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규섭 Jan 01. 2023

너희가 선비를 아느냐?

출세하고 싶다면 선비처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탐욕과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주창한다.

이 철인정치를 세계 최초로 구현한 나라가 조선이다.


조선의 선비는 모두 철학자이며 예술가였다.

이런 선비를 문인(文人)이라고 하는데, 애매하고 충분하지 않다.

문인은 책만 읽고 허망한 논쟁을 일삼는 나약한 존재를 연상시킨다.

     

선비는 철학을 현실에 구현하는 정치인이었다.

이순신 장군처럼 무관이 되어 나라를 지키거나 박문수처럼 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를 처단했다.

관직이 없는 선비는 관청과 협력하여 자치정치를 했고 서원,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다.   

   

선비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는 방대한 내용을 통째로 암기했다. 필요에 따라 공학, 역학, 회계, 군사, 무기 따위의 지식을 습득했다.

다산 정약용은 군사관리로 재직할 때는 군사지식을 섭렵했고, 화성행궁을 지을 때는 축성기술, 기중기 제작과 같은 공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모든 선비는 일상적인 활쏘기를 통해 강한 체력과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나 관청에서는 정기적으로 대회를 열어 활쏘기를 장려했다. 활쏘기를 하지 못하면 나약한 선비라고 손가락질 당했고 선비사회에서 퇴출되었다.                    

[신윤복/계변가화/종이에 채색/28.2cm×35.6cm/국보135호,혜원전신첩/19세기 초/간송미술관 소장.

풍속화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모습을 그린다. 선비가 활쏘기를 하러 가던 중 냇가에서 빨래하고 멱을 감는 여성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여성들은 활을 든 선비에게 별 관심이 없다. 너무 흔했기 때문이다. 활쏘기는 선비의 필수 과목이었다. 이를 통해 강인한 체력과 무술을 익혔다.]

    

철학은 조선 사회의 핵심가치였다.

철학은 출세이고, 성공이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치였으며 삶 자체였다.    

  

선비의 가치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이 개념의 중심에 양심(인의예지)이 있다.   

  

선비는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을 얻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를 사대부(士大夫)라고 한다.

과거시험은 엄격하고 합격하기도 어려웠다.

최대 50,000:1의 살인적인 경쟁률에, 평균 20년 이상 공부해야 작은 관직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명석한 두뇌와 성실, 신념이 없는 사람은 선비가 되지 못했다. 양반가문 자제라도 모두가 선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3대에 걸쳐 판서(정2품)와 같은 장관급 벼슬을 했다면 양반가문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양반가문은 극소수였다.

양반가문의 자제 1명은 음서(蔭敍)를 통해 무시험 벼슬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권 없는 자리나 명예직을 내줄 정도로 차별하였고 승진은 불가능했다.      


조선은 다른 나라들처럼 침략, 역병, 기근과 같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10년 단위로 든다는 큰 흉년에 대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환곡을 비축했다.

국가에서 받은 환곡은 대부분 갚지 않았다.

기근이 들면 정부에서는 진율청이라는 임시 조직을 만들어 백성을 구제했다.    

  

백성들이 굶어 죽으면 관리를 처벌했다.

관리는 부자들을 독려해 곡식을 내놓도록 했고 선비들은 자발적으로 곳간을 열어 백성을 구제했다.

이 때문에 선비 부자는 거의 없었다.

조선의 큰 부자는 대부분 중인이었고, 이 중에는 천민도 제법 있었다.      

그렇다고 선비가 가난하다는 편견은 필요 없다.

선비는 조선을 운영하는 지배계층으로 중산층의 풍요와 재부를 가졌다.     

[심규섭/선비상/디지털그림/2022.

조선의 선비들이 공부했던 유학과 성리학은 실학이다. 공자가 주창한 유학은 전쟁과 살육, 빈곤에서 고통받는 나라와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선비는 사서삼경을 통째로 암기하고 응용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며, 그 지식은 현실정치에 사용했다.]

 

언론과 사정기관의 힘은 막강했다.

흔히 삼사(三司)로 불린 사간원, 홍문관, 사헌부에서 일하는 선비는 국가의 청렴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삼사를 거치지 않은 선비는 더 높은 관직을 얻기 힘들었다.

    

선비는 국가에서 주는 공식 보상(풍류) 외에는 어떠한 재부나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 조선의 선비를 ‘개선비’, ‘선비 질’, ‘꼰대 선비’라고 비아냥거리는 글을 본다.

철학과 양심을 가진 선비를 불편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선비를 욕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우리 민족을 싫어하고 일본이나 서양을 모신다는 것이다.

이들 안중에는 민족이나 사회 공동체가 없다. 개인의 돈벌이와 쾌락에 환장한 자들이다.

양심의 철학은 거추장스러운 것이고, 예술은 지폐 속의 그림으로 볼 뿐이다.     


나쁜 놈들은 무능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알지 못하고, 철학과 예술을 무시하며, 사람을 의심하고 약육강식의 관계만 집착한다.

나쁜 놈들은 창조하지 못하고 백성들의 재부를 빼앗아 먹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심규섭/선비상/디지털그림. 양심을 가진 선비만이 출세하여 세상을 풍요하게 만들 수 있다.]


선비처럼 철학과 양심을 가져야 능력자가 된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엄청난 양과 깊이의 지식을 가지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조직하여, 세상 사람들과 호혜의 관계를 맺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양심이 밥 먹여 주냐?”     

당연히 밥 먹여 준다.

출세하여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성실, 정직, 신용, 신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철학과 양심에서 나오는 탁월한 능력이다.

출세하고 싶다면 선비처럼 양심으로 무장한 강인한 사람이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그림의 나라, 조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