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판치던 시대의 호랑이그림
작자 미상의 맹호도
1946년 미군정 시절, 정신없이 도망가던 일본인은 비싼 고미술품을 가져갈 수 없어 친구가 운영하던 요릿집 지하창고에 숨겼다.
이를 미군이 찾아내어 압수했다.
미군은 고미술품의 가치를 알지 못해 한 골동품 상인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상인은 미술품을 감정해준 사례로 한 점의 그림을 받았다.
이렇게 옛 그림 한 점이 일본인에서 미군을 거쳐 한국인의 손에 들어왔다.
전문가들은 심사정의 작품으로 추정했다. 낙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1970년대 초 ‘한국명화 근대 오백년展’에 출품되어 찬사를 받고, 국립중앙박물관 도록의 표지로까지 장식했을 정도로 유명했다.
“유명하다는 작품을 빨리 보여주게.”
“바로 맹호도(猛虎圖)일세.
일단 작품을 살펴보지.
이 그림은 종이에 수묵으로 그렸네.
상당한 공력을 들여 털을 묘사했네. 자세나 표정은 호랑이의 생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끈질기게 관찰한 결과이지.
상당한 실력을 가진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하네.”
“호랑이 표정이 무섭기도 하고 멍청해 보이기도 하네. 무엇보다 좀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나만의 생각인가?”
“수묵으로 그리고 아주 얇은 채색을 했는데, 호랑이 털의 선묘가 강한 탓이네. 완성된 그림은 아닌 것 같네. 양쪽과 아랫 부분이 잘린 것은 여러 번 표구를 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것이지.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약점이네.”
[맹호도/지본수묵/97*55.5cm/18세기/조선/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심사정이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놀랍네.”
“놀랄 일이 아니라 한탄할 일이라네.
심사정의 그림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네.
작품 오른쪽 상단의 제문에 붙어있는 연도에 문제가 있었지. 작품에는 심사정이 사망한 지 4년이나 지난 1774년 날짜가 적혀 있네. 죽은 심사정이 벌떡 일어나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는 말인데,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
“최고 미술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속인 희대의 사기였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부자 일본인이 도망가면서 숨겼던 그림이니 작품의 출처를 확인할 길이 없었지. 여기에 막강 권력인 미군을 끌어들여, 돈세탁을 하는 것처럼 작품 세탁을 했네.
위의 이야기는 전부 지어낸 것이네. 거짓으로 의심하더라도 확인할 방법 자체를 완벽하게 차단한 것이지. 사기꾼들에게 나라 전체가 속은 것이네.”
“얼핏 보아도, 조선남종화의 대가였던 심사정의 화풍과는 다르게 보이네.
오히려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흡사하게 보이는데, 연관이 있는가?”
“단원 김홍도와 현재 심사정은 38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지. 심사정은 영조 때, 김홍도는 정조 때 활동했네. 심사정과 김홍도가 호랑이 그림을 두고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은 없네.”
"그렇다면, 이 호랑이 그림의 정체는 뭔가?”
“김홍도의 습작일 가능성이 있네.
김홍도는 [송하맹호도]를 그리기 위해 많은 초본을 그렸지. 이건 미술창작에 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금방 이해될 것이네.
최종 완성 단계를 가늠해 보기 위한 여러 장의 초벌그림 중 하나일지도 모르네.
소나무가 그려져 있지 않는 것, 종이에 수묵으로 그린 것도 습작이라는 심증을 더한다네.
아무튼 초벌 그림 중에 하나가 유출되어 심사정의 그림으로 둔갑했을 것이네.
중인인 김홍도보다 선비화가였던 심사정의 그림으로 만들면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위작이 아니라 창작자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닌가? 김홍도의 습작이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인데.”
“김홍도는 대략 1780년도 전후로 [송하맹호도]를 그렸지. 맹호도가 알려진 시기는 1946년인데 대략 250년 묵은 그림치고는 보존 상태가 너무 좋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맹호도는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자세나 표정은 거의 동일하다. 이것은 김홍도의 습작이거나 위작일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김홍도 그림이 아니란 말인가?”
“전문 화원이 모작한 위작이네.
위작 시기는...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890~1930년 사이로 추정하네.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은 김홍도의 전매특허와도 같았네.
이런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이 유행하지 못한 것은 따라 그리거나 흉내 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일세.
김홍도의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 김양기의 호랑이 그림도 아버지의 수준보다 한참 떨어졌지.
따라서 비슷하게만 그려도 김홍도 그림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지.
만약 김홍도의 절반의 절반 정도의 실력을 가진 화원이 모방하여 그렸더라도 진위를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일세.”
“그림 오른쪽의 글은 무슨 뜻인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발문 속에 담겨있다네. 충격적인 내용이니 놀라지 말게.”
獰猛磨牙孰敢逢 용맹스럽게 이를 가니 감히 맞설 수 있겠는가
愁生東海 老黃公 동해의 늙은 황공(黃公)은 시름이 이니
于今跋扈橫行者 요즈음 드세게 횡포스런 자들
誰識人中此類同 이 짐승과 똑같은 인간인 줄 누가 알리오.
“이 발문은 자연스러운 글이 아니네.
글은 뒤죽박죽으로 널뛰기를 해서 마치 짜깁기를 한 것처럼 보이지.
앞쪽 두 문장은 호랑이의 용맹함을 찬양하는 내용일세.
호랑이가 용맹하게 이를 갈거나 으르렁거리니 대적할 상대가 없다는 말이네.
동해 황공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인물인데, 젊을 때는 호랑이를 때려잡았을 만큼 강했다고 하네. 그런데 늙은 황공은 호랑이를 잡다가 죽었다고 하네.
용맹한 호랑이와 맞짱 뜨려면 젊은 동해 황공이 나와야 하는데, 늙고 술에 찌든 황공을 등장시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전개라 해석하기가 어렵네.
그런데 갑자기 나쁜 놈이 등장하네.
요즘 드세게 횡포를 부리는 자들은 부정부패일 일삼고 백성을 착취하는 나쁜 놈을 뜻하지.
이런 나쁜 놈들은 용맹한 호랑이 다르지 않다는 말인데 문맥이 상당히 어색하네.
용맹하다는 것은 포악한 것과 다른 개념일세.
처음부터 포악하다고 했으면 될 것을, 용맹하다고 찬양해 놓고 갑자기 포악한 호랑이로 바꿔 버렸네.”
“포악한 호랑이에 빗대어 난세를 비판하고 풍자한 내용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비판과 풍자는 적대 세력에게 가하는 것일세. 조선 정부에 대항해 풍자와 비판을 한다면 역모가 되지. 그래서 김홍도나 심사정의 작품에는 시대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은 없다네.
단원 김홍도가 창조한 호랑이는 용맹한 군자의 상징이었네. 강력한 양심의 상징이기도 했지. 조선에서 호랑이는 군자나 산군, 산신령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네.
그런데 이 발문에서는 호랑이와 나쁜 놈을 같은 부류로 만들었지. 이것은 조선의 선비나 군자를 나쁜 놈으로 만든 것과 같네.”
“비약이 아닌가?”
“이 그림은 위작일세.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위작했다면 심사정 낙관으로 충분하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와 정치문제를 연결한 것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네.”
“정치 문제라니, 그냥 나쁜 놈을 비판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공자가 한 말이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구나! 荷政猛於虎’
포악하고 나쁜 호랑이는 곧 가혹한 정치를 뜻한다네.
이 작품이 위작된 시기는 대력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추정한다네.
1890년대 이후부터는 실제적인 일본의 식민지였고 조선 정부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지.
호랑이를 포악하게 횡포를 부리는 정치로 규정하면 조선 왕과 정부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일세.
이것은 조선인의 관점이 아니라 일본의 관점이라고 봐야 하네. 조선을 무너뜨리려는 친일매국노의 관점이기도 하지.”
“일본이 이렇게 까지 호랑이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두렵기 때문이지.
김홍도가 창조한 호랑이는 강력한 양심의 선비나 군자를 상징하네. 백성에게 호랑이는 조선이라는 나라 그 자체였네.
일본은 이런 조선 호랑이를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네. 신식 무기로 호랑이를 사냥하여 고기는 일본 귀족들의 요리로, 뼈는 갈아 약으로, 가죽은 일본군 장교의 의자를 장식했지. 결국 일제강점기에 조선 호랑이를 멸종시켰네.”
[일본은 조선 호랑이를 기필코 멸종시켰다.]
“돈을 벌기 위한 위작이 아니라 조선 백성을 속이려는 심리전술 그림이란 말인가?”
“전쟁의 승패는 강력한 무기나 군대가 아니라 심리전이 결정 짓는다고 하지.
심리전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거나 약하게 만들어 대항 의지를 없애버리지.
심리전의 핵심 무기는 예술이라네.
예술에는 삶의 가치, 신념, 목표와 같은 개념이 압축되어 있다네.
현대에서는 영화, 음악, 드라마 같은 예술형식이 중심이지만 당시에는 미술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지.”
“고작 호랑이 그림 하나가 무슨 역할을 했겠나?”
“그 폐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네.
사람들은 조선시대를 허접한 봉건국가로 폄하하고 선비는 탁상공론만 일삼는 나약한 존재로 여기고 있네.
호랑이처럼 강력한 양심을 가지고 500여 년 동안 찬란한 문화와 민본정치를 발전시킨 사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
[단원 김홍도/송하맹호도/비단에 채색/90.4 x 43.8 cm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 세상에서 가장 인문학적인 호랑이 그림이다.]
“호랑이 이야기가 너무 커졌네. 어떻게 마무리를 할 건가?”
“일제강점기 전후로 그림을 이용한 심리전이 광범위하게 펼쳐졌다는 정황이 있네.
당시 조선을 대표했던 [십장생도]와 같은 왕실그림은 은폐하거나 왜곡했고, 손바닥만한 풍속화나 떠돌이 환쟁이의 민화를 부각시켰지.
세계 최초, 그림으로 정치를 할 만큼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조선의 그림은 한 순간 쓰레기 수준으로 떨어졌네. 조선 백성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지.
맹호도 사기꾼은 이런 헛점을 노린 것이네.
허접하게 그린 까치호랑이 그림만 보았던 사람들에게 맹호도 수준도 충격이었네. '우리에게도 이런 명작이 있다니'하며 감격했지.
사기꾼은 조선 백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악질 심리전 그림을 유통시키다가, 해방 이후 다시 한국 정부기관에 팔아 먹었다네. 정부는 이를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떠받들었지.
자신의 가슴에 칼을 찌르고 자부심에 넘쳐 웃고 있는 괴기스런 모습이 연출된 것이지.
위작 맹호도는 가슴 아픈 시대의 유산일세.”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이런 미친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네.”
“아픈 과거를 극복하려면 위작 호랑이가 아니라 진짜 호랑이처럼 살아야 하네.
큰 눈의 총명한 호랑이처럼,
수염을 치켜 올린 신념의 호랑이처럼,
두 발을 모은 겸손한 호랑이처럼,
꼬리를 말아 올린 경쾌한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강인한 양심의 호랑이가 되어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