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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Feb 21. 2024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6화

‘호랑이 털을 세세히 묘사하다 보니 숯덩이 같은 그림이 되어 버렸다. 확실히 수묵으로는 한계가 있어. 채색화로 바꿔야 한다.’ 

 

호랑이의 배와 엉덩이, 다리 안쪽은 하얀 털이고, 무엇보다 호랑이의 표정을 결정하는 눈썹이나 수염도 모두 흰색이다.
수묵화는 수성물감을 사용한다. 따라서 하얀 부분은 남겨 놓거나 어쩔 수 없이 검은 선으로 그려야 한다.
실제 정홍래의 호랑이 수염은 흰색이 아닌 검은 선으로 그렸다.     

[수묵으로만 그리면 시커멓게 되어 도적놈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심사정 낙관이 찍혀있는 위작이다.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과 유사한데, 김홍도가 그린 초본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작품에도 수염과 눈썹은 흰색으로 덧칠을 했다.]   

  

짙은 채색을 하면, 도적 같은 시커먼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흰색 덧칠을 할 수 있기에 더욱 실감 나는 호랑이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분을 진한 색으로 채우는 진채 기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수묵화의 격조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묵과 담채, 덧칠기법을 적절히 결합하는 방법을 택했다. 

    

‘일단, 화지를 종이에서 비단으로 바꾸자.’     


비단은 종이보다 훨씬 좋은 화지이지만 그만큼 사용하기도 까다롭다.
김홍도는 제자들과 함께 비단 화폭을 만들기 시작했다.
원하는 크기에 맞게 나무틀을 짰다.
그 위에 비단을 놓고 사방으로 팽팽하게 당겨 나무틀에 고정한다.
상당히 정교하면서도 힘을 써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한숨을 돌리고 한 후, 최근에 들어온 어린 제자가 동물의 근육 따위로 만든 아교를 그릇에 넣고 숯불에 은근하게 끓인다.
비단결 사이로 먹물이나 물감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미술용 접착제인 아교를 여러 번 칠한다.   

  

아교가 마르기를 기다릴 동안 김홍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호랑이 초본은 완성되었지만, 배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속에 있는 호랑이를 표현하려면 배경에 나무와 산, 바위 따위를 그려 넣어야 한다.
이건 김홍도에게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김홍도는 계속 머뭇거렸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호랑이는 군자의 상징이다. 깊은 산중에 있는 호랑이를 그리는 것은 군자를 현실에서 유배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군자는 세상의 중심에 있어야 하듯이, 호랑이를 산중에서 불러내어야 한다.’    

 

김홍도는 마을이나 기와집이 있는 배경을 떠올려 보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호랑이를 사람이 사는 현실적 공간에 두는 것은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호랑이와 마주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면 안 된다.’ 

    

김홍도는 풍속화의 대가였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여 사람과 상황에 집중시킨 조형방법은 기존의 풍속화에 대한 통념을 바꾸어 놓을 정도였다.   

  

‘그렇다. 배경을 없애고 그냥 비워두자. 배경을 비우면 올곧이 호랑이에게 집중시킬 수 있다. 동시에 격조 있는 여백이 생긴다.’   

  

그렇게 호랑이 주위의 모든 공간을 비웠다.

이제 호랑이는 산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상상하는 공간으로 들어왔다.


배경의 공간을 비웠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호랑이를 군자의 풍모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조형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그렇다고 호랑이만 덩그러니 그려놓을 수는 없었다.


호랑이만 홀로 그려놓으면 위험하다. 자칫 호랑이를 숭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결합하는 소재는 곧 군자를 상징하는 소재를 찾는 일이다.


김홍도의 머릿속에는 뚜렷한 형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신중해야 했다.   

  

‘일단 상단을 비워놓고 호랑이부터 그리자.’  

   

그림을 3/1에 해당하는 윗부분을 비웠다.
초벌 그림 위에 비단을 놓고 호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그려보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옆에서는 제자들이 목마른 눈빛으로 스승의 붓질을 보고 있었다. 

    

호랑이를 그리는 붓질은 거침이 없다.
짙게 간 먹에 물을 타서 농도를 조절해가며 한올 한올 호랑이 털을 그린다.
농담과 강약, 누르고 들고 빗겨 치는 붓이 지나갈 때마다 호랑이의 몸통이 꿈틀거린다.
흰색을 사용해 호랑이의 눈썹과 수염을 그리고 난 후 김홍도는 붓을 놓았다.    

 

한참이나 엎드려 그린 탓인지 무릎과 어깨가 결리고 지끈거린다.
제자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미술도구를 치우는 사이 김홍도는 벌렁 누워 천정을 바라본다.   

  

다음날, 김홍도는 스승인 표암 강세황을 찾았다.


스승이 먼저 묻는다.  

  

“호랑이 그림은 다 되었는가? 빨리 보고 싶군.”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만 막바지 단계에 있습니다.”  

   

“그래, 이번엔 뭐가 답답해서 찾아왔느냐?”  

   

“군자의 강인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호랑이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 사람들이 내면의 군자를 찾지 않고 호랑이의 겉모습만 볼까 두렵습니다.”  

   

“큰 화폭에 호랑이를 그리고 있다고 들었다. 대범함이 자네답다.
큰 호랑이를 그리려면 그만큼 꼼꼼한 묘사가 필요하지. 실감 나게 그릴수록 포악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거대한 호랑이의 포악성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되려 잡아먹힐 것이네.”     


“네. 그렇습니다. 그림 속의 호랑이가 폭주하지 못하도록 길들일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이를 여쭙고자 합니다.”   

  

강세황은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그 답은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네. 그런데도 내게 묻는 이유가 뭔가?”   

  

김홍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호랑이를 길들일 강력한 힘은 호랑이보다 더욱 강력한 군자의 상징이다.
그 상징은 소나무밖에 없다.

소나무는 사철나무로 한파에도, 무더위에도 항상 푸르름을 유지해 변치 않는 양심의 상징이 되었다. 

[정선/노송영지도/종이에 담채/103×147cm/조선 1755년/인천시립박물관.

정선은 독특한 화풍의 소나무 그림을 잘 그렸다. 을해추일(乙亥秋日) 겸재팔십세작(謙齋八十歲作), 겸재 정선이 80세 노년기에 그린 이 작품은 세로 147㎝에 달하는 보기 드문 대작이다. 

겸재 정선은 노송도를 통해 완성된 전통의 상징으로 승화시켰다.]     


김홍도는 겸재 정선의 꿈틀거리는 소나무 그림을 본 후 한동안 충격에 빠졌던 기억을 떠올렸다.
수많은 소나무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소나무만 단독으로 그린 것은 처음이었다.


노송이라고 하지만 겸재 정선이 그린 소나무는 힘이 넘치고 활기차다.

굵고 힘찬 선묘로 그린 소나무는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소나무를 마치 목숨 수(壽) 글자와 닮게 그렸다는 점이다.

소나무와 수(壽)는 무슨 관계일까?

사람들은 사시사철 변치 않는 소나무와 사람의 생명을 뜻하는 수(壽)가 결합하여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더 큰 철학적 내용이 숨어있다. 

    

성리학의 해석에 따르면,

목숨 수(壽)는 ‘사회적 생명’을 뜻한다.
사회적 생명은 사회 속에서만 발현하는 것으로 양심(인의예지)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양심의 최고점이 군자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노송도(老松圖)는 변치 않는 사회적 생명을 가진 군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선비 화가이자 주역에 능통했던 겸재 정선이 온 힘을 다해 그렸던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소나무 그림의 진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 김홍도가 스승 강세황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홍도는 화원으로 중인계층이다.
하급 관료인 중인은 정치적인 발언권이 없었고 정치에 개입할 수도 없었다.
이에 반해 스승 강세황은 비록 야당 격인 근기남인(近畿南人)이긴 하지만 정치에 발언권과 책임을 지는 선비였다.
호랑이 그림에 정치, 철학적인 근거와 확신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송하맹호도 상단에 쓰인 ‘표암화송’이라는 글자와 낙관은 위작이다. 

후대에 누군가 써넣은 것이다. 아마도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강세황을 이용한 것이다. 

김홍도가 스승의 조언을 받았을지언정 합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강세황은 탁월한 감식안을 가진 평론가이면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이러한 권위를 가진 스승이 김홍도와 합작해 소나무를 그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그림이 될 것이다.


저명한 선비가 함께 그려 보증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에는 큰 차이가 난다.

정홍래 선생이 호랑이 그림을 그려놓고도 사간원의 눈치를 보며 두려워했던 것은 선비의 정치적 보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홍도가 굳이 상단을 비워놓고 호랑이부터 그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김홍도는 차마 합작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선비와 중인 화원이 합작하여 그린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호랑이 그림에 다른 사람의 붓질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화실로 돌아온 김홍도는 제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혼자 남았다.

한참 동안 그림 속의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붓을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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