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은 화실에 앉아 벽면에 붙여 놓은 사생 그림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앉은 모습인 좌상을 그려야 하나, 아니면 서 있는 입상을 그려야 하나...’
여성은 체구가 작다.
이 때문에 자칫 트레머리나 풍성한 치마에 얼굴이 묻혀버릴 수도 있다.
또한, 앉은 자세는 긴장감이 떨어진다.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허리를 세우면 경직되고, 허리를 굽히면 나약하게 보인다.
‘여성 좌상은 의녀나 열녀에게 걸맞은 자세일 뿐이다. 나는 봄기운이 가득한 여성의 모습을 그릴 것이다.’
무엇보다 신윤복은 성적 매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성적 매력은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삶의 의욕을 끌어 올리는 강력한 힘이다.
이러한 매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그려야 하고 하체의 특징을 잘 살려야 한다.
신체를 노출하면 천박해진다. 노출하지 않으면서 노출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입상(立像), 서 있는 모습으로 결정했다.
정면은 마치 선비 상처럼 너무 엄숙하고 단조롭다. 왼쪽으로 살짝 자세를 틀었다.
얼굴의 각도와 시선을 결정하는데 애먹는다.
반 측면의 얼굴에서 눈동자를 정면으로 향하면 도발적으로 보인다. 시선을 얼굴 방향과 같게 하면 공간이 확장된다. 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진다.
결국, 반 측면의 얼굴을 살짝 숙이게 했다.
하지만 눈동자의 방향을 위쪽으로 할 것인지, 숙이는 방향에 맞출 것인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눈동자의 방향이나 모습에 따라 그림의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화가에 따라서 눈동자를 먼저 결정하고 자세나 손 모양 따위를 맞추기도 하고, 반대로 마지막에 결정하기도 한다.
신윤복은 일단 눈동자의 표현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미인도]라고 하지만 조선 시대와 현대의 미는 기준이 다르다. 그렇지만 넓은 이마, 통통한 볼살, 적당한 코, 작고 도톰한 입술, 살짝 치켜뜬 눈, 살짝 숙인 고개 따위는 시대를 넘어 보편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이다.
어깨선과 두 눈의 가로 선은 일치하지 않는다.
얼굴을 숙였으되 살짝 옆으로 비튼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여성에게도 나타나는 전형적인 애교 자세이다.
트레머리(가채)가 문제였다.
풍성한 트레머리는 당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에 빼고 그릴 수는 없다.
하지만 트레머리가 너무 크게 자칫 천박해질 수 있고, 얼굴을 눌러서 답답해지는 조형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트레머리의 크기를 조금 작게 만들었다.
동시에 정수리 부분을 의도적으로 눌러서 균형을 잡았다.
[미인도 기생의 자세는 해부학적으로 어긋나 있다. 치마 속 다리 자세는 어떤 방식으로 그려도 상체와 연결되지 않는다. 영화 ‘미인도’의 포스터에서 여배우가 그림과 같은 자세를 최대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큰 차이가 있다. 애당초 사람의 몸으로는 만들 수 없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풍성한 주름치마는 엉덩이와 다리를 감추고 있다. 어쨌든 치마를 통해 엉덩이와 다리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신윤복은 치마에 가려진 하체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여러 조형장치를 사용했다.
일단 왼발 하나를 밖으로 빼냈다.
발을 보인다는 것은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노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흰 버선발을 실제보다 조금 작게 그린다.
작은 발은 청나라의 전족(纏足)을 흉내 낸 것은 아니다.
작고 앙증맞은 발은 성적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치마 아랫부분을 접어서 발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발의 방향은 얼굴과 반대로 잡아 균형을 잡았다.
[미인도] 속의 주인공인 기생의 나이는 15~18세 전후로 적당한 몸매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약 160cm의 키에, 몸무게는 대략 45~50kg 정도로 보인다.
실제 머리를 중심으로 비례를 재보면 6등신 반 정도이다.
가슴이나 엉덩이의 발육상태 혹은 몸매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가슴은 치마 상단의 끈으로 여러 겹 둘러싸여 있는데 버선 끝처럼 살짝 튀어나온 저고리 섶코를 통해 슬쩍 드러난다.
당시 저고리는 워낙 짧아서 가슴이 위로 돌출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 가슴은 저고리와 치마 주름이 시작되는 곳에 있을 것이다.
[미인도에서 기생의 트레머리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없애 보았다. 큰 트레머리 때문에 상대적으로 좁아 보였던 어깨가 정상으로 보인다. 두상을 눌러 표현한 것은 큰 트레머리와 얼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다. 트레머리를 없애고 눌린 두상을 원래대로 복원하니 상당히 자연스럽다.]
다리와 엉덩이는 풍성한 치마 속에 있어서 가늠하기 어렵다.
조선 말기의 사람들을 찍은 흑백사진을 보면 허리는 길고 다리는 짧은 전형적인 농경민 체형이다.
[미인도] 속의 기생은 허리가 짧고 다리는 길게 보인다.
이것은 짧은 저고리와 가슴까지 끌어 올린 치마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생은 작은 키에도 상당히 늘씬한 느낌을 준다.
옷이 만들어 내는 착시현상도 있지만, 미술 조형적 장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시선이 얼굴에서 가슴 쪽으로 살짝 들어갔다가 갑자기 치마를 대각선 방향으로 쭉 연결되도록 했다. 다리가 길쭉한 느낌이 나는 구도를 사용한 것이다.
[미인도]를 그린 화가의 눈높이는 여성의 얼굴에 있다.
하지만 시선은 풍만한 하체에 쏠린다.
이것은 구도의 중심을 풍만한 치마에 두었기 때문이다.
치마의 모양이나 큰 주름은 하체의 자세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림 속의 치마 주름으로 하체의 자세나 다리의 모양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노리개를 쥔 손 부분에서 갑자기 부풀어지는 치마 모양은 하체의 자세와는 전혀 무관하다.
약간 숙이고 있는 자세에서 갑자기 앉아있거나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전환된다.
이것은 다리의 자세와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치마 모양이나 큰 주름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인도] 속의 여성의 자세는 인체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몸을 아무리 비틀어도 이러한 자세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체는 똑바로 서 있는 자세이다. 그러나 하체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유일한 단서는 치마의 모양과 살짝 보이는 왼발이다.
왼발은 우측 45도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왼쪽 다리도 함께 틀어져야 한다.
발의 방향은 곧 무릎의 방향과 일치하고 골반의 무게 중심을 바꾼다.
그림 속의 발 모양을 하려면 짝다리를 짚거나 무릎을 살짝 굽혀야 한다.
드러난 상체와 왼쪽 발을 중심으로 다리의 모양을 상상하면 대략 오른발에 중심을 잡고 왼발을 약간 구부리고 옆으로 튼 상태이거나, 아니면 왼쪽 다리에 중심을 잡고 양쪽 다리 모두 구부린 엉거주춤한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하체의 자세와 관계없이 치마는 배 상단 부분과 등 부분에서 시작해 앞으로 갑자기 솟아오른다.
동시에 하체 중앙 부분을 가르며 쭉 뻗었다가 아래에서 꺾어지는 주름 선은 마치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있는 착시를 만들어 낸다.
뒤쪽의 치마 모양은 마치 엉덩이의 옆모습을 보는 것처럼 불거져 나와 있다.
신윤복의 인물 표현 능력은 탁월하다.
풍속화에 나오는 여러 기생의 모습은 인물의 동작과 옷의 형태에 따른 주름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치마 속의 하체를 인체 해부학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 있는 모습과 비스듬하게 걸쳐 앉은 모습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형적 장치를 과감하게 사용한 화가는 조선 팔도에서 신윤복 뿐이다.]
[미인도]의 자세가 옷과 맞지 않게 표현한 것은 조형적 필요에 따라 의도한 것이다.
상체는 반 측면으로 바른 자세이고 하체는 비스듬히 앉은 자세이다.
어딘가에 걸치고 앉은 모습을 마치 서있는 모습으로 변형한 것이다.
엉덩이는 옆모습이며, 배 부분에서 돌출된 치마로 인해 아랫배를 강조했다.
오른발은 쭉 뻗었고 왼발은 측면으로 구부렸다.
치마는 아래에서 올려 보아 긴 다리를 표현하고 동시에, 하단 부분을 꺾고 둥글게 만들어 내려 본 시점을 만들었다.
도대체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온갖 조형방법을 동원한 까닭은 뭘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