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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Dec 04. 2023

신윤복의 미인도 10화

-신윤복의 진경산수화

봄은 속절없이 갔다.

여름에는 매미가 세차게 울더니만 태풍이 세차게 불고 많은 비가 내렸다.

남쪽에서는 역병이 돌아 많은 백성이 죽었고 북쪽에서는 큰불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겨울은 길고 추웠다.    

 

신윤복은 도화가 있는 기방(妓房)을 찾았다.

퇴기로 보이는 늙은 여자가 할 일 없이 생황을 불고 있었다.     

[신윤복/연못가의 여인/31.4*29.6/비단에 담채/18세기/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원께서 발길이 뜸한 사이 강부자라는 사람이 도화를 자주 찾아왔지요.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더이다.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 단장을 해도 수척해 보였지요.

그렇게 몇 달을 보낸 후, 다른 곳으로 갔소.

더 큰 기생집으로 갔다는 말, 강부자의 첩살이를 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위는 모르오.”     


한 무리의 사내들이 왁자지껄하게 들어서자 늙은 기생은 버선발로 뛰어나간다.

신윤복은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당시 신윤복이 어떠한 작품활동을 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 시기에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나월불폐도, 蘿月不吠圖]와 [소나무와 매]라는 그림이 관심을 끈다.   

[신윤복/나월불폐도(蘿月不吠圖)/비단에 수묵/세로 25.3x 가로 16cm/조선 후기(18세기)/간송미술관 소장.]   

  

“나월불패도라 함은 달을 보고 짖지 않는 개 그림이라는 뜻이 아닌가?”  

   

“나월패도, 개가 달빛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놀라 짖자 다른 개들도 따라 짖는다는 뜻으로 오래된 그림의 소재일세.

헛것을 보고 놀라며 경거망동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이지.

하지만 혜원은 달빛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 개를 그렸네. 개를 강직한 선비의 모습에 비유했구먼.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네.”

    

“혜원이 천재이긴 하네. 나월패도를 나월불패도로 바꾸어 그리다니 말이야.

어쨌든 개를 강직한 선비에 비유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네.

화원이었던 정홍래 선생이나 김홍도 선생은 용맹한 매나 호랑이에 선비나 군자의 모습을 투영했네.

하지만 욕설에 쓰이는 개를 선비의 모습과 연결한다는 것은 몰매를 맞을 만큼 위험한 발상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개는 누구의 상징이란 말인가”   

  

“혜원과 직접 관련된 사람으로 주변의 중인, 장사꾼 따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이들은 돈벌이가 된다면 뭐든 하는 사람들 아닌가? 사는 것이 개와 별반 다르지 않네.

여기저기 돈과 권력을 찾아 킁킁거리고 다니며 이윤이 생긴다면 똥이라도 먹을 사람들일세.”  

   

“그렇다면 이러한 장사꾼들이 세상을 경계하고 자중하라는 뜻으로 그린 그림이란 말인가?”  

   

“개는 뭔가를 지킨다는 상징이 있네. 혜원이 지키고 싶은 것은 인간다움, 양심이지 않겠는가. 비록 거칠고 어렵게 살아도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네.”     


“시대가 혼란스러운 것은 양심이 무너지고 욕망이 판치기 때문일세. 그 욕망에 편승하면 인간의 도리도 헌신짝처럼 버리게 되지. 우리는 모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네.”     


“모두가 세상을 탓하고 임금과 양반을 탓하네.

심지어는 왕이나 양반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네. 만약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 같은 백성들이 주인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까?”  

   

“그건 망상이네.

왕과 양반을 없애면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겠나? 우리 같은 백성은 그저 이용만 당할 뿐이지.

왕과 양반을 없애려면 지금보다 더 강한 양심과 청렴한 사람들이어야 하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오히려 탐욕적이네.”   

  

“허허... 말세네, 말세”     


이들의 걱정과 달리 세상은 흥청거리고 있었다.

농민들은 황폐한 농토를 개간하고 수리시설을 복구했으며 화전으로 새로운 농지를 만들어냈다. 영농방법을 개선하고 새로운 작물을 경작해 생산력을 높였다.

장인의 등록제가 폐지되면서 민간수공업이 경쟁하면서 성장했다. 제조업이 활발해지면서 광업과 은광의 개발이 활기를 띠었다.

    

인구의 자연 증가와 농민의 계층분화가 일어나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었다.

17세기 초 서울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으나, 17세기 중엽 이후에는 2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순조 13년(1813년)에 조선의 인구는 800만 명에 육박했고 서울의 1년 쌀 소비량은 1백만 석에 이르렀다.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상평통보라는 금속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어 누구나 동전을 가지고 물건을 살고 팔았다.

전국 각지에 시장과 포구가 개설되고, 이와 연계하는 유통망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신윤복/송정관폭도松亭觀爆圖-정자와 뒷산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 단일 여백을 사용했다. 사물의 위나 앞쪽은 선명하게 그리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흐리는 방법이다.

신윤복 진경산수화의 소재는 특별나지 않다. 흔하고 평범하다.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현실의 풍경을 그렸다.]   

  

“최근 신윤복의 산수화를 다시 보았네. 보통 진경산수화와 분명 다른데,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네.”     


신윤복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김홍도 풍의 진경산수화 모두를 배웠고 탁월한 진경산수화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산수화는 조선의 꿈, 백성의 꿈이 담긴 세계이지.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곳,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신선 세계라고 했다네.

이런 산수화는 시대에 따라 발전한다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산수화는 중국의 어디쯤 있다는 풍경을 따르거나 상상해서 그렸네. 그러다가 겸재 정선의 붓끝에서 조선의 산하가 그려지기 시작했지. 단원 김홍도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조선의 명승지를 그렸네.”

    

“그렇다면 신윤복의 산수화는 어디를 그린 것인가?”     


“그냥 동네 근처 놀기 좋은 곳을 그렸네.”     


“뭐라고? 고작 동네 유원지를 그렸단 말인가?”   

  

“음, 그러고 보니 혜원의 산수화에는 멋진 기암절벽이나 신비한 폭포 따위는 없는 것 같군.

어쨌든 혜원의 산수화는 정겹기도 하고, 뭔가 쫀득쫀득한 맛이 있네.”  

   

“산수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속의 시공간을 알아야 하지. 시공간이란 말이 좀 어려운가?”    

 

“생소할 뿐, 어렵지는 않네. 그림은 세상을 담는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이 사는 세상이 넓으면 그림 속의 공간도 넓고, 시간도 길어진다는 말이지.”     


“정확하네. 겸재 선생께서 창시한 진경산수화의 시공간은 아주 넓어서 우주까지 포함하지. 우리가 아는 금강전도는 조선을 우주적 공간으로 확장한 것일세.”    

 

“그렇다고 정말 조선 땅의 우주만큼 넓어진 것은 아니잖은가?”

     

“조선에 사는 사람들이 우주를 품었다고 여기는 관념이고 생각이네. 어쨌든 우주를 품었기에 시공간은 넓어졌고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생겼네.

단원 김홍도는 겸재 정선을 바탕으로 실제 걸어서 만날 수 있는 시공간을 표현했네. 금강산뿐만 아니라 팔도의 명승지가 모두 신선의 땅이 된 것이지.”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 때문에 선비들이 신선 유람을 한다고 팔도를 누볐다지.”   

  

“유원지나 뒷산 계곡 따위를 그린 혜원의 진경산수화는 그만큼 시공간이 좁아졌다는 의미인가?”   

  

“좁아진 것이 아니라 가까워진 것이네. 선비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갈 수 있는 신선 세계를 그린 것이지.”  

   

“혜원은 풍속화에 산수화도 같이 그렸네. 그림 속의 인물과 배경 풍경은 아주 가깝네. 공간이 가까워지니 시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지. 여러 공간과 시간대에 있었던 인물과 상황을 하나의 시공간에 응축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네.”     

[신윤복/주유청강. 시공간이 가깝다. 앞쪽 뱃놀이 모습과 배경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 바위 자체에 여백을 넣었다. 바위의 윗부분은 세세하면서 진하게 그리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사물의 형태가 사라지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앞쪽 인물에는 선명한 채색을, 배경에는 흐린 채색을 사용한 것도 같은 기법이다.]   

  

“공간이 가까워지면 답답해지지 않을까?”

    

“정확한 지적이네. 내가 혜원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네.

예를 들어보겠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표현된 풍경과 감상자와의 거리는 대략 1km 이상이네. 단원 김홍도의 경우에는 100m 이상으로 볼 수 있지.

그렇다면 혜원의 거리는 10m 전후로 가깝네. 이렇게 가까우면 필연적으로 공간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지.

혜원은 좁은 공간을 넓히기 위해 여백을 사용했지. 그런데 이 여백 기법이 파격적이네.

보통 여백은 사물과 사물 사이에 구름이나 안개를 넣는 방식이지만, 혜원은 단일 사물에 적용한 것이지. 이를테면, 바위의 윗부분은 진하게 그리고 내려올수록 흐리게 하여 공간을 확보한 것이네.”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군,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 것인가?”     


“혜원의 진경산수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표현한 것일세. 백성들의 꿈과 희로애락, 구체적인 삶이 그만큼 가깝고 중요하다는 것이지.”  

   

어느 날,

인편이 왔다.     


‘혜원 선생의 필치는 조선 하늘 아래 따를 자가 없다고 들었소.

내 그대의 풍속화도 보았소. 조선의 산천에서 유희하는 모습은 마치 신선 세계를 노니는 듯했소.

조만간 내 환갑 년이 돌아와 자식들과 지인들이 잔치를 연다고 분주하오. 내 이를 기념하여 특별히 혜원에게 부탁할 그림이 있소.

명성에 걸맞게 그림값을 지불하리다. 한번 방문하기를 바라겠소. 답장을 부탁하오. 강부자 씀’    

 

강부자라면 한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부자이다.

얼핏 기생집 주모에게 들었던 이름이다.

도화를 자주 찾았다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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