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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Dec 18. 2023

신윤복의 미인도 12화

     

신윤복은 사생 도구를 들고 길을 나섰다.

중년의 여인이 길을 안내한다면 동행한다.

강부자가 귓속말로 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 감시하는 역할을 맡겼을 것이다.     


도화가 머무는 곳은 인왕산이 올려다보이는 소박한 기와집이었다.

1여 년 만에 보는 도화는 훨씬 성숙해 있었다.

도톰한 입술과 볼에는 봄기운이 가득했고, 검은 머리칼은 윤기가 돌았다.

무엇보다 그윽한 눈빛 속에는 아련함과 그리움, 야속함 따위가 뒤섞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무거운 화구를 들고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셨군요.

저는 원치 않으나 강부자 님의 간곡한 의지를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 저를 그린다니 황망할 따름입니다.” 

    

신윤복은 일부러 건조하게 대답한다.

     

“나 또한 강부자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 찾은 것뿐이니 마음 쓰지 마시오.

일단 여러 자세를 사생할 것이오. 미리 부탁한 여벌의 옷을 갈아입으면서 요구하는 자세를 취하면 되오.” 

    

도화는 단장하고, 여종의 도움을 받아 트레머리를 올렸다.

고급 비단으로 만든 쪽빛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고름에 장신구를 달았다.

방을 나서기 전에 몇 번이나 청동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신윤복은 앉은 자세를 요구한 다음 전신, 반신, 정면과 측면의 모습을 꼼꼼하게 그렸다.

그런 다음 서 있는 자세를 취하게 하고 다시 정면, 반 측면, 전신, 반신의 모습을 사생했다.

전체적인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지자 얼굴이나 팔과 손 모양, 발 모양, 장신구 따위의 세세한 부분을 사생하기 시작한다.     


신윤복이 자세를 바꾸거나 교정하기를 요구하면 여종은 흐트러진 머리칼이나 옷을 매무시를 잡아주었다.

도화는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도 힘들거나 짜증 내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생은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수백 장의 화지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그만합시다. 행여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소.”  

   

강부자 집에 있는 화실로 돌아온 신윤복은 사생한 그림들을 벽면에 가득 붙여놓았다.     

어떤 모습을 그려야 할지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신윤복은 지금까지 그려온 온갖 여성들의 모습을 투영해 보았다.

하지만 도화의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강부자의 얼굴이 동시에 겹쳐졌다.

강부자의 관점이 투영된 도화의 모습은 그저 돈 많은 늙은이를 따르는 현실적 여인일 뿐이었다.

이런 여인은 중국의 [사녀도]처럼 옷이나 장신구를 중심으로 호화롭게 그리면 된다.

어쩌면 강부자가 가장 원하는 도화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 강부자가 원하는 초상화를 그려주고 두둑하게 그림값을 챙겨 떠나야 한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판단이다.’  

   

이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신윤복은 쉽게 붓을 들지 못했다.

저녁에는 미술 재료를 산다는 핑계로 외출하여 광통교 골목 주점에서 술을 마셨고, 낮에는 정원을 어슬렁거리거나 잠을 잤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강부자가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태극도설. 사람의 본성이 욕망뿐이라면 필연적으로 약육강식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전쟁과 약탈, 살육이 무한 반복되는 지옥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 유학을 넘어서는 강력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주희, 주돈이 같은 성리학자들은 도교의 음양오행론을 이용하여 우주적 본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사람은 욕망 덩어리라는 동물적 존재를 넘어 양심을 가진 우주적 존재로 비약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인간의 욕망은 우주적 본성과 조화를 이룬다는 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억눌렸던 욕망을 표현하고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주점에서 동료 화원을 만났다.    

 

“강부자의 집에서 무슨 초상화를 그린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함구하라 하여 대답하지 못하겠네. 그건 그렇고. 내 이리 자네를 주점으로 부른 것은, 답답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이네.” 

    

“그림을 그려 먹고사는 일이 힘든가?”  

   

“솔직히 말함세. 몇 번 만났던 기생이 있네. 그냥 지나가는 인연으로만 생각했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알 수 없는 슬픔과 희열이 생겨나더군.

이제는 얼굴만 떠올려도 마음이 아려 잠을 이룰 수가 없네. 이를 어찌하면 좋겠나?” 

    

“어쩌누. 자네는 상사병에 걸렸구먼.

찾아가서 같이 살림을 차리던가, 멀리 도망이라도 가자고 졸라 보게.”    

 

“가까이 있지만, 손이 닿질 않네. 조만간 다른 남자에게 간다 하니 미칠 지경이네.”    

 

신윤복은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친구는 술잔을 내려놓고 정색을 하며 말한다.  

   

“자네가 그 여인에게 향하는 마음은 정(情)인가, 욕망인가?

우리는 부모님이 정해준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정을 키우고 나누네.

부인은 어머니와 다르지 않네. 존경하여 예를 지키고 역할을 보장하네. 이를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 하지.

이를 제외한 남녀관계는 반드시 질투와 쾌락, 집착 같은 욕망을 동반하기 마련이지.

탐욕에 빠지면 자네뿐만 아니라 가문과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네.

사서삼경을 읽었다는 자네가 어찌 이런 원리를 모른단 말인가?”  

   

“그래서 더욱 괴롭네.

오랫동안 자문자답했네. 과연 내가 탐욕에 사로잡힌 것일까? 욕정과 질투에 눈이 먼 것일까?

살림을 차릴 생각도, 야반도주할 마음도 추호도 없네. 이 모두가 탐욕이라고 여기기 때문일세.

무엇보다 내가 그 여인에게 향하는 마음을 탐욕이라는 그릇에 담는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네.”     

[김홍도/마상청앵도/117.2x52cm/종이에 수묵담채/간송미술관 소장. 

춘심(春心), 춘정(春情)은 이성에 대한 욕망을 뜻한다. 하지만 상당히 폭이 넓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성욕이 인간의 유전자에 박힌 본성이라면 양심은 우주적 본성이다. 이 우주적 본성인 양심이 드러나는 것도 춘심, 춘정 따위로 표현했다. 단원 김홍도는 춘정을 꾀꼬리의 사랑을 통해 에둘러 표현했다. 남녀의 사랑은 강력한 생명의 힘을 발산한다. 이런 마음은 이성을 향한 욕정과 혼동되기도 했다. 김홍도와 달리 혜원 신윤복은 직설적이다. 꾀꼬리가 아닌 남녀가 어울리는 풍류나 여성 자체를 표현했다.]     


“자네의 마음이 순수한 것은 알겠네. 하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겠네.

아름다운 여인에게 욕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네. 하지만 욕정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지. 먼발치에 서 있게. 가까이 다가가면 부나방처럼 타죽는다네.”  

   

“너무나 잘 알고 있네. 내가 손을 잡으면 그 여인은 부서지고 말걸세. 그래서 더욱 두렵네.

하지만 그리움은 두려움을 이길 만큼 강력하네. 아아, 그저 생각나고, 보고 싶을 뿐이네. 혼란한 이 마음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네.”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랑은 세상에 넘쳐나네.

만백성을 사랑하는 인(仁)이 있고, 고매한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의(義)도 있다네. 부모 자식이 서로 사랑하는 효(孝)가 있으며, 심지어는 산천을 사랑하여 표현한 진경산수화도 있다네.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랑해야 하네. 하지만 탐욕은 사랑을 없애는 마귀와 같네.

당분간 술을 마시지 말고 심신을 단정히 하게.

경치 좋은 곳을 걸으며 하늘을 보고 새소리, 물소리를 듣게.” 

    

신윤복은 며칠을 방안에서 끙끙 앓았다.

사회적 통념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했고, 절망했으며, 고통을 겪었다.

친구의 충고대로 외출하지 않았고 술을 먹지도 않았다.   

  

사람은 우주적 본성인 양심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의 몸은 원초적 욕망 덩어리이다.

욕망 덩어리인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양심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것일까?

인의예지는 모두 양심의 씨앗을 키우는 방편이다.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 교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인의예지라는 교화를 받아들이고 발동시키는 힘은 뭘까?  

   

아침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이상하리만치 정신이 맑았다.

배가 고팠다.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간단히 옷을 차려입고 정원을 산책했다.

정자에 앉아 한참이나 하늘을 보았다.

싱그러운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왔다.

살랑거리는 버드나무 가지, 이슬을 머금은 풀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나풀거리는 나비,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 줄을 치는 거미의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심신이 충만해지니 모든 생명의 활기가 느껴졌다.     


‘그동안 심신이 피폐하여 무너져 있었구나.

삶에 대한 의욕, 신명이 필요했구나.

그렇다. 도화를 향한 그리움은 곧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었구나.

그래서 그토록 절절했고 포기할 수 없었구나.’     


도화의 형상이 또렷해졌다.     


‘도화의 모습을 통해 나의 신명을 담을 것이다. 도화의 모습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찾을 것이다.’     

이제 붓을 들 시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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