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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Jan 12. 2023

창작보고서

소성박물관 소장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오봉도

오봉도(五峯圖)를 완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창작자, 미술평론가, 화가를 비롯해 여러 명의 사람들이 화실에 모였다.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본 오봉도이다. 창작시기는 대략 19세기 중반으로 추정하며, 비단에 채색하고 병풍으로 만든 도화서의 궁중회화이다.]     


“이 오봉도는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본을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그린 것입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대략 3개월이 걸렸습니다.”   
  

“소성박물관 오봉도는 19세기, 1800년대 중반쯤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오봉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소성박물관 오봉도는 현재 남아있는 작품 중 가장 차분하고 유려합니다. 산세는 부드럽고 소나무도 통통하며 높이도 낮습니다. 전체 화면은 연녹색으로, 청록색의 오봉도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납니다. 착한 도시 여성 같은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소성박물관 오봉도는 10폭 병풍그림입니다. 보통은 4~8폭인데 반해 가로로 긴 그림입니다. 평균보다 긴 오봉도를 창작하려면 그림 속의 사물들도 함께 늘어나거나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이 작품은 이미 있던 8폭 그림을 옆으로 늘여 2폭을 더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높이 솟은 봉우리는 완만해지고, 길쭉하던 소나무는 짧고 통통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길게 만들기 위해 2폭을 늘였다는 말이지요? 보통 작품을 크게 하려면 가로 세로 모두를 늘여야 합니다. 세로는 그냥 두고 가로만 늘이니 그림 속의 사물이 왜곡되었군요. 상당히 게으른 창작방법이네요.”   

[소성박물관 오봉도는 의도적으로 가로 2폭을 늘였다. 이를 다시 줄이면 아래 오봉도와 비슷해진다. 이를 통해 두 오봉도가 같은 초본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뜰한 것입니다.

영조 임금은 비용절감을 위해 궁중모란도나 십장생도 병풍그림을 재활용하라는 어명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례를 바탕으로 기존에 있던 10폭 병풍 틀을 재활용하기 위해 오봉도의 비율을 조정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왕이 앞장서서 청렴을 보인 것이니 오봉도의 뜻과도 잘 맞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요소를 늘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타원형으로 왜곡된 태양은 온전한 원으로, 바다나 파도도 제대로 교정했습니다.

세로가 좁은 상태에서도 사물을 적절히 조절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창작 과정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오봉도를 새롭게 창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점은 무엇인가요?”

    

“네. 이 오봉도는 150년이 훌쩍 넘은 작품입니다. 그동안 색이 바라고 얼룩이 졌으며 흠집이 생겼습니다. 창작 당시의 온전한 오봉도의 모습을 살려 창작하고 싶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고 사람들의 삶이나 정서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을 반영하여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오봉도를 창작하고자 했습니다.”

     

“새로운 오봉도를 창작하기 위해서 어떤 변화를 준 것입니까?”

    

“아래위로 눌린 공간을 넓히고, 배첩(褙貼) 과정에서 잘린 좌우상하 공간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하늘이 넓어졌습니다. 봉우리 밑에 있던 두 개의 태양을 봉우리 위로 옮겨 그렸습니다.

낮고 통통하던 소나무를 늘씬하게 만들어 높였습니다.”         

[새로 창작하는 오봉도 초본이다. 눌리고 잘린 사방을 늘였다. 하늘 부분을 넓혀 봉우리 아래로 내려 간 두 개의 해를 봉우리 위로 올렸다.]


“과연 하늘 공간이 넓어지면서 눌린 느낌은 사라지고 소나무도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채색은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소성박물관 오봉도에 청록이 아닌 연녹색을 사용한 연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혹시 색을 잘못 선택한 것일까,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일까, 심지어는 물감 부족에 따른 고육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결론에 이른 것입니까?”  

   

“연녹색의 오봉도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오봉도 앞에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임금이 앉아 있을 것만 같았지요.”    

 

“보통 오봉도의 하늘은 파란색을 칠하는데, 연녹색으로 칠해도 철학적 문제가 없는지요?”  

   

“청색은 군자의 색이자 우주 본연의 색입니다. 하늘을 파란색으로 칠한 이유이지요. 청색은 파란색과 녹색의 혼용입니다. 파란색을 칠하든, 녹색을 칠하든 철학의 문제는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파란색과 녹색을 통합하고자 노력이 있었습니다. 고려청자가 청색과 녹색을 적절히 섞은 것처럼 말입니다.

연녹색은 녹색에 흰색을 혼합한 색이 아니라, 파란색과 녹색을 혼합한 다음, 다시 흰색을 혼합한 색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청색이지요.”   

  

“연녹색으로 칠한 봉우리 사이로 군데군데 황색이 보입니다. 황색은 어떤 역할입니까?”

    

“황색을 칠하는 것은 바위산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한 조형적 표현입니다.

여기에 반복적인 연녹색에 변화를 주어 지루함을 없앱니다.”         

[오봉도/심규섭/13,000*5224픽셀/300dpi/디지털그림/2023. 소성박물관 소장본을 초본으로 하여 새롭게 창작한 오봉도]     


“소나무 사이의 간격이 바뀌었네요?”   

  

“네. 안정감을 만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공간이 옆으로 늘어나면서 소나무의 무게 중심이 바뀌어 불안정해 졌지요. 그래서 발을 넓게 벌여 균형을 잡듯이 소나무 사이의 간격을 넓혔습니다.

잘렸던 아랫부분을 복원하니 소나무 뿌리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하게 표현된 소나무 뿌리를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소나무 이파리의 색이 원작과 달리 진해졌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미술적 직관에 따른 것입니다. 오봉도에서 소나무는 산만한 시선을 중앙으로 모아주는 조형적 역할을 합니다.

배경의 봉우리보다 진하게 표현하면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지요. 봉우리와 거리감을 나타내기에도 좋습니다. 이를 위해 선묘 위에 채색을 하고 다시 덧칠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봉우리에는 음영을 깊게 넣어 입체감을 살렸다. 파도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포말을 촘촘히 넣었다. 솔이파리는 진하게 칠하면서도 밀도를 높였다. 소나무 뿌리에도 변화를 주었다.]   

  

“원작과 비교해보니 소나무의 태점 모양이 달라졌는데요?”   
  

“원작에는 일본식 이끼장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19세기 무렵에는 이러한 표현이 유행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일본병풍그림이 유입되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추정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끼를 역사적 산물이나 완결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나쁜 뜻은 아니지만 생명의 시작이라는 태점(胎點)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방식에 따른 태점으로 바꾸어 그렸습니다.”

    

“새로 그린 오봉도는 디지털 그림으로 창작했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할 말이 많지만 짧게 대답하겠습니다.

오봉도는 원작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의 정서와 흐름에 맞게 창작한 것입니다.

미술에서 물감은 창작도구입니다. 르네상스와 유화, 팝아트와 아크릴 물감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물감의 선택은 철학과 시대를 반영합니다.

조선 시대에 비단, 한지, 석채물감이라는 미술도구를 사용한 것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도구나 문화를 떠난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요.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 그림은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하면서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첨단형식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디지털 그림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모든 예술작품은 복제를 통해 대중문화가 됩니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을 비롯해 음악, 영화, 만화 따위는 모두 복제품을 소비합니다. 심지어는 명품패션, 고급 스마트폰, 고급 자동차, 고급 주택도 모두 완성된 한 점을 복제한 것입니다.

디지털 그림도 단 한 점의 원본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복제를 합니다.

복제를 문제 삼기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고 올바른 태도입니다.”           

 [6폭 병풍으로 만든 오봉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오봉도는 왕의 역할을 규정한 그림입니다. 왕과 같은 지도자의 사명과 역할이 들어가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작품이자 최고의 명작이지요.

오봉도에는 우주적 본성인 양심을 바탕으로, 민본정치를 펼쳐 만백성을 풍요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정치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올바르게 감상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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