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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Feb 12. 2024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5화

1m가 넘는 커다란 화지를 준비했다.
사냥당하지 않는 호랑이, 위엄있는 호랑이, 군자를 닮은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크게 그려야 했다.
그렇다고 사대부나 왕보다 크면 안 된다.
어쨌든 호랑이는 동물이고, 자칫 사람 위의 존재로 숭배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가 이명기 화원과 함께 그린 서직수 전신 초상의 세로 크기가 150cm이고, 왕의 초상인 어진의 긴 면 크기가 대략 180cm 전후이다.
 따라서 호랑이 그림은 최대 150cm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음...긴 면이 130cm 정도면 무난하겠군.’     

[좌측-표구하는 과정에서 상하좌우로 잘려 나갔다.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우측-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잘려 나간 부분을 복원해 보았다. 훨씬 자연스럽다.]    

 

현재 [송하맹호도]의 크기는 90.4 x 43.8 cm이다.
그림 속의 호랑이는 우리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
전문가들은 그림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번 표구하는 과정에서 좌우상하가 잘려 나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크기는 이보다 30~40cm 정도 더 클 것이다.     


호랑이의 모습은 정홍래의 그림을 참조했다.
백방으로 자료를 모으고 수백 장이 넘는 사생을 했지만 좀처럼 정홍래의 호랑이를 뛰어넘지 못했다.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호랑이의 표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얼굴은 정면이다.
호랑이의 특성은 포효하는 모습이다. 정홍래의 호랑이도 포효하는 모습이다.  

   

‘아, 호랑이가 포효하면 이빨을 드러내야 하고, 이는 포악하게 노려보고 공격한다는 의미이지 않은가.
 군자가 포악한 모습을 하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표정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이빨을 감추어야 했다. 

그렇다면 포효하는 모습을 없애야 한다.
정작 입을 다문 호랑이를 그려 놓으니 맹숭맹숭하다.


답답한 마음에 제자를 부른다.  

   

“차 한 잔 내어 오너라.” 

    

“네, 곧 준비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제자의 얼굴을 보다가 후다닥 초벌그림을 뒤져보기 시작한다.    

 

‘그래, 고개를 살짝 숙인 모습을 그리면 되겠군. 정면이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면 변화가 생겨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동시에 이빨은 보이지 않게 되어 포악성은 사라진다. 이 자세에서는 눈이 강조될 것이다. 이 호랑이 눈을 맑고 총명하게 표현하면 군자의 모습과 가깝지 않겠는가.’   

  

호랑이 얼굴을 그려 놓고 나니 흡족했다.
그림에서 물러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으니 긴장이 풀린다.


슬슬 장난기가 발동한다. 

    

‘호랑이의 길고 하얀 수염을 어찌할꼬? 얼굴이 너무 엄숙하니 치켜올려 그릴까?’     

[포효하지 않는 호랑이 수염은 아래로 처진다. 

김홍도는 포효하지 않고 입을 다문 호랑이를 그리면서 수염을 치켜세웠다.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호랑이 눈은 엄청나게 크게 그렸다. 큰 눈은 젊음과 총명함을 드러낸다.]     


입을 다문 상태에서 호랑이 수염은 아래로 쳐진다.
그런데 김홍도는 입의 모습과 상관없이 수염을 위로 빳빳하게 치켜세웠다.
이 때문에 마치 호랑이가 웃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포악함과 과도한 긴장감을 일시에 해소하는 탁월한 한 수였다.    

 

김홍도는 진경산수화의 대가이기도 하다.

진경산수화는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 모습(진경)을 찾아내어 그리는 것이다. 금강산의 본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암산과 토산을 태극처럼 결합하고, 하늘에서 내려 본 부감법을 사용하여 실제와는 다른 이상적인 풍경으로 창안한 것처럼 말이다.    

 

호랑이 얼굴을 중심으로 커다란 몸통을 그린다.
줄무늬가 잘 드러나려면 넓은 등줄기가 보여야 한다.
이 등줄기는 45도 정도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 본 시점인데, 이렇게 보이려면 등을 길게 늘여야 한다.     

길게 늘인 등줄기에 좌측 뒷발을 연결했다.
뒷발은 땅을 밟고 있어야 하기에 측면 시점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

  

[김홍도가 그린 호랑이에는 진경화법이 적용되어 있다. 실제 호랑이를 참조했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새로운 호랑이를 창조한 것이다. 얼굴은 고개를 숙인 모습, 앞발은 정면 자세, 등줄기는 위에서 본 모습, 뒷발은 측면에서 본 모습, 꼬리는 달릴 때 모양을 결합하여 가장 호랑이다운 모습을 찾아내었다.]    

 

이렇게 얼굴의 정면 시점, 길게 늘인 등줄기의 상단 시점, 뒷발의 측면 시점을 결합하여 현실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새로운 호랑이 모습, 진경의 호랑이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그래도 남은 부분이 있다.
앞발과 꼬리였다.
정홍래가 그린 호랑이 앞발은 애매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이다.

순간, 두 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던 제자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앞발을 포갰다. 마치 선비들이 서로에게 읍을 하여 예를 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미술적 장치는 호랑이를 군자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군자는 예를 지극히 높이는 존재가 아닌가. 보통 선비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두 손을 공손히 모으는 읍(揖)을 행한다.
어정쩡한 호랑이 앞발을 마치 읍을 하는 모습으로 그린다면 정갈한 군자의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앞발의 문제도 해결되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호랑이 꼬리의 표현이다.
일단 호랑이의 평소 모습처럼 꼬리를 내려 보았다.    

 

‘이건 전혀 아니다. 마치 겁먹은 강아지 모습 같다. 꼬리를 위로 올려보자. 헉, 이것도 아니다. 발정 난 고양이 꼬리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꼬리를 말아 올리면 어떨까?’ 

    

김홍도는 해학과 익살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단순한 웃음을 넘어 단조로운 그림에 경쾌함과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호랑이는 꼬리를 S형으로 만들 수 없다. 

김홍도는 활기와 경쾌함을 만들기 위해 꼬리를 30% 정도 길게 만들어 두 번을 말았다. 

이렇게 두 번을 말기 위해서는 꼬리 시작 부분에서 곧바로 말아야 한다. 비슷한 종인 고양이, 여우, 표범에서도 이런 모습은 없다.]   

  

호랑이 꼬리를 S형으로 말아 올렸다.
사실 이렇게 만들기에는 호랑이 꼬리가 짧다.
한 번 말기는 쉬워도, 두 번 마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꼬리의 길이나 모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꼬리를 조금 더 길게 만들고 두 번을 말아 올렸다.
단조로운 자세에 활기가 생기고 기분 좋은 경쾌함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호랑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제 호랑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차례이다.
커다란 호랑이를 실감 나게 표현하는 방법은 꼼꼼한 묘사밖에는 없다.

세필을 이용하여 호랑이 털을 한올 한올 그리는 묘사법은 김홍도의 화풍이 아니다.
호랑이 그림 외에 세밀화법을 사용한 작품은 없다.


그런데도 세밀화법을 강행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호랑이 그림에 대한 부담감이다.
정홍래 이래로 호랑이 그림은 그려진 적이 없었다.
김홍도는 포악하고 증오의 대상인 호랑이를 군자의 상징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에 엄청난 정신적 부담감을 느꼈다.
이런 부담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술 본연을 따라야 한다.
화가에게 있어 사물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일은 기본이다. 사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표현이 어려울수록 착실한 묘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호랑이의 크기 때문이다.
거의 1m에 이르는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형태를 이루는 선묘나 담채로는 부족하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면적에 들어가는 붓질의 양이 필요하다.
명암이나 채색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에서 넓은 공간을 메우는 방법은 촘촘한 붓질밖에는 없다.    

[호랑이 털을 한올 한올 세밀하게 그렸다. 하지만 이 기법은 김홍도가 즐겨 쓰는 화법이 아니다. 오히려 기본에 충실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셋째, 호랑이 털의 특성을 살려야 한다.
당시 사람들은 호랑이 가죽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살았다. 털의 재질이나 모양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호랑이의 줄무늬, 점박이 가죽만 그린 [호피도, 虎皮圖]가 유행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호랑이 털을 뭉개거나 대충 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김홍도는 세필로 꼼꼼하게 묘사를 끝낸 호랑이 그림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이빨을 감추었다. 앞발을 공손하게 모으고 발톱은 숨겼다. 꼬리를 두 번이나 말아 올리고 수염을 치켜세웠다.
이런 조형방법을 통해 호랑이의 포악함을 없애고 군자의 총명함과 인자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검은색의 수묵과 과도한 붓질로 인해 호랑이는 그야말로 시커먼 도적처럼 보였다.

김홍도는 들고 있던 붓을 던졌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내 능력이 진정 이 정도밖에는 안 된단 말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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