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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Feb 20. 2023

괴물(怪物)은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탐욕과 두려움이 귀신을 부른다.

성종 17년 11월, 임금이 학자들과 경연을 하고 있다.

경연(經筵)은 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 연마하고 더불어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자리이다.      


예조판서 유지(柳輊)가 말하기를,      


“성안에 요귀가 많습니다.

귀신이 집안의 기물을 옮기고, 요사한 여귀(女鬼)가 대낮에 나타나 말을 하고 음식까지 먹는다고 합니다.

귀신을 쫓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은 줄 아뢰오.”         

[춤추는 무녀/신윤복/종이에 담채/35.6*28.2/조선후기/간송미술관 소장.

무당이 굿을 하는데 차린 음식이 초라하다. 한양 도성 안에서는 무당굿을 금지했고 무당에게 세금도 받았다. 재앙을 막고 귀신을 쫓는 무당은 선비의 갓을 쓰고 무관의 철릭을 입고 있으며 산수화가 그려진 부채를 들고 있다.]


임금이 고개를 돌려 생각한다.      

-명색이 예조판서나 되어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성리학의 나라에서 무당굿을 하자고?     

“음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경연관 영사(領事) 홍응이 아뢴다.    

  

“귀신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재앙이 없습니다.

예전에 쥐가 절을 하여 사람들이 괴이하여 여기자, 집주인은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는 행동으로 여겨 쌀을 퍼뜨려 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엉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고, 집안에 재앙은 없었습니다.”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 귀신이 있다고 하여 안사람이 피하기를 권유했으나, 정창손은 늙어서 요괴를 피해 도망갈 힘이 없다며 버텼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괴는 괴상한 자연현상을 이른다.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기에 기다리면 사라진다고 했다. 이런 괴상한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백성을 기만하고 탐욕을 챙기는 사람이 진짜 귀신이다.]      


당시 몸집이 크고 고양이를 닮은 부엉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지가 두려운 표정으로 아뢰기를,     

 

“궁궐에 부엉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노려보는 눈이 보통 날짐승이 아니라 요괴가 분명하옵니다.

덩치가 커서 활이나 창으로는 도무지 물리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화포를 쏘아 아작을 내옵소서.”   

  

임금은 황당한 표정으로 예조판서 유지를 본다.    

-고작 부엉이를 잡자고 궁궐 내부에 대포를 쏘라고? 미친 거 아냐? 궁궐에 대포를 쏘아 부서지면 네 돈으로 고칠 것도 아니면서.     


“세상 사람들이 부엉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밤에 궁궐의 나무에 앉아 우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인데 뭐가 괴이하다는 말이오.”

    

대사헌(大司憲) 이경동(李瓊仝)이 아뢰기를,  

   

“지금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백성을 해치는 호랑이와 역병이옵니다. 조선 팔도의 갑사들이 목숨을 걸고 매년 1000여 마리의 호랑이를 잡고 있습니다. 사람을 해치지 않고 미물에 불과한 부엉이를 잡기 위해 화포를 쓰자는 말은 황당할 따름입니다.”    

  

“그렇소. 물괴(物怪)는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집니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正人)에게는 물괴가 범접하지 못하니 그것은 마치 도깨비가 태양을 피하는 격이오. 아직도 많은 무당이 사악한 귀신을 믿고 있소. 조정 사대부가 정도(正道)를 행하여 귀신의 실체를 알고 물리친다면 사악한 미신(邪道) 따위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오.”       

   

“그래도 요귀를 없애는 데는 대포가 직방인 줄 아뢰오.”   


“그만 하고 물러들 가시오.”     

-아, 거 참, 사서삼경을 똥구멍으로 읽었나, 귀신은 탐욕과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허상일 뿐이야. 말귀를 못 알아먹는 네가 더 귀신같다. 당장 나가!


[조선왕조실록/중종실록 31권, 중종 13년 1월 10일 경술 5번째 기사, 성종실록 197권, 성종 17년 11월 10일 신해 2번째 기사를 각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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