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장승업이 추천하는 만병통치약
백물도 속의 산삼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인데,
서양의 아스피린과 우리나라의 인삼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한다.
아스피린은 해열, 진통뿐만 아니라 감기, 심장병, 당뇨병, 뇌경색, 대장암, 전립선암, 혈전증 따위에 효과가 있는 현대판 만병통치약이다.
특히 약값이 한 정에 100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하고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이만한 약이 없다.
칸 영화제에서 한국 처음으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 있다.
2002년 [취화선]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이다.
취화선(醉畵仙)은 조선 말기의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생애를 다룬 영화이다.
장승업은 타고난 재주에다 시대의 흐름을 가장 빠르게 읽었던 화가였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는 그림을 빠르게 수용하여 조선에서 유행시켰다.
요즘과 비교하면,
미국의 팝아트를 가장 앞장서서 한국에 퍼트린 것과 비슷하다.
장승업의 그림은 돈 많은 중인출신 부자들이 좋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의 욕망과 정서에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특히, 장승업은 중국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를 잘 그렸다.
나중에는 조선의 정서가 가미된 독특한 형식을 창안하게 된다.
서양의 정물화와 비슷한 [백물도, 百物圖]이다.
[장승업(張承業)/백물도(筆百物圖)/견본담채/38.8x233cm/국립중앙박물관]
장승업이 그린 백물도에는 당시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모아놓았다.
그림 속에는 약 20 종류의 사물이 있다.
청동 향로와 주전자 같은 기물은 중국에서 수입한 골동품으로 값을 매기기가 어려울 만큼 비쌌다.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 상, 주 시대의 제기(祭器)는 고증학이나 금석학(金石學)과 밀접한 학문의 사물이다.
이 때문에 고대 청동기는 양반이나 선비에게는 소중한 애장품이며 중인 부자들에게는 고급 명품으로 부의 척도로 여겼다.
6종의 꽃이 있다.
국화는 군자의 향기, 동백은 양심, 난초는 군자의 향기, 장미는 청춘, 연꽃은 출세, 수선화는 양심의 상징이다.
이 중에서 목화나 백당나무, 벽오동으로 추정되는 식물이 있다.
다른 화가의 기명절지도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장승업의 작품 2점에서만 발견된다.
열매와 과일에는 복숭아, 순무, 불수과, 밤, 연과(蓮果), 가지가 있다.
복숭아는 태평성대나 불로장생, 순무는 장수, 불수과는 건강, 밤은 다산, 연과는 출세, 가지는 정력의 뜻이다.
괴석은 영원함이나 변치 않음이고, 벼루는 학문, 대합조개는 화목, 참게는 출세의 상징이다.
왼쪽 끝부분에 산삼을 그렸다.
많은 기명절지도나 백물도가 있지만 산삼을 그린 작품은 유일하다.
복숭아, 순무, 불수과 따위도 건강 장수의 상징이지만, 실제 약효는 없고 플라시보 효과만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산삼은 실제 사용하는 최고급 약재이다.
당시 산삼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
심마니가 깊은 산속에서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를 크게 외쳤다고 한다.
당연히 100년 묵은 산삼을 채취했을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이런 산삼은 심마니가 평생 한 번 만날 확률도 없다.
30년이 넘는 산삼도 흔하지 않고 50년이 넘으면 신령한 영초(靈草)라고 한다.
2009년 중국에서 들여온 100년 수령 산삼이 6억 원에 거래되어 충격을 준 뉴스가 있다.
그야말로 “로또 산삼!”과 다르지 않다.
장승업은 산삼을 직접 보고 그렸을까 아니면 상상으로 그렸을까?
이 작품 속 대부분의 사물은 상상력만으로 그렸다. 화가는 척보면 안다.
이 중에서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장미와 산삼이다.
세밀한 붓질과 꼼꼼하게 묘사 한 흔적이 확연하다.
이렇게 산삼과 장미를 사실적으로 그린 것은 구매자의 요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당시 장승업의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난 부자였다.
우리 전통 그림에서 산삼은 한 번도 그려진 적이 없다.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산삼을 그려 넣을 만큼 구매자의 요구는 강력했다.
그렇다면 장승업은 비싼 산삼을 어떻게 보고 그린 것일까?
이 산삼은 작품 구매자의 것이다. 구매자가 이 산삼을 구입해 먹기 전에 증거로 그림에 남긴 것이다.
구매자는 분명 60세 이상의 늙은이로 건강 장수에 대한 욕망이 강했을 것이다.
장미는 장춘(長春)을 상징한다. 늙어서도 청춘의 삶을 영위하고자 했다.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도 알았을 것이다.
나이를 되돌리고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불로초 밖에 없다고 여겼고, 산삼은 불로초의 또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장승업은 산삼의 뿌리와 2개의 약통, 이파리, 꽃을 설명하듯 한 번에 그렸다. 누가 보아도 틀림없는 산삼으로 각인시켰다.
작품 구매자의 요구를 성실히 반영하고 산삼의 현실감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미술적 장치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 산삼의 수령은 얼마나 될까?
두 그림을 비교하여 추정해 보기 바란다.
[좌측-중국의 100년 산삼 실물. 우측-장승업이 그린 산삼. 뿌리가 두껍고 2개의 튼실한 약통, 긴 뇌두를 가진 그림 속 산삼의 수령은 얼마나 될까?]
우리 민족의 만병통치약은 산삼이다.
하지만 가난한 백성에게 100년 묵은 산삼은 불가능한 사치일 뿐이다.
이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것이 인삼이다.
산삼 씨앗을 가져와 대량으로 재배하여 누구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인삼은 원기를 보하고 신체허약, 권태, 피로, 식욕부진, 구토, 설사에 쓰이며 폐 기능을 도우며 진액을 생성하고 안신작용 및 신기능을 높여 준다고 한다.
인삼의 핵심 효능은 체온이 낮은 사람은 높게, 높은 사람은 낮추어주는 ‘체온 유지’ 역할이라고 한다.
항온동물인 사람의 체온 유지는 생명과 직결될 만큼 중요하고 만병치료의 근원이다.
참고로, 열이 많은 사람이 인삼을 먹으면 안 된다는 속설은 외국 경쟁업체의 농간이라고 한다.
이는 예전에 보았던 KBS 다큐멘터리를 참고한 것이다.
아스피린이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면, 인삼은 장기복용에 의한 체질 형성이다.
가정마다 아스피린을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고, 선물 받은 홍삼이 여럿 있을 것이다.
내 몸과 가족의 건강은 인삼으로 지키고,
정신 건강은 양심의 질서를 표현한 우리그림으로 살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