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해 음식을 먹는다.
숟가락을 언제부터 사용한 것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청동기 시대, 뼈로 만든 숟가락 유물이 발견되었다.
젓가락은 삼국시대 유물이 있으니 일단 숟가락이 먼저고 나중에 젓가락이 나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음식을 먹는 도구로 구분하자면, 포크를 사용하는 서구 문화권과 손가락을 사용하는 아랍과 인도문화권 그리고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양문화권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손으로 먹는 인구가 가장 많다.
우리는 젓가락뿐만 아니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사용하며 비중은 거의 5:5이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숟가락을 사용하지만 국물을 떠먹을 때만 사용하고 대부분의 음식은 젓가락을 사용해 먹는다.
우리 민족은 확실히 숟가락 민족이다.
숟가락이 없으면 우리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
찐득찐득한 밥과 비빔밥, 뜨거운 각종 탕과 찌개와 국은 숟가락 전용이다.
숟가락 문화는 비빔밥 문화와 밀접하고, 이 비빔밥 문화는 외부 문화를 수용하여 우리 것과 혼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데 바탕이 된다고 한다.
반면에 일본과 중국은 국물도 그릇을 들고 마시는게 일반적이다.
숟가락이 없어도 대부분의 음식을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다.
일본에는 젓가락 박물관만 수십군데가 있다고 한다.
장인이 만든 명품 젓가락은 수 십만원에서 수 백만원까지 팔리고 명품 젓가락을 선물하는 문화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일본 젓가락은 주로 나무로 만들고 짧은 편이다. 중국 젓가락도 나무로 만들지만 길다.
그에 반해 우리의 젓가락은 쇠로 만들고 무거우며 길이는 중국과 일본의 중간쯤이다.
[고려시대 청동기로 만든 수저 유물]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젓가락 평균 길이는 20cm 정도이며 고려시대 청동기로 만든 젓가락 유물의 길이는 28cm이다.
고려시대에 만든 젓가락 길이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 젓가락(와리바시)의 영향으로 점차 짧아 졌을 것이다. 당연히 무게도 가벼워졌다.
각설하고,
음식점에서 가끔 속 빈 스텡 숟가락과 젓가락이 내놓는 경우가 있다.
속 빈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다.
가뜩이나 젓가락질을 못하는 편인데, 손에 쓸데 없는 힘이 들어가고 끝이 잘 모아지지 않아 짜증이 날 정도이다.
같이 음식을 먹던 사람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이 속 빈 젓가락이 유통되는 것에는 뭔가 음모가 있다. 우리 민족의 탁월한 손재주를 없애기 위한 계략이 진행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상대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결의에 찬 눈빛으로 다시 말했다.
"내가 조만간 이 속 빈 젓가락의 실체를 만천하에 까발리겠다. 두고 봐라."
그리고는 휴대폰 카메라로 속 빈 젓가락을 찍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젓가락 속 모습까지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속 빈 젓가락 따위에 엄청난 음모나 계략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망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편했으며 기분이 나빴다.
이 속 빈 젓가락은 고급 음식점의 고급화 전략이다. 실제 속 빈 스텡 젓가락은 일반 젓가락보다 비싸다.
순식간에 전통적인 사각 쇠젓가락은 싸구려 문화로 전락했다.
일개 장사치가 수 천 년을 이어온 무거운 젓가락의 전통을 깨고 우리 민족의 습관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 빈 젓가락의 내부 그래픽이다. 이 젓가락은 스테인레스 재질로 속을 비워 무게를 줄이고 둥글게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제이손이라는 국내 회사가 2004년 '진공젓가락'이란 이름으로 처음 만들었다고 나와있다. 벌써 20여 년이나 되었다.
[...차별화된 제품 제이손 진공 젓가락은 제품의 특성도 다양한데, 젓가락 속이 비어있어서 나무젓가락처럼 가볍다. 때문에 손가락과 손목에 부담을 주지 않아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사용하기에 아주 효율적이다.
게다가 위생을 고려해 설계된 제품으로 식탁에 놓을 때 젓가락 끝이 식탁 면에 닿지 않아서, 받침대 없이도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세제나 각종 세균, 냄새 등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위생적이다.
반면 가볍고 도톰하여 젓가락 사용이 편안하다. 마치 나무젓가락처럼 도톰한 질감을 느낄 수 있으며, 가볍게 제작되어 속이 비어있는 특수성 때문에 손으로 잡았을 때 순간적으로 사람의 체온과 같아져 차갑지 않고 따뜻하다.
특히 속이 비어있어 열전도가 안 된다. 열전도가 되지 않아 튀김이나 조리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뜨거운 기름에도 젓가락이 뜨거워지지 않고, 라면을 끓일 때와 튀김 젓가락으로 사용할 때도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아서 손을 다칠 염려도 없다.
그야말로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하면 그 진가가 빛나는 제품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마치 대단한 젓가락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소비자 만족도 1위, 주부가 뽑은 1등 상품 따위의 기사를 붙이면 자칫 현혹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사여구로 장식한 글 속에 숨어있는 핵심만 요약하면 이렇다.
1.나무젓가락처럼 가볍다.
2.젓가락 끝이 모아지지 않는다.
3.어린이나 노약자가 사용하기 좋다.
요목조목 따져보자.
1.나무젓가락처럼 가볍다.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면 되지 굳이 스테인레스라는 재질로 안쪽을 비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건 비싸게 팔기 위한 상술일 뿐이다. 기술적인 향상이나 발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건 일본 젓가락의 특징이며 스텡으로 일본 젓가락을 만든 것이다.
2.젓가락 끝이 모아지지 않는다.
위생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결국 젓가락 끝을 모을 수 없다는 말이다.
젓가락으로 콩자반같은 작은 물건은 집을 수 없고 콩나물 두 개만 집어 먹을 수 없으며 미끌거리는 음식을 집는 것도 어렵다.
끝이 바닥에 닿지 않아 위생적이라는데 그렇다면 바닥에 닿는 면이 큰 숟가락은 비위생적이라 버려야 하나?
이렇게 끝이 모아지지 않는 젓가락은 둥근 형태를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중국 젓가락의 특징일 뿐이다.
3.어린이나 노약자가 사용하기 좋다.
어린이용 플라스틱 젓가락도 이미 사용하고 있고, 노약자가 쇠젓가락을 들 기력이 없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 이런 경우 대부분 도우미가 옆에서 떠 먹여 주어야 한다.
결국 정상적인 성인에게는 필요 없는 젓가락이란 말과 같다.
체온과 같아지고 열전도가 되지 않아 튀김이나 조리용으로 사용하기 좋다는 말은 그냥 '개구라'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차거워서 젓가락을 들지 못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고, 튀김이나 조리용 젓가락은 이미 따로 존재한다.
[쇠로 만들어 무거우면서 끝이 모아지는 우리 젓가락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줄기세포 연구로 유명한 황우석 박사가 젓가락을 자유자재료 사용하는 손재주 때문에 우수한 줄기세포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100% 동감하지는 않는다.
실제 젓가락은 중국과 일본인이 더 훨씬 많이 사용한다. 사용 빈도가 많다고 반드시 손재주도 우수한 것은 아니다.
[단원 김홍도 풍속화-새참. 밥 그릇이 크니 숟가락도 넓다. 숟가락을 이용해 밥을 먹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먹는 문화는 오랜 전통이다.]
우리 젓가락의 특징은,
쇠붙이로 만들어 무겁고 직사각형으로 끝이 모아진다는 것이다.
처음 사용법을 익히는데 불편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콩같은 작은 물체를 집거나 젓가락만으로 김치를 찟어 먹을 수 있는 천하무적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중국이나 일본의 가벼운 젓가락보다는 사용빈도가 낮지만 강력한 손재주를 가지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원 김홍도 풍속화-춘절 야유도. 뜨거운 고기를 먹을 때 젖가락을 사용하는 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젓가락 문화는 우리 민족의 기질이나 생활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
이 땅에서 나는 식재료, 조리방법, 먹는 방법, 먹는 도구는 한줄로 연결 되어있다.
부모에게서 자녀로 연결되고, 그 자녀의 자녀까지 이르러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과 정체성을 만든다.
기억하고 지키자.
무겁고 직사각형의 끝이 모아지는 쇠젓가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