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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Jun 06. 2023

물감이 부족합니다.

알뜰하게 창작한 오봉도(五峰圖)

조선 말기, 세도정치가 지속되면서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삼정(三政)이 문란해졌다.

탈세, 면세뿐만 아니라 착복과 회피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국가재정이 없어 관리의 월급을 주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도화서]도 직격탄을 맞았다.


도화서 조례시간, 예조좌랑이 서류를 보이며 별제를 다그친다.


“창덕궁 인정전에 설치된 오봉도는 벌써 20년이 넘었소. 낡아 여기저기 색이 벗겨지고 곰팡이 냄새도 지독합니다.

규정에 따라 수명이 다한 그림은 폐기하고 새로운 오봉도를 그려야 합니다. 예조에서 수차례 보낸 공문을 읽기나 한 것입니까?”


도화서 별제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예조에서 보낸 공문은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오봉도를 그리지 않는 것이오?”


“이 문제로 예조판서 대감께 수차례 건의를 했지만 마땅한 대답을 듣지 못했소.”


“오봉도의 창작이 예조판서 대감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오?”


“물감과 배첩 비용을 마련해 달라고 대감에게 청원했소. 오봉도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와 비용이 듭니다.

도화서에 남아있는 물감도 거의 떨어졌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오봉도를 제작할 수 없습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이오. 물감이 없어 임금을 상징하는 오봉도를 그리지 못하다니.”

[심규섭/오봉도/디지털그림. 가장 전형적인 오봉도이다. 진한 청록색으로 봉우리와 바위를 칠했고, 하늘은 석청과 검정과 섞어 그렸다. ]


1840년대,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헌종 시절이다.

재위 15년 중 9년에 걸쳐 수재(水災)가 발생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  

1836년에는 남응중(南膺中), 1844년에는 이원덕(李遠德) 민진용(閔晉鏞) 등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1848년부터는 많은 이양선(異樣船)이 출몰해 행패가 심해 민심이 어수선하였다.


예조좌랑이 차분하게 말한다.


“지금 조선은 매년 거듭되는 홍수로 흉년이 들고 전염병을 돌아 백성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소.

조정은 비상상태입니다. 임금께서 매일 관리들을 질타하고, 급하지 않은 예산은 모두 진율청(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관청)으로 돌리라고 명하셨소.

임금께서는 수라상에 올라오는 음식을 줄였고 왕실 행사는 축소하거나 미루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아들 혼례에 흥청망청하는 고위 관직자가 있다는 소문이...”


“거, 말조심하시오. 도화서는 정치를 논하는 곳이 아니요!”


“송구합니다.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아무튼, 예조판서 대감이 답변을 주지 않은 것은 예산을 마련할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낡은 오봉도를 방치할 수는 없소. 일단 도화서 남아있는 물감만 가지고 그릴 수는 없겠소?”


별제가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작품이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창작해 보겠습니다. 대신 작품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겠소.”


“작품에 대한 책임은 예조판서 대감이 질 것입니다.”


“선회 화원,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오봉도 초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오봉도를 그릴 준비를 하시오. 그리고 도화서에 있는 모든 물감의 재고와 상태를 파악하도록 하시오.”


“도화서에 있는 모든 물감을 파악했습니다. 붉은색과 황색은 오봉도를 그리기에 충분한 양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봉도 채색에 가장 필요한 청색(석청)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녹색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


푸른색을 내는 석청은 수입물감으로 금값보다 비쌌다. 석청은 가장 비싼 물감이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색이기도 하다.

[위-1840년 대 창작한 인정전 오봉도의 모습이다.

아래-보수한 오봉도의 모습이다. 아래의 오봉도는 실제 창작 상태와 가장 가깝다.

물감의 부족으로 먹을 사용했다. 물감과 먹은 밀도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미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지. 봉우리의 파란색은 녹색으로 대신하고, 부족한 부분은 먹을 사용하시오.”


“넓은 면적의 하늘을 칠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하늘에 온전한 청색을 칠하는 것은 포기합시다. 대신 먹을 섞어 사용하시오.”


선회 화원을 중심으로 오봉도에 채색을 시작했다.

봉우리의 넓은 부분에 녹색을 칠하고 입체감을 내기 위해 녹색에 하얀색을 섞어 발랐다. 조금 남아있는 석청은 봉우리의 중심부에 칠했다.

물감을 바르지 못한 봉우리 곳곳이 허였게 보였다. 먹물을 사용해 녹색과 연결하는 바림질을 했다.


“석청이 얼마나 남았소?”


“한 종지 정도입니다.”


“남은 석청은 모두 먹과 섞어 하늘에 칠하도록 하시오.”


“농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짙은 먹을 사용하여 밀도를 높일 수 있지만 하늘은 시커멓게 될 것입니다.”


“묽은 먹을 사용하시오. 여기에 석청을 섞으면 은은한 청색이 날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오봉도가 완성되었다.

별제가 완성된 오봉도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소. 최악의 조건에서 창작한 오봉도입니다. 이만하면 그리 나쁘지 않소.”


배첩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별제, 비단을 고정할 종이가 없소. 배접을 하지 못하면 병풍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오. 예조좌랑에게 방법을 찾으라고 했으니 곧 답이 올 것이오.”

[오봉도의 배접지로 사용한 시험지이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시험지를 돌려주었다. 배접에 사용한 시험지는 낙방한 사람들의 것이다. 시험지를 재활용할 만큼 도화서의 재정이 어려웠다.]


이때 예조좌랑과 일꾼들이 종이 한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과거시험에 낙방한 시험지입니다. 종이의 질은 아주 좋소. 이 시험지를 물에 씻어 먹을 제거하고 배접지로 사용하시오.”


“도화서에서는 먹을 제거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자칫 종이가 손상될 것입니다. 이 작업을 기술자에게 맡기면 많은 비용이 드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예조 좌랑이 애원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배첩장에게 묻겠소. 글씨가 적힌 종이로 배접이 가능하오?”


“그림의 물감이 불투명하니 글씨가 밖으로 비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예조 판서는 오봉도 제작과정을 담은 장계를 임금에게 올렸다.

장계를 들고 오봉도를 바라보는 임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창덕궁 인정전 어좌 뒤의 오봉도이다. 인정전 오봉도는 4폭 병풍으로 만들어 설치했다.]


“나의 덕이 부족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소. 오봉도는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왕의 역할을 상징하오.

백성이 어려운데, 내 어찌 화려한 오봉도 앞에 앉을 수 있겠소.

이만하면 충분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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