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한양 청계천에는 광통교가 있다.
도성 내에서 가장 큰 다리로 길이 약 12m, 폭 15m로 길이보다 폭이 넓은 특이한 다리였다.
이 광통교 주변으로 각종 그림을 사고 파는 서화사(書畵肆)나 지전(紙廛), 지물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서화사는 주로 수준 있는 화원들의 그림을 사고 팔았고, 지전은 무명화가의 그림이나 습작, 세화 따위를 팔았다.
[광통교가 그려진 옛 지도이다. 광통교만 특별히 강조해서 만들었다.]
복사꽃이 필 무렵, 몇 명의 화상들이 광통교의 한 서화사에 모였다.
“자네들, 최근 혜원에 대한 소문 들었는가?”
“혜원은 도화서 화원이자 신한평의 아들 신윤복이 아닌가? 그래, 무슨 소문인가?”
“글쎄, 기생의 전신 초상화를 그렸다지 뭔가.”
“열녀나 의녀가 아니라 그냥 기생을 그렸다는 말인가? 세상에, 이런 소리는 위화도 회군 이래 처음 듣네.”
혜원 신윤복(申潤福/1758 ~?)은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진 화원이었다.
[단오]라는 작품을 비롯해 선비와 기생이 풍류를 즐기는 다양한 풍속화를 창작했다.
특히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그린 풍속화는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혜원이 야릇한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소문도 있던데?”
“헛소문이네. 혜원의 집안은 3대에 걸쳐 도화서 화원을 배출했고, 신윤복의 아버지는 어진을 3차례나 그려 벼슬을 살았네.
그런 집안의 자식이 도화서에서 쫓겨 날 무모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네.
오히려 혜원의 그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이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 그만둘 수는 있었을 것이네.”
[광통교 서화사 내부 모형이다. 서화사나 지전에서는 십장생도와 같은 궁중회화부터 민화까지 다양한 그림을 팔았다. 규모가 큰 서화사에서는 여러 명의 화공을 직원으로 두고 직접 창작까지 했다.]
“난 혜원의 작품을 직접 보았네.”
곰방대를 물고 구석에 앉아있던 나이 지긋한 화상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조그만 화첩 그림이 아니라네. 길이가 무려 140cm에 가까운 엄청난 크기라네. 내가 그림을 사고 판 지 수십 년 동안 그런 그림은 처음일세.”
현재 간송미술관에 있는 [미인도]의 크기는 114.2×45.7㎝이다.
하지만 여러 번의 배첩(표구) 과정에서 좌우상하가 잘려나간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대략 140cm 정도 크기로 추정한다.
“그래, 그림을 본 소감은 어떤가?”
“18세 전후의 앳된 기생을 그렸는데, 풍성한 트레머리에 쪽빛 치마를 입었더군.
고개를 살짝 숙였는데 눈빛이 몽롱하고 자세가 요염하여 보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탁 막혔네.
내가 손자를 본 지 한참이나 된 나이임에도 춘정이 올라올 정도였다네.”
깊은 주름 속에서 눈빛이 반짝이고 쪼글쪼글한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일렁인다.
[혜원 신윤복/미인도/114*45.5/비단에 채색/18세기/간송미술관.]
“그림에는 뭐라고 쓰여 있던가?”
“자박흉중만화운(資薄胸中萬華云), 필단화여파신(筆端話與把傳神)
아찔하게 얇은 가슴 속 온갖 화려함을 이르나니, 붓끝으로 말 더불어 그 마음도 그리노라.”
“아이고, 어렵다 어려워. 혜원이 제법 문자를 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먼."
“나이가 들더니 정서가 메말랐군. 문자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일세. 감정을 담아 해석해야 하네.”
“저 어려운 문자에 감정을 담은 자네의 해석은 뭔가?”
“가슴 속에 저리고 서린 봄볕 같은 정, 붓끝으로 마음이 전했을꼬.”
“오호, 정말 그림과 잘 맞는 해석일세.”
“그림 속 기생의 이름과 뉘 집 여식인지 아는가?”
“어떤 이는 혜원의 연인이라 하고, 어떤 이는 상상 속의 여인이라고 하네. 소문만 있지 실체는 아직 없네.”
“이 그림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중국에는 사녀도(仕女圖)가 있고 왜국에는 게이샤 그림이 있는데, 조선에는 처음 보는 그림이니.”
“예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크고 탐스러운 모란이나 복사꽃에다 비유하지 않았던가.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그렸으니 미인도(美人圖)라고 하면 좋겠네.”
“그나저나 혜원의 미인도 때문에 광통교 그림 시장에 난리 나겠네.”
청계천 주위로 빽빽하게 심어진 복숭아나무에는 복사꽃이 휘날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