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 대해 묻자 주자는 이렇게 정의했다.
“귀신은 기(氣)의 변용태일 뿐이다.”
기(氣)는 육체나 사물의 성격이나 쓰임새에 따른 움직임이다.
깊은 밤, 한적한 산길을 걷다가 정체를 알 수 있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거, 귀신이요? 사람이요? 귀신이면 물러가고 사람이면 나와 보슈.”
우리 어른들은 귀신보다 사람을 더 무서워했다.
사람을 해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리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아귀같다.'고 했다.
아귀는 욕심 많은 귀신을 뜻한다.
귀신은 사악한 욕망과 두려움에 빙의된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사람들이 미신에 기대는 것은 삶의 중심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귀신을 믿지 않았기에 귀신은 없었다.
귀신 대신 사람에 대한 철학인 성리학을 굳게 믿고 삶의 중심에 세웠다.
하늘마저 절대적 존재로 여기거나 의인화하지 않았다.
하늘은 가물가물한 색으로 칠하거나 우주의 근본 자리로 이해했다.
세상은 절대권력, 절대존재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규정되고 발전했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사람은 사회적 인간이다.
어떤 사람은 성리학을 탁상공론의 허학이라고 말하지만 틀렸다.
성리학의 핵심 내용은 인의예지이고, 인의예지는 오로지 실천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실학이다.
조선말기, 성리학의 힘이 약해지면서 귀신을 숭배하는 무당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미신은 양심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에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진다.
명성황후는 궁궐에 사당을 차리고 무당을 끌어들였고, 무당은 불안한 욕망을 부추겨 푸닥거리와 부적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일제강점기 귀신 천국인 일본에서 수많은 귀신이 들어왔다.
귀신이 없던 나라에 귀신이 판치는 시대가 열렸다.
[심규섭/북어/디지털그림]
북어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먹던 물고기였다.
백성을 먹여살린 북어는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풍요의 상징인 북어 몸통에 풍요의 상징인 명주실(비단실)을 감았다.
실타래처럼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기를 바란다는 말은 직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사상에는 어김없이 북어가 올랐고, 문 입구에 걸어 풍요를 기원했다.
북어를 놓고 고사를 지난다고 무탈하고 대박이 나겠나?
그래서 북어의 몸통에 태극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파란색의 명주실을 감았다.
태극은 우주의 근본이며 우주적 양심이 있는 자리이다.
북어가 외친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풍요를 누리고 싶니?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니?
그렇다면 징징거리고 요행이나 바라면서 비굴해지지마.
너의 우주적 본성인 양심을 이끌어내고 양심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원하고 실천해.
내가 도와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