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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May 16. 2023

겸재의 꽃

겸재 정선 [독서여가] 속의 작약꽃

작약은 모란과 비슷하여 혼동하는 꽃이다.
모란이 꽃나무인 반면, 작약은 풀꽃이다.


우리 전통그림에서 작약꽃을 그린 작품은 없다.

겸재 작품에서 처음 본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약재용으로 재배했다.

작약의 상징은 남녀의 깊은 사랑이다. 미인, 군자, 부귀 따위의 상징도 있지만 모란과 겹친다.


모란은 작약보다 조금 일찍 피고, 꽃도 더 크고 수려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작약보다는 모란을 선호했다.


우리 그림에 작약꽃을 표현하지 않는 이유를 굳지 찾자면,

키가 작은 풀꽃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 그림에서는 꽃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작약과 상징이 겹치는 모란은 꽃나무이며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정선/독서여가/비단에 채색/24.0x16.8㎝/ 간송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이 50세 전후로 그린 [독서여가]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은 겸재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책장문에 붙어있는 그림 속 괴석과 폭포의 표현은 겸재만의 독특한 준법이다.

쥘부채의 그림은 한강 풍경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바깥 사랑채에는 책이 가득하고 책장문에는 그림을 붙여 두었다.

선비의 방이다.

실내용 모자인 사방관을 쓰고 옥빛 중치막을 차려입었다.  

공부하는 사람의 자태이다.


오월, 이른 더위가 찾아왔다.

겸재 정선은 독서를 하다 쉴 겸 부채를 들고 마루에 나와 앉았다.

왼쪽 손에 중심을 주고 한쪽 다리를 편하게 구부려 자세를 풀었다.

마당에 심어놓은 화초를 바라본다.

겸재가 보는 꽃,

이 꽃이 작약이다.


모란은 당시를 주름잡던 꽃이었다.

선비에게는 군자, 백성에게는 부귀의 상징이다.  

하여, 집집마다 모란을 심고 가꾸었다.


공부하는 선비라면 당연히 군자의 상징인 모란을 감상한다.

그런데 겸재는 모란이 아니라 작약꽃을 키우고 감상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겸손이다.


몇 해 전, 중국을 드나들던 역관에게 비싼 분청 화분을 받았다.

그냥 보낼 수 없어 작은 그림 한 점을 주었다.


친구가 난초를 심으라 한다.

작은 화분에 난초를 심었다.


친구가 모란을 심으라 한다.

이번에는 친구의 권유를 듣지 않았다.

어렵게 작약 모종을 구해 큰 분청화분에 심었다.

물받침대를 놓고 정성으로 키웠다.


"수양이 부족하니 모란을 볼 염치가 없네."

  

모란이 완성된 군자를 상징한다면 작약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인격체를 뜻했다.

겸재는 평생 공부했고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모란은 만백성의 것이네. 나는 공부하는 선비이니 작약이면 충분하네."


작약은 3년 만에 꽃을 피웠다.

[겸재의 작약/심규섭/디지털그림/2023. 독서여가 작품을 바탕으로 작약꽃을 그렸다. 물받침대를 빼고 꽃은 크게 그렸다. 겸재 선생은 작약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마음을 따라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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