇다면, 실제 고양이와 고양이 그림의 차이는 뭔가?”

    

“올바른 질문일세.

당시 고양이는 장수(長壽)의 상징이었네. 70세 늙은이를 뜻하는 모(耄)와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가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것인데, 이를 문자유희라고 한다네. 


글자는 철학, 학문, 역사,  정치를 상징할만큼 중요했는데, 이 때문에 중국은 아예 글자 자체를 숭상했지.

관청, 사당, 집과 가게에는 글자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고, 가장 높은 곳에 고급하게 만든 글자를 걸었네.


정확히는 고양이에게 장수의 상징이 붙은 것이 아니라, 글자에 붙은 것이네, 변상벽은 글자를 그림으로 바꾼 것이고.”  


"실제 고양이가 오래 살아서  장수의 상징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군."


"정확하네."

   

“건강, 장수는 원초적 욕망으로 철학과 아무 관계가 없네. 그래서 욕망을 대놓고 드러내면 체면이 상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네.

장수를 뜻하는 고양이 그림을 사랑방에 버젓이 걸 만큼 선비들이 뻔뻔했다는 말인가?”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은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지. 다른 말로 대중성이 탁월하다네.

변상벽이 대중의 욕망에 영합해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면 푼돈을 벌고 망했을 것이네. 물론 후대에 이름과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겠지.

변상벽은 고양이 그림을 연습하던 초창기부터 이런 고민에 빠져 있었다네.

그래서 여기저기 선물을 주어 반응을 살폈지.”  

   

“사람들은 고양이 그림의 어떤 부분에 매료된 것인가?”

    

“기법이나 묘사, 채색보다 고양이 그림의 쓰임새가 특별했네.”     


“쓰임새라면?”     


“고양이 그림을 늙으신 부모님 생신선물로 사용하고 있었네.”

     

“아하, 고양이 그림은 장수를 뜻하니,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하는 선물로는 제격이라는 말이지.  장수를 욕망하는 늙으신 부모님에게 욕망의 그림을 선물하면 결국 욕망 밖에 남지 않는데 뭐가 특별하다는 것인가?”

       

“이건 상식 문제인데, 조선의 바탕에는 유학이 있었네. 정확히는 성리학일세. 그렇다면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 개념이 뭔지 아는가?”  

   

“이건 어렵지 않네.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과 같지. 바로 효(孝)이네.

효는 인류애의 실천적 개념이지. 인류애는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지. 이런 인류애를 체계적으로 키우고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효라네.

부모 자식 간은 유전자에 의해 결속되어 있지. 부모가 어린 자녀를 사랑하여 먹이고 재우며 보살피는 것은 유전자에 박힌 본능이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보살피고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여 공양하는 것을 효라고 하네. 이 효를 조금 넓히면 형제자매의 우애가 되고. 조금 더 넓히면 친척이 되고, 이웃이 되며 나아가 인류애가 된다고 하지.”    

  

“정확히 알고 있네. 조선에서는 효(孝)가 최고의 덕목이었네. 부모의 삼년상을 치르지 않거나 부모를 보살피지 않으면 탄핵받아 관직에서 파면될 정도였네. 효가 없다는 것은 타인인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지.”   

  

“그러니까, 고양이 그림이 유학의 핵심 가치인 효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늙으신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마음이 곧 효심이네.

부모님이 장수하는 것은 자식의 효행이 깊어야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네. 실제 경제력이 없고 노환이 있는 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일찍 죽을 수밖에 없지.

고양이 그림은 부모님의 생일선물로 적합했네.  

고양이 그림을 선물하거나 집안에 걸어놓은 행위가 곧 효행으로 보였기 때문이지.

따라서 고양이 그림은 사랑방이나 안방이 아니라 늙으신 부모님 방에 걸어 두었다네.”   

  

“으음,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은 밖으로는 장수라는 대중성과 안으로는 효(孝)라는 철학의 내용을 겸비한 그림이군.”  

   

“변상벽이 여러 동물 중에서 굳이 고양이를 선택한 것은 효라는 철학 가치와 장수라는 대중성을 결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네.

닭 그림도 마찬가지일세. 닭은 출세, 액막이라는 대중성과 공명(功名)-사회활동을 통해 세상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고 얻은 명성-이라는 철학 가치를 담고 있다네.”         

[변상벽/묘작도/비단에 채색/34.9*54.6/일본 동경박물관 소장. 묘작도는 고양이와 참새를 그린 것이다. 고양이가 참새를 잡아먹기 위해 노려보는 것이 아니다. 고양이는 웃고 있는 표정이다. 참새는 내면의 즐거움을 뜻하는데 이와 호응하기 위한 설정과 표현이다. 고양이는 장수와 효를 뜻하는데, 효의 실천은 삶의 진정한 즐거움이라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역시 명작이라 할 만 하네.

변상벽이 고양이 그림으로 부와 명성을 얻은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자신만의 능력과 시대의 흐름을 결합한 선택과 집중, 대중성과 보편적 철학의 결합이네.”

    

“정확하네. 하지만 아직도 한 가지가 부족하네.

변상벽의 고양이 작품은 독창적이라고 평가하네.

그런데 창조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네. 이미 완성되어 있는 전통에 바탕을 두어야 하지. 이를 법고창신(法古創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한다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서양 속담도 같은 뜻이네.

고양이나 닭 그림은 변상벽이 창안한 그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렸던 소재였다네.

특히 고양이는 왕족이었던 이암의 그림에 표현되어 있지.

따라서 선비나 양반의 논리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비판을 차단할 수 있었네.

변상벽은 전통을 따르면서 시대의 흐름을 담아 독창적으로 고양이 그림을 완성했다네.”  

   

“충분히 이해했네. 이미 사용하던 붐 박스와 소형라디오를 결합해 워크맨을 창안한 소니,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결합한 애플의 스마트폰이 좋은 사례이네. 스티브잡스도 완성된 것은 100번 이상 베껴도 된다는 취지의 어록을 남기기도 했지.”   

  

“창조, 창안, 독창성 따위는 예술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하지.

하지만 창조하는 방법은 손기술만 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네.

시대의 흐름, 선택과 집중, 철학과 대중성, 전통 따위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하지.

이것은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네.

돈을 버는 사업, 행정기획을 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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