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국화, 난, 대나무를 비롯한 매, 진달래, 수선화, 수석, 새, 악기나 문방구 같은 각종 사물, 심지어는 상상의 동물이나 신선들도 모두 군자와 관련이 있었다.
진경산수화와 같은 아름다운 풍경의 주인공도 군자이다.
호랑이를 그려야 한다면 결국 군자, 선비의 모습이 투영될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는 강하다. 호랑이는 용맹하다. 이런 호랑이의 모습에 군자를 담아야 한다.
그러나 호랑이는 군자와 달리 백성을 해치는 포악한 동물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김홍도의 머릿속에는 온통 호랑이 생각뿐이었다.
수백 장 이상의 초벌 그림을 그렸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선 땅에서 호랑이는 이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호랑이와 싸워서 이겨낸 것이다.
호랑이를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짜기로 몰아넣었고,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 호랑이는 백성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두려움이 남아있다. 그 두려움을 경외감으로 바꾸어야 한다. 두려움과 경외심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닌가.’
이런 와중에 청나라에서 수용한 [호렵도, 胡獵圖]가 가시처럼 거슬렸다. 이 그림은 김홍도가 중국에서 수용한 그림이다.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운영했던 정조는 호렵도를 좋아했고 곧바로 한양에서 유행한다.
호렵도는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을 뜻하는 호(胡)와 사냥이 결합한 말로 '오랑캐가 사냥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호렵도에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장면이 주로 표현된다.
다르게 보면, 오랑캐 호(胡)가 아니라 호랑이 호(虎)가 되어 ‘호랑이를 사냥하는 그림’이 되기도 한다.
[호렵도 8폭 병풍/필 김홍도/비단에 채색/392*154.7cm/18세기 말.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20년 9월 미국 경매에서 매입한 ‘호렵도 8폭 병풍(胡獵圖 八幅屛風)’을 18일 국립고궁박물관 궁중 서화실에서 공개했다. 이 작품을 김홍도가 그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일부 표현에서 김홍도 특유의 필치가 보인다.
호렵도 부분. 청나라 장군들이 활과 창, 철퇴로 호랑이를 사냥하는 장면이다.]
우는 화살 곧게 위로 일천 척을 솟구치니
하늘은 고요하고 바람은 없어 그 소리 참으로 메말랐네.
푸른 눈의 오랑캐들 삼백 명 말 탄 병사
모두 금빛 재갈을 쥐고 구름 향해 바라보네.
객에게 일어 가로되 가히 병풍에 그려 넣을 만하니,
이것은 금나라와 원나라가 세상에 화를 가져온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홍도가 처음으로 호렵도를 그려서 명예를 날렸다고 한다. (조재삼 송남잡기 19세기)
금나라는 청나라의 이전 국명이고, 원나라는 몽골이 세운 국가로 모두 오랑캐를 뜻한다.
이 글에도 청나라에 대한 비하가 나타난다.
‘청나라 왕족과 장군들에 의해 호랑이가 사냥당하는 모습이라니...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이 있은 지 100여 년 훌쩍 지났고, 아무리 청나라와 관계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선비들이나 백성들은 청나라를 증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호랑이를 군자나 조선 선비의 표상으로 그리면, 결국 청나라에 의해 사냥당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조선의 군자를 사냥감으로 만들 수는 없지. 일단은 포악성을 제거해야 한다. 군자의 품성인 인의예지가 잘 드러나야 하고... 너무 심각하지 않아야 하고...음...또...’
순간 뭔가 강렬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음...뭘까?... 사냥 당하지 않는 호랑이.. .어떻게 하면 사냥꾼에서 벗어날까?... 음...빨라야 하나? 아니야...’
김홍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다. 크게 그리면 된다. 사냥꾼보다 더 크게, 사냥꾼을 압도할 수 있도록 위엄 있게!’
그동안 정홍래의 30cm 정도의 조그만 호랑이 그림에 갇혀 있었다.
그림 속의 호랑이만 보았지 그림 밖의 호랑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큰 방향은 잡혔다.
이제 구체적인 조형방법을 찾고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다시 스승을 찾아갔다.
“사부님. 일찍이 미술이론에 능통하신 윤두서 선생께서는 초상화를 그릴 때, 터럭 하나라도 틀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뜻을 알고자 여쭙습니다.”
표암 강세황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한다.
“단원, 자네가 후배 이명기랑 서직수 선생의 초상을 그린 적이 있었지? 그래, 서직수 선생은 그림을 보고 뭐라고 하던가?”
“네. 고명하신 어르신의 부탁으로 그렸사옵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신 선생께서는 내면을 표현하지 못하였다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그렇다. 어찌 그림 한 장에 삶의 총체와 인격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글이나 글씨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어진 사람은 어진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사악한 존재는 악한 모습이 밖으로 보이는 법이다.
안과 밖은 다르지 않다. 윤두서 선생은 바로 이러한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 터럭 하나는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지만, 이 작은 터럭을 통해서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